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대신하여 분노할 필요는 없다
한동안 나는 ‘분노 전문가’로 살았다. 타인을 위해 부당한 것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고, 나의 에너지를 쏟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겼다. 그것이 내가 추구해야 할 정의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출처가 불명확한 옅은 정의감에 휘둘리는 동안, 나는 누군가에게 분명 필요한 존재였다. 주변 사람들은 서서히 힘든 일이 생기거나, 억울한 일이 생기면 나를 먼저 찾기 시작했다. 역시 이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그리고 어쩌면 해결을 해 줄 수도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며 위안을 얻어갔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사고회로는 분노 외의 동력으로는 움직이지 않게끔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었다.
나는 어느덧 뇌 한쪽에 분노의 공간을 늘 남겨두고 사방에서 분노의 원료를 끌어들여 들이붓는 삶을 살고 있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강렬한 에너지에 중독된 것이 틀림없었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크게 화를 내야만 하는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직도 그런 회사가 있느냐며 사정을 딱하게 봐준 고용노동부 담당자와의 면담, 그리고 이어진 생애 첫 심리 상담은 정작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주지는 못했지만 작은 단서를 하나 남겨 주었다.
“그래서, 아영 씨. 그 사람들이 아영 씨의 책상을 붙잡고 일을 못하게 했다거나 물리적으로 압박을 가한 적이 혹시 있었나요?”
그런 일은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나와 타인에게 일어난 분노의 불씨들을 한데 모은 데 따른 분노의 응축과 폭발의 과정이었고, 그건 사실 모두 관념의 영역 안에 있었다. 관념 안에서 휩쓸리고 망가진 것들이 단지 외부로 발현되어 ‘더 이상은 하루도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일 뿐이었다.
회사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그것을 단죄하고 해결을 하는 일은 사실 나의 몫이 아니었다. 감사팀의 조사에 몇 번이나 응했지만 관계자에게는 겨우 솜방망이 같은 ‘주의’가 내려졌을 뿐이었다. 그때 있었던 부조리한 일들 때문에 퇴사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었다. 그리고 분노로 응집된 인연의 끈은 짧디 짧았다.
그러한 일들은 이후 몇 년 동안에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는데, 하나의 분노의 장이 결말에 이르면 등장인물은 어느덧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더 이상 그 일련의 과정들을 떠올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당연히 그러한 인연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 나를 찾지 않았다. 나는 그들 인생의 ‘분노’ 페이지에 잠시 등장하는 조력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분노는 어떤 종류이건, 그것을 가지는 것이 정당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담아두고 있는 시간 동안 내 마음에 화상을 입힌다. 그러는 동안은 사고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상처와 흉터는 쉽사리 아물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수술을 결심했다. 이 흉터를 도려낼 집도의는 결국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나는 타인의 분노를 대신하지 않기로 했다. 분노를 증폭하는 기계가 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가 무언가를 증폭시키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제 가치를 증폭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당한 일들에 집중하면 부당한 일들만 계속해서 생긴다는 것을, 나는 십 년에 걸쳐 깨달았다. 타인을 위해 굳이 무언가를 해야겠다면 분노를 함께 나누어 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당한 가치를 찾아내 그것에 함께 집중하는 편이 나를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 좋다는 것 또한.
내 인생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건 결국 나밖에 없다. 스스로가 끌어당긴 감옥에서 이제는 나올 때가 되었다.우리가 합당하게 누려야 할 자유가 바로 눈앞에 있지 않은가.
이제 또다시, 남을 대신하여 분노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