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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May 02. 2024

현실과 이상 사이, 글 잇기

세기의 프롤로그 2024 ver.


 ‘2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위압감이란, 귀밑 2.5 센티미터의 단발머리 여중생에게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휘황찬란한 연말 시상식의 ‘1999’ 현판이 축제의 소음 속에서 ‘2000’으로 뒤바뀐 순간, 한껏 부풀어 오른 소녀의 마음도 빵, 하고 터져 버렸다. 그러고는 그 요란스러운 단어의 매무새와는 상반된 담담한 새 천년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사라진 잘 나가던 포털 사이트 프리챌은 외계인과 소녀를 주제로 한 TV 광고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대중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화제의 외계인과 소녀, 다음 이야기는? 여러분의 콘티를 공모합니다!”


 광고 콘티나 시놉시스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여중생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어지는 공상을 사람들이 알아듣게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세상에 없는 거대하고 모호한 것들을 세상에 있는 작고 쉬운 말속에 눌러 담는 것. 소녀는 그렇게 함축을 배웠다.

 백일장 운문처럼 힘주어 써 내려간 작은 글은 공모 게시판을 표류하다 이내 도착점을 찾았다. 네티즌 투표 끝에 3위에 오른 것이다. 3등에게 주어진 상은 무려 문화상품권 10만 원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여느 평범한 중학생에게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주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유명 밴드의 신보를 유럽 한정판으로 살 수도 있었고, 잘 모르는 아티스트의 음반을 단순히 재킷이 마음에 들어 구매해 보는 사치도 누렸다. 지금처럼 해외 음반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사치스러운 ‘뽑기’에 성공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새롭게 얻은 감상과 통찰을 글로 풀어 인터넷 너머의 바깥세상과 공유하는 것은 곧 소녀의 취미이자 일과가 되었다.

 오래지 않아 응모작 원문은 당시에도 다소 낡은 축에 속했던 486 컴퓨터와 함께 사라졌고 언제든 그곳에 있을 것만 같던 프리챌 또한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제출했던 글에 대해서는, 몇 번이나 기억해 보려 애썼지만 외계인과 소녀를 잇는 추가적인 장치로 꽃을 등장시켰다는 것밖에는 떠올리지 못했다.


 원하던 대학에 한 번에 붙었다는 기쁨도 잠시. 욕심껏 선택했던 학과가 잘 맞지 않아 방황하다가 그림을 업으로 삼고 20대의 절반 가량을 타국에서 떠돌게 되면서 나는 몇 번의 작은 성공과 셀 수 없는 실패를 맛보았다. 다만 생활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고갈된 적은 없었으며, 그것들은 다채로운 색과 형태로 더욱 힘 있게 발현되었다.

 간혹 객식구처럼 찾아온 우울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마음속에 순간 떠오른 글은 음률을 타고 가사가 되곤 했다.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내가 느끼는 것이 어떤 종류의 절망이건 간에 결국엔 괜찮아질 거라는 신음 같은 것이었다. 고양이가 기분이 좋을 때 내는 것으로 알려진 그르렁대는 소리가 극심한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서도 쓰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처음으로 그들과의 유대감을 느꼈다. 나지막이 노래할 기운도 없을 때에는, 백지를 띄워 무엇이라도 끄적였다. 아주 느슨하고 부지런하게.

 한 세기의 2할을 지나는 동안, 글은 나의 이상과 현실을 잇는 뼈대가 되어 주었다. 뼈대 없이 덧붙인 잔상과 열망들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흩어지게 마련이다. 글은 한껏 젖어 번져버린 감상들을 말려 또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현실적 기반 없이는 예술도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은 시간들. 오랜 시간이 지난 듯 보이지만 모두가 호기롭게 외쳤던 ‘새 천년’이 시작된 그날로부터, 우리의 21세기는 이제 막 두 걸음 하고도 반을 떼었을 뿐이다.


 서른 중반 즈음, 같은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협업했던 설치작가 마찌아와 오랜만에 영상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근 십 년 만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녀는 요리를 곧 잘하던 소질을 살려 고급 식자재를 레스토랑에 납품하는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녀는 또한 글과 이미지, 숫자를 동시에 다루는 나의 직무에 대해서도 흥미로워했다.

시각 예술이 아닌 다른 세계의 일들로 삶을 꾸리게 된 것이 오히려 너른 시야를 갖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우리는 함께 회고했다. 이 세기가 다 가기 전에는 당연히 다시 작업에 몰두할 때가 올 것이고, 새로운 경험을 녹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작품을 남길 것이다.

 나에게 귀속된 세기의 프롤로그 후반부는 그렇게,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단단히 채워졌다. 직장에서의 고군분투기는 다수에 속한 세상의 일원으로서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데 톡톡한 감초가 되어 주었다. 세월이 흘러 인생의 에필로그를 쓰게 될 즈음에는, 아무나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누구나 이해하는 말로 풀어낼 수 있으리라.


 글이 이어 준 현실과 이상이 맞닿은 세계는 때로 아름답고 생경하기도, 지겨우리 만치 평범하기도, 놀랍도록 거칠기도 하였다.

 애정하는 누군가가 현실과 이상의 간극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을 때면, 나는 주저 없이 글을 써 보라고 말한다. 일기가 되었건, 가사가 되었건, 손에 쥔 메모장이건 조용한 블로그이건 간에, 무엇이든 남겨 두라고 말이다.

 현실 속에서 원래 가고자 했던 길을 잃지 않도록, 또한 이상에 휩쓸려 두 발을 딛고 선 땅을 빼앗기지 않도록, 글은 우리의 닻이 되어줄 수 있다. 우리가 정박하는 곳곳마다 항구에서 떠내려가지 않도록, 혹은 떠나야 할 때를 알아차리도록, 당신이 남겨 둔 글이 언제든 당신을 도울 것이다.

 글을 통해 오늘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다시금 추상하다 보면, 현실이라는 파도와 이상이라는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진실은 언제나, 내가 깨닫지 못했던 나에 관한 것들이다.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는 나는 과연 돛단배일까, 빙하일까, 섬일까,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대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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