좋아하는 비율을 선택할 권리
네그로니.
편의점 와인 진열대에서 네그로니라 쓰여있는 라벨을 발견하고 순간 눈을 의심했다. 짙붉은 색의 이탈리아 리큐르인 캄파리를 베이스로 스위트 베르무트와 드라이 진을 1:1:1로 섞어 만드는 네그로니는 내가 가장 즐겨마시는 칵테일이기도 하다.
한 때 네그로니에 푹 빠져 남대문 주류 상가를 돌며 메인 재료인 세 병의 술을 사들고 두 시간을 넘게 낑낑대며 집에 돌아오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간편하게 동네 편의점 진열대에서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사려던 와인 대신, 아직은 그 자태가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네그로니 병을 사가지고 나왔다.
나는 사실 ‘연맥’, ‘소맥’ 같이 배합이 된 채로 나오는 상품보다는 그냥 연태고량주와 소주, 맥주를 따로 사는 것을 선호하지만 원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운 상태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집에서 멀리 나가지 않는 한 존재할 수 없는 선택지가 생긴 셈이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특유의 씁쓸함 때문에 다소 인기가 없는 네그로니는 나름 역사가 오래되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레시피가 존재하고, 세계 어느 곳의 바를 가도 바텐더가 일하는 곳이라면 쉽게 주문할 수 있는 기본 칵테일 중 하나이다.
손쉽게 얻은 네그로니를 홀짝이며 동행들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마음 한 편으로는 이전에 마셨던 네그로니의 맛을 떠올리며 비교하고 있었는데, ‘왜 이전만큼 확 구미를 당기는 그런 맛이 나지 않을까?’ 하며 꽤나 심각하게 뇌에 저장된 미각 차트를 끝없이 뒤적이게 되는 것이었다.
왜일까?
아주 약간의 ‘손맛’과 약간의 가니쉬(그래봤자 오렌지나 자몽 껍질 한 조각), 약간의 비율 조정에 따라 첫맛과 끝맛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 순간 내가 원하는 비율로 변화를 줄 수 있는 아무런 선택권이 나에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대로 아무 변화를 주지 않더라도, 그 내버려 둠조차 나의 의지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석의 여지가 없는 그림과 취향을 반영하지 못하는 칵테일이 나에게는 얼마나 매력이 없는 것들인지, 여실히 깨닫는 밤.
조금 더 관객에 곁을 내어주는 그림을 그려야겠다.
늘 그래왔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