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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an 22. 2016

#061.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따뜻함이 느껴지는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



**이 영화는 국내에서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이라는 타이틀로 개봉했지만, 원작의 타이틀은 <5 Flights Up>이었으며, 해외 영화제 출품 시에는 두 주연 캐릭터의 이름에서 비롯된 <Ruth & Alex>였기에 세 가지 모두 통용되는 타이틀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01.


모든 배우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연륜이 생긴 배우들은 꼭 한 번쯤은 거쳐가는 호흡의 작품들이 있다. 영화 <에브리바디스 파인>(2009)의 "로버트 드 니로"가 그렇고,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나고 만 <앵그리스트 맨>(2014)의 "로빈 윌리엄스"가 그랬다. 그리고 여기 올해로 79세(1937년 생)를 맞이한 "모건 프리먼"과 70세(1946년 생) "다이앤 키튼"이 그렇다. 사실 두 사람이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최근에도 다양한 작품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모건 프리먼"은 왠지 <다크 나이트>, <오블리비언>, <트랜센던스> 같은 작품들과 더 어울리게 느껴지고, "다이앤 키튼"은 초창기 "우디 앨런" 감독에게서 독립한 뒤에 의외로 많은 작품에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 물론 "모건 프리먼" 역시 <라스트베가스>, <매직 오브 벨 아일>, <버킷 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등의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들에 출연한 바 있다.


2) 젊은 시절의 "다이앤 키튼"은 "우디 앨런" 감독의 뮤즈로 불릴 정도로, 개인적 혹은 대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바 있다. 특히 <애니 홀>은 "우디 앨런"이 그녀를 위해 쓴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다이앤 키튼"의 실제 이름은 "Diana Hall"이며, 그녀의 별명이 "애니" 였다고 한다.


02.


영화 자체는 굉장히 단순하다. 단촐한 출연진과 잔잔한 이야기들이 만나 커다란 굴곡은 없지만 하나의 조화로운 작품이 완성된다. 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스토리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가장 뼈대가 되는 노부부의 이사와 관련된 내러티브(A)가 중심을 잡아 준다고 볼 수 있고 그 외에 이 스토리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두 개의 작은 사건들, '텔레비젼 속 테러 사건'(B)과 '소소한 관계'(C)에 대한 이야기들(조이, 강아지 '도로시')이 함께 한다.


03.


이 영화의 축이 되는 이야기 A(노부부의 이사)가 의미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첫 보금자리로 선택한 공간이자 지난 40년의 인생을 품어왔던 장소를 떠나야만 한다는 것(미시적인 측면)과 나의 삶이 머무르던 공간이 이제 다음 세대에게 밀려날 때가 되었다는 것(거시적인 측면)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이 두 가지 측면을 조금도 흔들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무게로 잘 다루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내용을 통해서는 '떠난다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함과 동시에 후자를 통해서는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난 세대가  느낄 수 있는 특정한 상황의 감정까지 획득하는 것이다.


04.  


영화가 시작되고 그들의 애완견인 "도로시"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어떤 상황의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와 반대로 과정을 중시하는 여자의 차이가 노년에 이르러서도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이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남자라서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자라서 그렇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이라는 게 누구든 양면의 모습을 모두 갖기 있기 마련이기에 한 사람이 어느 한 방향으로만 몰입하게 될 때 다른 한 사람이 반대 방향을 고려해 볼 수 있도록 붙잡아 줌으로써 두 사람이 함께 중도(中道)를 걸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 영화 속 주인공인 "알렉스"(모건 프리먼 역)와 "루스"(다이앤 키튼 역)가 보여준 연인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05.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는 굉장히 자연스러워 쉽게 놓칠법한 단어가 하나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반복적으로 하는 대사 하나. "괜찮아?" 앞서 언급한 두 사람의 모습과 더불어 이 간단한 대사 하나는 40년이 넘는 그 긴 세월 동안 "알렉스"와 "루스"가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어 왔는지 유추할 수 있게끔 만드는 대목이다. 영화에서도 잠깐 언급되고 있듯이 그들의 결혼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겪어 왔으며, 그 이후에도 마음 아픈 일들을 겪어내야 했으니 당연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영화 <블루 발렌타인>(2010)을 통해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두 사람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님을, 서로의 사랑을 지켜낼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지켜본 적이 있다. 이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에 나오는 노부부의 인생 역시 '당연'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다.


06.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조이"(스털링 제린스 역)라는 인물의 존재다. "알렉스"가 처음 "조이"를 만나게 되는 순간에도 두 번째, 세 번째 만나게 되는 순간에도 감독은 "조이"라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알렉스"가 어떤 심정적 변화를 느끼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 변화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루스"의 성화에 못 이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난 40년간 좋아했던 그 공간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던 부분에 대한 것이 가장 컸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옮겨 갈 집을 찾는 동안 그 결심이 약해지고 있었던 와중에 어린 "루스"의 한 마디가 어떤 확신을 주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 집보다 좋은 곳은 없어요." 한 편으로는 이런 형식,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어른이 어떤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부분들을 통해 이 영화가 노부부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할 때 놓칠 수 있는 점들을 환기시켜내는 역할도 한다. 노부부가 젊은 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식의 표현이 간혹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결코 젊은이들의 모든 부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영화 속 세상은 세대 간이 공존하는 법을 알아가게 된다.


07.


"알렉스"에 의해 이사가 무산이 되고, 영화 러닝타임 내내 수수료만 바라보며 작업을 진행해 오던 조카 "릴리"(신시아 닉슨)가 그런 부부를 향해 중지를 치켜 세운다. 자신이 노력한 댓가를 얻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철 없는 비난이다. 하지만 노부부는 그것마저도 웃어 넘긴다. "올해 추수감사절엔 쟤네 집 못 가겠어.." 라며. "릴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리 젊은 사람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생각했다. 우리는 늘 기성 세대들을 향해 우리도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인정해 달라고 몸부림 치고 있지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 결국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철 없는 아이들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08.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아파트 계단을 오르던 "알렉스"는 아랫집에 이사 온 젊은 부부의 모습을 보며 40년 전 자신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처럼 영화는 러닝 타임 전체를 활용하여 과거 회상을 통해서는 지난 40년 동안 두 사람이 쌓아 온 기억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현재의 모습에서는 그들만의 또 새로운 이야기들을 쌓아간다. 10년 뒤에 두 사람은 또 어떤 모습으로 어떤 기억들을 회상하며 미소짓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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