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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Jan 13. 2022

우리가 계속 작업을 하는 이유

사실 우리는 부캐를 가진 적이 없다.


'그림을 그리는 자신과 회사를 다니는 자신 중 어떤 것이 본캐이고 어떤 것이 부캐인가?'


업계를 리딩하고 있는 어떤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들었던 말이다. 어떠한 비하나 괜스레 심중을 떠보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 젊은 대표가 지닌 순전한 호기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왔다.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역시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였다.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부캐를 가진 적이 없고, 회사를 다니는 것도, 작업을 하는 것도 모두 본캐가 하는 일입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지요. 평생에 걸쳐서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어찌 보면 어떤 사명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이왕 이렇게 태어난 이상 스스로가 실현할 수 있는 가치들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것 또한 인간의 본성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가치를 발휘하는 루트가 예술이기에, 당장의 성과가 눈에 보이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이다. 물론 그 '성과'라는 것을 살아있는 동안에 보지 못할 수도, 혹은 영원히 실현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종종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종류의 예술을 하건, 예술가의 길에 잠시라도 접어든 적이 있다면 이러한 불안감에서 누구든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어느 분야에나 있는 나르시시스트의 경우는 논외로 하자.)


하지만 그럼에도 예술가들은 자신이 구축해 나아가고 있는 세계를 쉽사리 무너뜨리지 않는다. 이것은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예술가이든, 이미 경제적으로 많은 보상을 받고 있는 소위 '성공한' 예술가이든 마찬가지다. 오히려 선택지가 많아졌을 때에도 작업적으로 타협하지 않는 작가들이 '예술가'라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살아 있는 동안 위세를 떨쳤던 예술가도,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는 이들도 자신의 세계를 단단히 확장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시절 유행하던 시류를 따랐던 것이라면,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던 것이라면, 다른 말로 그 성과가 자신의 본캐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 씨앗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양심은 아마도 스스로를 예술가로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국에는 괴로웠을 것이다.


당장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도, 10년이고 20년이고 우리가 작업을 해 나아가는 이유는 이러한 예술적 씨앗이 이미 우리 안에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 자라났기 때문이다. 이것을 죽이지 않고 잘 키워내면 피어날 꽃과, 열매가 (그것이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는 모를지언정) 마음속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때로 남들이 한심하게 여기는 일을 생업으로 삼거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길을 마다하는 선택을 내리는 것이다. 우리의 건강한 본캐는, 그렇게 매 순간마다 옳은 결정을 내려왔다.


그러니 예술을 하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마음이 동하는 대로 본캐의 결정에 따르도록 하자. 우리는 서로의 세계관이 충돌하는 부캐를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으니까.

 

Sainte-Chapelle 성당에서 느낀 것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 동료 작가인 우재오 사진작가가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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