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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Oct 09. 2024

실력과 명성에 관한 고찰

3장 - 현실 속에서 나의 세계를 지키는 법


어젯밤 오랜만에 집에 온 동생과 한 잔을 기울이며, '그만 신경 쓰지 말자' 하고 눌러 두었던 생각들이 다시 말캉말캉하게 풀어지기 시작했다.

 유리공예 한 분야만 10여 년 넘게 판 동생은 해당 분야에서 알아주는 실력자이지만, 그에 걸맞은 타이틀이나 보상을 얻기까지는 아직 먼 길이 남아 있다. 작업에만 몰두하기도 에너지가 부족한데, 기업의 저작권 침해와 같은 외부 변수로 인해 고생을 하기도 한다.

 꼭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개인 창작자의 입장에 서 본 사람이라면 실력과 명성의 상관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 고민을 하다 보면, 코스톨라니의 달걀로 유명한 유럽의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비유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는 생전에 그의 저서를 통해, ‘경제와 주가는 산책 나온 주인과 개와 같다’고 설명한 바 있다. 개가 주인을 앞질러 가기도, 주인보다 뒤처지기도, 때로는 호기심에 길가로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 주인이 걷는 방향으로 쪼르르 돌아온다는 것이다. 잠깐은 요동칠 수 있어도, 경제가 튼튼하기만 하다면 주가는 장기적으로 오른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실력과 명성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전자의 경우를 대입해 보면 평생에 걸쳐 내공을 탄탄히 쌓아가면서 작품을 꾸준히 내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그 진가를 알아봐 주는 이들이 생기고 명성도 따라올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늘 그렇듯 시장에는 변수가 있다. 

 우리는 명성이 본질을 앞서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그 간극을 메우려 안간힘을 쓰다 생기는 부작용을 숱하게 목격했다. 다른 실력자를 깎아내리려 한다거나, 남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등의 일들 말이다.

 명성과 실력이 늘 정비례하게 성장하지는 않는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이 있었음에도, 사후에 인정받는 분들도 부지기수이다. 사실 어떤 신념을 가지고 무엇을 먼저 취하든, 그건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다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명성을 먼저 얻었을 때 스스로가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는 상태'를 건강하게 견딜 수 있느냐, 내가 과연 그 초조함을 빠른 성장으로 치환시킬 그릇이 되는 사람이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반대로 동생과 같이 본질에 먼저 집중하면서 묵묵히 나아가는 길을 선택한 경우, 실력 대비 큰 명성을 먼저 얻은 사람들이 나를 적으로 여기고 내 길을 방해할 때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실력을 갈고닦다 보면 수면 위로 드러나 그들의 '경쟁자 레이더망'에 걸리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때, 이미 내 성장 과정을 지켜보고 나를 지지하는 팬, 혹은 대중의 존재는 결정적인 방어막이 될 수 있다. 외부 요인으로 인한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들이 나의 사회적 증인이 되어줄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작업을 그만두지 않게 버틸 힘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후자의 길을 택했더라도 스스로를 알리며 (성향상 쑥스럽겠지만) 외형과 명성을 갖춰가는 것은 본질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숙제이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마침내 본질에 합당한 외형과 명성을 얻었다면, 나와 같이 힘겨운 길을 선택한 이들이 조금 더 세상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작은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본질 추구의 길로 멀리 돌아오고 있는 장인들의 세이프 박스 진입을, 명성과 본질의 간극이 큰 사람들이 가로막지 못하도록 말이다. 

 창작자로서 어떤 길을 택하느냐는 개인의 몫이지만, 실력과 명성의 간극이 큰 유명인에게 돈과 시간을 소비하는 우둔한 대중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만은, 다수의 바람일 것이다.


완벽한 내향인인 그녀가 손수 불어 빚은 유리공예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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