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이도저도 아닐 수는 없다
우리는 이곳, 아니면 저곳에 존재한다.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다.
이곳에 가만히 머무는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우리는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일어나 이제껏 가보지 못한 저곳을 향한 한 걸음을 떼어야 한다. 그 걸음이 하나 둘 쌓여 이윽고 눈앞의 풍경이 확연하게 바뀌기 전까지는 물론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못한 그저 그런 공터를 하염없이 걷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대로 이도저도 아닐 수는 없다.
이대로 아무 색도 결정하지 않은 채 모든 색이 섞여 늪바닥이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굳어지기 전 아무런 형상도 되지 못한 채 망그러진 콘크리트 반죽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어떤 자원을 가지고 어디까지 도달을 해 본 누구이건 간에,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곳’이 내가 원하던 위치가 아니라면, 거울 속에 서 있는 사람이 내가 꿈꾸던 모습이 아니라면, 우리는 작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대로 머무르는 것을 포기하고 딱 한 걸음,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걸어보는 것. 평소와 다른 색깔의 감정을 가져 보는 것.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에 의도적으로 힘을 실어 보는 것. 무엇이든 지금과는 달라져야 함을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 이전에, 내가 정말 원하던 색이 무엇이었나 나에게 먼저 물어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