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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May 31. 2024

아무렇지 않다 ≠ 괜찮다

아무렇지 않지만은 않은 하루라서


 어떤 충격이나 슬픔, 분노를 가져다준 사건을 겪을 때마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라고 느껴야 괜찮은 것인 줄 알았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시간이 흐르고 '아무렇지 않은' 상태가 되었을 때, '나는 이제 괜찮아.'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나아질 리가 없는 큰 상실을 겪는 경우, 그렇게 '아무렇지 않아지는 것'이 오히려 위험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잠잠해져 외신에서 다루어야만 겨우겨우 다시 관심이 재점화되는 범죄 사건이라든가, 재앙에 가까운 인명사고 등, 모두가 없었던 양 쉬쉬하고 있는 국가적 사건들이 하나 둘, 멀어질 때마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이 떠오른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소리쳤던 아이처럼, "너 지금 하나도 안 괜찮아!"라고 외쳐 줄 마음속 아이가 우리 안에 살아 있다면, 무언가 다른 결론이 났을까.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건 결국 한 명 한 명의 우리 자신일 뿐인데.


 삶의 여정에서 갑자기 마주한 지극히 개인적인 상실 앞에서, 사실 '아무렇지 않아졌다'라는 건 괜찮다는 신호가 아닐지도 모른다. 상실 이전보다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는 일상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아진다는 건, 생명 유지에 필요한 통각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작은 상처나 몸속에 일어난 이상에 대한 최소한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적기에 병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를 수 있듯, 아픈 것에는 아프다, 말이 안 되는 것엔 화난다 느낄 줄 알아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괜찮아지고 있다는 증거는 이런 것 아닐까.

설거지를 하다가도 문득 눈시울이 붉어지고, 잠시 슬퍼하다 또 이내 잦아들고, 그런 들쑥날쑥한 감정의 파고가 줄어드는 것. 마주치기만 하면 하루를 통째로 삼켜버리던 거대한 슬픔의 파도가 이윽고 잔잔해져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작은 파도가 되는 것. 그러다 날이 궂은 어떤 날에는 또 하루를 완전히 내주어도 아무렇지 않겠다 싶은,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이제는 그런 하루 또한 견딜만하다 느껴지는 것.


 그런 아무렇지 않지만은 않은 하루여서, 나는 오늘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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