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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Feb 28. 2016

유학 무한정 연기

서울 #3. 순도 100의 무모함


실은, 돌아오자 마자 바로 9월 학기로 떠날 수 있었다면,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교환학생 선발이 결정되기도 전에 먼저 확정된 것이 영국 킹스턴 대학 석사과정 입학 허가였다. 설명이나 듣자며 참석했던 대학 설명회에서 관계자와 인터뷰를 가지던 중 무조건부 합격을 받았던 것이다. 멜번에서 어떻게 버스킹을 시작했었는지, 그림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는지 등의 이야기들을 신이 나서 떠들어댔던 것 같다. 조건부 합격을 받아둔 다음 영어 시험을 치르는 사람도 많은데, 내 경우엔 교환학생 때문에 미리 받은 IELTS 성적이 있어 바로 결정이 되었다. 


설명회에 참석한 이유는 사실 별 볼 일 없다. 같은 수업을 들었던 영국인 교환학생이 만날 때 마다 본인의 학교를 자랑하기에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건지 궁금해서였다. 주도 면밀한 성격이 못 되는데다 설명만 듣고는 딱히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없어서, 내 눈엔 그 학교가 그 학교 같았다. 킹스턴은 나의 모교와 자매 대학이기도 하고, 일러스트레이션 수업 때 종종 출현했던 작품 자료들의 출처이기도 한데다 주변의 좋은 평이 더해지니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갈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밟을 유럽 땅이라면 학생 신분으로 진득하게 있어보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학생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활동반경을 옮기고 싶은 것이다. 지형을 바꿔 놓으면 물은 알아서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섭취하는 음식이 바뀌면 피부와 체형에 변화가 오듯, 내가 온 몸으로 호흡할 타국의 공기, 바람, 글, 버스 밖 풍경, 대화 등이 오랜 기간 동안 내 안에 가랑비처럼 스미면, 마침내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조합의 색들이 캔버스 위에 피어날 것이다. 


입학 허가를 받던 당시로부터 이미 벌어진 작업 성향이 다소 고민되기는 했지만, 아무쪼록 감당할 수 있겠거니 하며 다른 전공을 알아보지 않았다. 선뜻 회화 전공으로 넘어가기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내 작업이 어떻게 흘러갈 지 예측하는 것 또한 불가능해서였다. 이것이 엄청나게 긴 타원 궤도 위에 있는 건지—언젠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지—아니면 궤도 따윈 애당초 없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한 차례 먼 바람을 쐰 마음 속 풍향계도 쉼이 필요했기에 나는 킹스턴 측으로 1년을 미루겠노라는 서신을 보냈다. 1년이라 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무한정 연기나 다름 없었다. 


나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언젠가부터 나의 지인들은 나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 혹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떠올리고 있었다. 하나 둘씩 이번엔 얼마나 머물다 떠나느냐고, 혹은 아직 외국에 있느냐고 안부를 물어왔다. 굳이 해명하고 싶지 않아서, ‘곧 가게 되겠지’란 대답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남들이 생각하는 나와는 다르게, 나는 흘러가는 상황에도 곧 잘 순응하는 사람이라서. 갈 때가 맞는 거라면 가게 되겠고, 갈 때가 아닌 거라면 갈 수 없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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