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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Nov 26. 2023

F인간의 샌드박스

나의 쓰임을 찾아 최선을 다해 존재하기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자연히 멀어지고, 또다시 인연이 닿기도 하고, 내가 스스로 멀어져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F 성향이 짙은 사람들은 그 모든 과정에서 에너지를 더 많이 소진하게 된다. 더 많은 감정을 그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고, 또다시 멀어지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을 가능성 또한 높다.

하나의 인간관계 그룹은 하나의 세계와도 같고, 그건 그들과 함께하는 기간 동안 나의 우주가 된다. 그 멀어짐과 소멸은 때때로 다음에 만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되기도 한다. 나도 한동안은, ‘다음에는 곁을 내어주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속은 여전히 물러 터져서, 마치 갑각류처럼 누가 내 껍질을 관통해 심장을 도려갈까 노심초사하며 앞다리를 휘적거리기 일쑤였다.


그건 스스로가 보기에도, 참으로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일어날 법한 비극을 떠올리며 그것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는 것은, 오히려 그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나게 만든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하나의 세계로부터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때.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처음에는 가장 가깝게 지내던 이들에게 슬픔을 토로하는 것이었고, 그 세계마저 무너졌을 때는 말을 할 힘도 없어 단지 글을 한 자 한 자 남기는 것이 전부였다.

​그럴 때마다, 글은 F인간의 샌드박스가 되어주었다. 발붙일 세계가 없어 행성과 행성을 유영할 때, 유일한 도피처가 되었다. 마음껏 넘어질 수 있는 이 샌드박스에는 활자로 된 모래가 가득했고, 여기에서 나는 내친김에 드러누워 쉴 수도, 골똘히 모래성을 쌓을 수도 있었다.

샌드박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래놀이를 하고 나면, 어느덧 새로운 세계의 문 앞에 도달해 있었다. 어느 인간관계 그룹이건, 선의에 의해 나누는 사람과 다른 의도가 있는 사람, 아예 나누지 않는 사람과 선의가 중간에 변질되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지칠 때마다 샌드박스 안에서 쌓아 올린 모래성들을 되돌아보니, 그건 하나의 자연법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때로 아주 실망스럽고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번 세계를 스스로 등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머물고 있는 세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때에 맞추어 반드시 자정작용은 일어난다. 자연 속에서 그 쓰임새를 다한 것들은 곧 다른 쓰임이 되기 위해 흩어지게 마련이다. 가만히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물체가 사실은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는 원자의 합이라는 것을, 우리는 배워 알고 있지 않은가.

마침내 내가 조금 더 머물고 싶은 세계를 만났다면, 나의 쓰임을 찾아 최선을 다해 그 쓰임대로 존재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머묾의 시간이 이윽고 끝났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은 세계의 일부이며, 또 다른 차원의 쓰임을 위해 다만 앞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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