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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Nov 28. 2023

오래도록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것

명화당, 그리고 글쓰기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명동 나들이를 나섰다. 선정된 협찬 건 취재를 위해 한 레스토랑에 들렀다가, 추가로 주문할 만한 메뉴가 없어서 끼니를 따로 챙기기로 한 것. 협찬 장소에서 몇 정거장 떨어지지 않은 명동역에 내리자,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밤거리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명동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엄마의 최고 맛집은 역시 명동 터줏대감인 분식집 명화당과 충무김밥이다. 찬이 아주 매운 충무김밥보다는 참기름 내음 고소한 양념 김밥과 비빔 쫄면이 먹고 싶어져, 이번에는 명화당으로 향했다. 예전에 대학 시절 엄마와 함께 숱하게 오던 골목. 명동의류가 있던 그 골목 초입에서 중간 사이에, 1980년부터 이 자리를 지켜 온 분식집 명화당이 있다.



엄마가 80년대에 회사 동료들과도 자주 왔던 이곳은, 지금까지도 동일한 맛과 향을 유지하며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내국인보다 해외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글로벌 맛집이 된 것.


특히, 비빔 쫄면과 명화당 김밥은 다른 분식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제 양념이 일품이다. 쫄면은 전혀 맵지 않고, 상큼함과 감칠맛을 고루 잡은 조화로운 풍미를 낸다. 단면이 살짝 노란빛을 띠는 명화당 특유의 기본양념 김밥 또한 별미이다. 이제까지 숱한 분식집들이 그 아성을 넘어뜨리려 도전했을 것이나, 역시 지금까지도 이와 똑같은 맛을 내는 곳을 본 적이 없다.


새로운 도전자들의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은 카테고리에서 40년 동안 같은 자리를 찾아오게 만든다는 건, 단순한 성공의 영역을 넘어선 '신화'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5년, 10년 동안 메인 번화가에서 같은 자리를 지켜내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고, 그 비법을 알아내려 전국 팔도에서 찾아올 법한데 43년이라니. 우리가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때가 7-8년 전인데, 코로나라는 엄청난 변수마저 뚫어내고 다시 아주 담담한 일상처럼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이 가게.



오랜만에 와도
역시 맛있네요!



최신식 포스기가 없어도 능숙하게 우리 자리를 기억해 내고 계산을 해주시는 사장님께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넨 후, 인파 속에 합류했다. 길거리 음식으로 가득 채워진 거리와 그걸 맛보기 위해 군데군데 몰려드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명동성당까지 천천히 걸었다.



시끌벅적한 거리를 지나 성당 안 마당에 도착하니, 조금은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천주교 신자인 엄마가 성물을 구경하는 사이, 그동안은 미처 감상할 기회가 없었던 명동성당 앞 밤 풍경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한 면 한 면 눈에 담았다.


눈으로는 문양을 세며, 머리로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내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오래도록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요즘 유행한다는 젤라떡과 랍스터 구이, 회오리 감자, 버터 새우, 한우 스테이크의 유혹을 모두 뿌리치고, 관광객이나 현지인 구분 없이 누구든 찾아오게 만드는 그 힘은, 무엇으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언제든 찾아와도 실망스럽지 않은 맛, 다시 말하면 그 가게만이 독보적으로 유지해 온 '콘텐츠' 덕분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부터 유명했던 명동의 한 맛집이 10여 년 전 프랜차이즈화 된 후 그 맛이 제대로 지켜지지도, 그 확장이 본점의 브랜드화에 도움을 주지도 않았던 선례가 있었다. 이 '콘텐츠'를 유지하기 위해 명화당이 기울였을 노력과 그간 포기했을 기회비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 바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창작의 영역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도전할 수 있는 '글쓰기', 그중에서도 '블로그 글쓰기'는 수많은 글들 중에서도 '복국' 같은 자격증을 요하는 요리가 아닌, 아무 때고 집에서 말 수 있는 '김밥'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해야 맛있네, 저렇게 해야 잘 팔리네' 별의별 사람들이 찾아와 전문가 행세를 하고 난리를 친다고 해도, 한철 유행하고 사라지는 길거리 음식 같은 글을 쓴다면, 결국 장기적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물론 길거리 음식 포차들도 잘하는 곳은 돈을 매우 잘 번다. 그것도 현금으로!)


그러니 1년 뒤, 5년 뒤에 찾아와도 실망스럽지 않은, 아니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글을 써야겠다.


한껏 요란스럽게, 평화롭던 사람들의 심리를 파헤쳐 놓고 정작 알맹이 없는 내용만 나열해 놓는 '유튜브 섬네일' 같은 글. 그런 콘텐츠로 이룬 성장은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 무너짐조차 손익분기점을 계산하여 의도한 것이라면, 사업가로서는 존경을 받을 수 있겠지만 '작가'로서는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


혼란스러웠던 하루를 마무리하며, 작은 깨달음을 안겨 준 김밥 한 줄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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