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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Feb 28. 2016

포기와 무모함의 접점에서

서울 #3. 순도 100의 무모함


봄엔, 무작정 저벅저벅 걷는다. 


6개월 만에 밟은 학교에서 1년도 넘게 못 본 학우들 사이 어디에 껴야 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메모리 카드도 없는 빈 카메라 덕에 멀쩡한 사진 하나 못 건진 멍청한 졸업식을 치르고 난 첫 봄이다. 


전시를 다니다 맘에 드는 공간이 보일 때마다 관계자에게 대관료를 물었다. 지하임에도 감당하기 어렵게 책정된 곳이 대부분이었고, 빛이 좋은 공간들은 가히 대학 등록금 수준의 액수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입구가 협소한 한 갤러리를 발견했는데, 학생 단체전을 하는 모양이었다. 비좁은 사무실을 두드리니 실장이라는 분이 나왔고 젊은 작가들을 위해서 저렴하게 대관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곳은  다시없을 것 같아서, 덥석 예약을 했다. 전시가 끝나기 전까지만 완납하면 되니 그 정도면 아르바이트로도 충분히 메울 수 있다. 


웃긴 것은, 여전히 영국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거의 반사적으로 8월 일정을 잡았다는 것이다. 1달 정도면 전시 후 잘 정리하고 떠날 수 있겠다, 하고. 이때까지도 나는 두 마음이 있었다. 안정적인 일을 구해 몇 년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과, 되든 안되든 무모하게 떠나 보고 싶은 마음. 둘 중 하나를 포기하거나, 어느 한쪽에 미친 듯이 무모해지면 된다. 포기해야 모두가 편해지는 쪽은 떠나는 쪽이다만, 안되면 어디까지 안 되는 건지, 더 밀리지 않을 때까지 머리를 들이밀어 봐야 포기가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일을 구하는 쪽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무슨 일이든 구해질 것이겠고 (혹은 눈을 낮추면 언제든지 구해질 테고) 떠나는 쪽은 포기하지 않더라도 이루기 힘들 것이다. 어차피 안될 가능성이 크니 나중에 생각이나 많아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건 다 쏟아 보고 그만 두자, 그런 마음이었다. 각종 장학금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은행이란 은행은 다 찾아갔다. 


“학부 때 학자금 조금밖에 안 빌렸는데 지금 마저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마음을 다해 물었지만 원체 우문인지라 메아리조차도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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