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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Feb 26. 2016

캔버라. 새와 밤

그렇게 돌아왔다 - 캔버라의 교환학생



1



아무것도 없다. 해야 할 일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작업과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도시. 

아무 향도, 어떤 맛도 첨가되어있지 않은 정제된 수돗물과 같은 도시 캔버라. 


걸어도 걸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풍경 속, 아주 멋없고, 우울하도록 솔직한 인공 호수가 있다. 여기서 만난 것은 사람도 건물도 아닌, 새들이다. 나는 이 호숫가에 앉아 정체 모를 검은 새의 일광욕을 넌지시 바라보다, 청둥오리들의 행렬에 길을 비켜주고, 동그란 열매를 부리로 아그작거리는 분홍 가슴 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애써 플라타너스에서 시선을 돌린다. 


짙으면서도 붉은 호주의 녹음이 황금으로 다시 피어나기까지, 노란 왕관을 쓴 새하얀 앵무새 코카츄는 발악과도 같은  목멘 비명을 토하며 쉴 새 없이 날아다닌다. 날개 양 끝이 1미터는 족히 되는 이 목청 좋은 녀석은 가히 위협적이지만, 특유의 귀여운 얼굴 때문에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머리 깃을 바짝 세운 잿빛의 날렵한 새는 늘 내가 지나는 길목 울타리 위에 앉아, 제 짝과 함께 그렇게도 쫑알댄다. 내가 다 질투가 날만큼. 

이른 아침과 해질녘, 새들의 재잘거림에 귀를 기울이며 하루를 시작하고, 일과를 마무리한다. 이 작은 즐거움마저 없다면, 도대체 이 도시의 단조로움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2



이곳의 밤은 거짓 없는 칠흑.


그래, 이렇게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으로는 저녁 산책이 어렵지.

처음 이 땅을 밟은 그 밤을 기점으로, 밤 산책은 당분간 접어두기로 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유람선 불빛. 

오직 자기 자신 밖에는 볼 수 없는 까만 거울 위를 떠다니는 저를 이해할 수 없다. 

흥겨운 음악 소리가 새어 나오지만, 

거기엔 알 수 없는 섬뜩한 기운이 스며있다. 

어쩌면 지금이, 침몰하기 전 마지막 연회일지도.





누군가는 이렇게라도 흥겹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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