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행동하게 만드는 힘
남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하는 데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학창 시절을 회상해 보면 주변 친구들은 선생님, 부모님이 '이렇게 해야 잘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그대로 잘 따라 하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 두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순종적인 학생이라고 해서 모두 모범생인 것도 아니었고, 모범생들 사이에서도 간혹 톡톡 튀는 학생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공부를 잘했건 그렇지 않건 자기가 원해서 스스로 공부를 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공 선택에서부터 차이가 났고 결국 자기가 뭘 정말로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로를 결정한 친구들은 대학 입학 이후부터 사회에 나가서까지 많은 심적 방황을 했다. 거기에는 물론 나도 포함된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야 5살 때 처음 가졌던 꿈인 화가의 길로 다시 들어섰는데, 그나마 관련된 전공이었기에 망정이지 엉뚱한 단과대학에 들어갔으면 어쩔 뻔했나 싶기도 하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저 친구가 안 하면 누가 물리학자가 되나 싶을 정도로 물리학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결국 부모님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의과대학을 선택했다. 워낙 똑똑한 친구라 멋진 의사가 되었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대한민국 기초 과학 발전에 이바지할 인재를 하나 잃었다'라고, 그때 당시에도 생각했다.
무언가를 자의로 하느냐, 타의로 하느냐는 어른이 된 이후 삶의 질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자의로 인한 것이 아닌, 회사나 클라이언트 등으로 인한 강제성을 띤 일을 평생에 걸쳐 지속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누가 그렇게 평생 급여를 주며 일을 시켜주지도 않는다...!) 결국은 어떠한 조직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 평생에 걸쳐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 점진적으로 시도하며 키워나갈 수밖에 없다. 그게 안 된 상태에서 덩그러니 세상에 내던져진다면 다급해진 마음 때문에 또다시 원하지 않는 일을 급하게 잡을 공산이 크다.
저절로 행동하게 만드는 힘은 사실 스스로의 결정에서 나온다. 그 결정이란 단번에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온전한 시간을 얼마의 기간을 정해놓고 할애해야, 생각이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이어져 마침내 결론에 다다른다. 그 결론은 내가 되고 싶은 '특정한 상태'에 대한 아이디어가 되고,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이정표가 되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작은 행동들을 그때부터 개시할 수 있게 된다. 그전까지는 모든 가능성의 미로를 온전히 스스로 탐험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속 시끄럽고 '일 때문에 지치니까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어!' 하는 마음 때문에, 나도 한창 바쁘던 직장 생활 동안은 쉬는 시간이 나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단 1분도 가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나에 대한 생각을 밀어내기 바빴다. 동호회든 영화든 무엇이든 복잡한 생각을 되도록이면 멀리 미룰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끌어다가 공허한 마음의 공백을 메웠다.
나에 대해 생각할 마음의 공간, 그리고 나와 대화할 시간을 아예 내어주지 않는 것은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죽을 것 같아서 나오게 되는 날이 온다. 만약 십 년 넘게 나오지 못하고 계속 그대로라면 내 자아는 그냥 죽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오늘도 죽은 채로 살아가고 있다면, 뭔가 새로운 행동들을 시도해 보았는데 마음대로 이어지지가 않는다면, 나를 저절로 일어나 행동하게 만드는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도록 하자. 일주일이건, 열흘이건 연차를 다 써서라도 완전히 고립되어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 여유가 있어야, 새로운 흐름으로 새로운 행동을 할 수 있다.
억지로 무언가를 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에 조금도 가까워질 수 없다. 오히려 진짜 원하는 것을 먼저 완벽히 마음속에 각인시켜서 저절로 행동이 나오게끔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에게 미안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