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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Apr 22. 2021

엄마의 엄마를

엄마에게

엄마에게


엄마, 안뇽.


내 옆엔 아직 엄마가 이렇게 있어서,

엄마를 먼저 보낸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 당연히. 물론.

'물론', '당연히' 그렇다고 해서, 그 헤아림을 멈추진 않으려고 하고요.

역시나 오늘도 나의 상상력과 사랑력을 발휘해

잡을 수 없는 것들을 잡아보려

그릴 수 없는 것들을 그려보려 합니다.


적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가장 그 처음이자, 의무는 엄마일텐데.

엄마를 보낸 엄마를 도울 수 있는 것들에 관해 나는 오늘도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면, 그리움, 상실감, 사랑. 다시 만날 거란 기대같은 것들을 더 선명히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혹시 지금부터 예습을 시작하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나도 언젠가 엄마를 의연하게 보낼 수도 있을까요?

백년 후이길 바랍니다.


나는 죽음이 생명과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장례 기간 동안, 육체가 사라지는 눈 앞의 죽음과 눈 앞의 예수님을 만나며

몸은 너덜너덜 했지만, 마음과 영혼은 맑아졌어요.  


엄마의 엄마를 천국으로 먼저 떠나보내며.

나는 마치 우리 엄마를 보내는 것처럼 장례 중에도 앓아 누웠네.

엄마가 큰 소리를 내어 우는 것을 보고

엄마의 세 딸과 아들은. 알고 있었어.

엄마가 할머니 앞에 미안한 것들. 죄스러운 삶.

"엄마, 나도 힘들어"라고 발을 동동 거리며  소리.


엄마는 처음부터 나의 엄마였어서,

나는 우리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인 줄로 알았지만.

소녀이다가, 여인이다가, 누군가의 아내이다가.

그러다 많이 힘들었겠지.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생각이 미리 닿을 수도 없었던 삶을 살아내야 했을 테니까.

자녀들의 엄마로, 엄마의 엄마의 자녀로.

삶은 더 무거워지고 풀어낼 수 없는 타래처럼 얽혀갔겠죠.


올해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한 삼 년을 지나 보낸 것 같습니다.

연이은 장례에 낯설었던 장례 용어와 절차.

음식을 나르고 치우는 식당 운영에는 도가 텄지만.

이번엔 때마다 우느라 넋이 나갔네요.

여러 인사와 심부름은 사촌동생들에게 맡기고

기력을 못차리고 골골 댔어요.


그러다 말로 전하면 휘발되어버릴 것 같아.

그렇지만 엄마에게 꼭 전해야할 말이 있어.

편지를 씁니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 앞에 죄송한 삶이라면

나는 앞으로 엄마 앞에 얼마나  죄송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걸까.

사람이 보기에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흔적이 남았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영광스러운, 빛나는 삶을 저는 보았어요.


엄마를 통해 엄마의 가정에,

엄마의 아빠에게, 엄마의 엄마에게

복음이 심어지고

덕분에 천국이 이렇게나 선명한

예수님 모신 잔치를 치릅니다.

장례의 모든 예배마다, 절차마다, 순간마다,

눈물짓다 웃음짓다 우리 안에 존재했던  빛나는 것들.  

눈 앞의 천국, 눈 앞의 예수님, 눈 앞의 영광이

다 엄마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부모만 자녀에게 유산을 내려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나님께서 엄마를 통해 부모에게 흘러가게 하신

믿음의 유산을. 꼭 기억해주세요.

하나님께서 엄마의 삶을

엄마의 엄마에게, 엄마의 아빠에게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꼭 기억해주세요.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달라서.

그래서,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얼마나 소중한,

자랑스러운, 생명을 전한 자녀였는지.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엄마를 통해

할아버지는 천국에서 할머니를 기다리고 계셨겠죠.

엄마를 통해

할머니는 바쁘게 천국으로 걸음을 옮기고 계실 거에요.

다 엄마 덕분입니다.

다 우리 예수님 덕분이지요.


남은 날들.

밝게 웃으며, 엄마의 엄마 앞에

자랑스러운 자녀로

반듯하게 서시길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할머니 안녕!

엄마 잘 모시다가.

우리 그날에, 눈부신 천국에서 만나요.


엄마, 안녕.


엄마의 엄마를 보내며

나의 사랑스러운 외할머니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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