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용인의 일기

지속 가능한 오해에 대하여

by Joy Jo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초가을.

하도 급하다고 해서 계약서도 쓰기 전에 베트남 IR 출장을 먼저 다녀왔다.

며칠 뒤, 급한 볼일을 다 본 대표는 자기네가 좀 더 준비된 다음에 채용하겠다고 발을 뺐다.

이의 제기는 더 하지 않고, 일주일치 급여만 받고 끝냈다.

받았어야 할 금액에서 몇십만 원이 비었지만, 굳이 따질 기력도 없었다.

예전 같으면 변호사 자문이라도 받았겠지만, 두어 번 겪고 나니 그것도 내 시간과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억울함은 남지만, 곱씹는다고 나아지는 일은 없다.

그 안에서도 배울 거리란 과연 있었다.




데고 베이지만 망가지지도, 무뎌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예민하게 그 사람들의 속내가 보이지만, 이제는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는 진한 여백이 생겨났다.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내 안의 열기와 바깥의 풍파가 더해져 틈이 생겨난 것이다.

자라난다기보다 밀도가 높아지다 못해 어긋나 틈이 생긴 케이스다.

내면의 지진이라 해야 하나. 어쨌든 불가항력적인 재해 비슷한 것이다.

부당함 앞에 무뎌지거나 너그러워진 것이 아니어서, 출근길에 명상 음악을 들으며 강변이라도 걸어야 이 화가 조금은 식는 느낌이다.

새로운 조직에는 또 다른 최종 보스가 (가도 가도) 새롭게 등장하니 말이다.


일이란 결국 ‘나의 가능성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 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에는 재능이 곧 일의 방향이라 믿었고, 재능이 많을수록 삶의 선택지가 넓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건, 가능성이 많을수록 방향이 흐려진다는 사실이다.

일은 그 흐릿한 가능성 중 하나를 택해 꾸준히 연명하는 지난한 행위다.


생계는 일의 조건이고, 이상은 일의 명분이며, 보람은 일의 부산물이다.

셋은 같은 무게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는 생계가 무겁고, 하루는 이상이 무겁다.

그리고 대부분의 날은 그 어떤 것도 뚜렷하지 않다.

그래도 일을 멈추지 않는다. 멈추면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관계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가까우면 상처가 나고, 멀면 공허하다.

대부분의 관계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유지된다.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결과를 통해 안도한다.

그게 동료라는 이름의 관계다.

일은 결국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쩌면 일은 ‘지속 가능한 오해’다.

내가 이 일을 잘한다고 믿고, 누군가 그것을 함께 믿어주는 것.

누군가 그 믿음을 함께 믿어주면 어느덧 진짜 그런 내가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서로의 실체가 우리 바깥에서도 유의미한 무엇이 되면 다시 그 흐릿한 경계가 잠시 선명해진다.

회사의 방향성이 괜찮다면, 사회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작은 발자국이 남는다.

그 오해와 믿음이 쌓여 하나의 역할이 되고, 역할이 쌓여 이름이 된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면 이름도 희미해진다.

이름이 사라지는 공포 때문에, 우리는 다시 일을 붙잡는다.


강을 두 번 건너 출근하는 아이러니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일은 내가 세상과 합의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언어가 아닌가 말이다.


이런 깨달음이 있어서 이 모든 게 보람 있다고 말하려 하냐고?

아니, 전혀 아니다.

여전히 버겁고, 여전히 불합리하다.


일은, 내가 풀지 못한 모든 문제들로부터 잠시 비켜선 불완전한 피난처다.

여기서의 일이란 창작이 아니라, 피고용인으로서 누군가의 목표를 대신 실현하는 일이다.

그 안에서 나는 살아남기 위해 내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고,

이따금 버티는 법을 배우며, 아주 조금씩 사람을 이해한다.


못난 대표가 모든 잘못을 직원 탓으로 돌리듯,

비겁한 나는 모든 화살을 ‘일’에게 쥐어주고 고통받는 척을 한다.

결국 스스로를 구하지 못한 채 관찰자 역할에 머무르고 있고,

이 역할에 꽤나 만족하고 있다.


불합리의 파편들 속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일을 배우고,

누군가는 버티며 조금씩 성장한다.

아마 나는 그들 사이 어딘가에서,

내일도 내 방식으로 희망을 흉내 내고 있을 것이다.


나와 내 동료들에 대해,

조금 더 생산적인 오해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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