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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Feb 28. 2016

아침, 커피를 뽑던 날들

서울 #3. 순도 100의 무모함


문제가 생겼다. 


ANU 측에서 성적 처리를 너무 늦게 해주는 바람에 8월 졸업이 무산된 것이다.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지만, 졸업식을 다음 2월에 해야 한다는 것이 학생처의 대답이었다. 갑작스레 생겨버린 너무 긴 과도기. 가만히 손을 놓고 있기는 가족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미안해서 크고 작은 회사들에 지원해보며 할 만한 일들을  찾아다녔다. 


작은 카페 일을 고정으로, 공공 미술 작품들의 상태를 체크하는 일, 아트페어 스탭, 영어 과외 및 외국인 학교 방과 후 교사와 같은 교육일 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에 손을 댔지만 그러는 동안 어느 회사에서도 연락을 주지는 않았다. 하긴 인사 담당자가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숱한 지원서들 중 나같이 역마살 붙은 사람을 못 골라낼 리가 없었을 것이다. 


번듯한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모습이었지만 돈 대신 시간을 번 덕분에 동생과 큰 전시에 참여하기도 하고, 개인전을 할 만한 작업 분량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불러 주는 곳은 없었지만 이제까지 모은 것들을 한 번쯤은  풀어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 일하던 카페 사장님이 가게 자리를 내놓게 되어 자연스럽게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왔다. 


아침이면 눈, 비, 혹은 햇살을 맞으며 닫힌 문을 열고, 아침 라디오를 틀고, 주스가 될 과일들을 씻고 다듬고, 샌드위치 개수를 확인하고, 오픈 준비가 끝나면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출근 시간 손님들이 몰려올 때까지 멍하니 있다가 퍼뜩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퀴즈의 답을 문자로 보내기도 하던 날들. 


참으로 익숙하고 담담한,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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