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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04. 2020

안녕, 피아노맨!

틈틈이 작곡가의 생애를 들여다본다. 클래식 애호가 놀이에 푹 빠져 산다. 아름다운 음악을 찾아 듣고 작곡가들의 삶을 파헤친다. 나의 놀이다. 작곡가의 삶을 텍스트로 접하고 곡을 작업할 당시의 상황, 곡에 대한 이해가 담긴 프로그램 노트를 즐겨 읽는다. ‘아 이러한 마음으로 이런 대곡을 썼구나’

피아노 협주곡을 가장 좋아한다. 같은 곡인데도 연주자에 따라 다른 색이 묻어나는 게 참 신기하다. 대단한 연주 실력은 물론이고, 그가 피아노 앞에 풀어낸 마음, 그 마음을 듣는다. 그 마음이 들린다. 연주자에 따라 이렇게 해석이 다를 수 있다니. 연주자마다 다른 표현들은 곡의 존재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은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수개월을 쇼팽처럼 살았단다. 그처럼 생각하고 그처럼 마셨겠지.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마스터급 연주자가 음대생을 가르친다. 마스터의 코칭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소리, 연주가 놀랍도록 재미있다.

마스터는 본격적인 클래스에 앞서 음대생의 연주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다. 음대생이 첫 연주를 마치면 마스터의 레슨이 시작된다. 이때 마스터가 음대생에게 제일 먼저 하는 필수 질문.

“이 작곡가가 어떤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아, 작곡가의 삶을 이해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담아 연주하는 것이 첫째구나. 가장 중요하구나’

연주자가 연주를 마치고 관객석을 향해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할 때, 관객석에서 일어나 나 역시 허리를 숙여 깊숙이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당신의 연주가 나에게 얼마나 큰 아름다움을 선사했는지. 그리곤 집에 터덕터덕 돌아가는 길에 또 한 번 감사한다. 연주자에게뿐 아니라 이런 아름다운 대곡을 만들어준 드보르작에게. 라흐마니노프, 모차르트, 슈만, 베토벤에게. ‘선생님들 고마워요’

연주자의 연주는 공기에 질감을 만들어내고 그대로 관객 속으로 흩어진다. 공연예술의 생생한 특성이다. 그 공간과 시간, 순간을 채우고 사라져 버리는 놀라움. 사라져 버렸는데 남아 있다. 남아있는데 사라져 버렸구나.

그 공간과 시간, 순간을 채우고 사라져 버리는 놀라움. 사라져 버렸는데 남아 있다. 남아있는데 사라져 버렸구나.

연주자들의 연주를 수없이 듣고 보고 감상하며 생각했다. 내 삶도 허공으로 사라지겠지. 나의 연주도 흩어지겠지. 아 매 순간 어딘가로 흩뿌려지고 있겠구나. 그렇지만 나의 말과 행동, 생각의 공기가 바람이 되어 누군가에겐 내려앉았으리라.


작곡가를 깊이 사랑할수록, 그를 깊이 이해할수록, 그처럼 생각하고 먹고 마실수록, 작곡가의 마음으로 아름다운 연주를 해낼 수 있다. 그러니까 사실, 내가 빙빙 말을 돌리고 몸을 배배 꼬며 고백하고 싶었던 건, “사랑하는 예수님, 당신처럼 걸으며 당신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연주하고 싶었어요”

“조이, 걔는 부단히도 나의 마음을 살피고 보살펴줬어. 예수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지”

“그녀가 연주하는 그녀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알고 있니? 그녀와 함께 그 시간을, 그 공간을 공유하지 않았다면 아마 말로 다 설명할 순 없을 거야”

나의 친구, 나의 가족, 나의 동료, 나의 이웃. 누군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아름다운 연주를 듣고, 그 곡을 만든 작곡가가 궁금해져 그에게 경의를 표했던 것처럼, 나의 조용한 연주를 듣고 하늘을 그려내고 바다를 펼쳐낸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면. 향기를 남기고 사라져 버릴 나의 삶. 아름다운 연주 한 곡으로 그 순간을 가득 채운 피아노맨이고 싶어라. 안녕, 피아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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