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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an 24. 2016

#062. 빅쇼트

이해하는만큼 깊게 빠져들 법한 이야기.




01.


얼마 전 열린 7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2016.01.10)에서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6)에 밀리기는 했으나 해외 유명 매체들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주목 받은 작품이 있었다. 물론, 골든글로브쯤 되는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사실 이 작품 <빅쇼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남다른 부분이 있었다. 영화 <머니볼>(2011)과 <블라인드 사이드>(2010)에 이은 "마이클 루이스"의 동명 원작 저서 <빅숏, Big Short>을 기초로 했다는 사실. 그리고 "마이클 루이스"의 <빅숏>은 어쩌면 미국에서 현재 가장 언급하기 어려운 내용 중 하나일지도 모를 '서브프라임'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파헤치는 내용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이와 더불어 <다크 나이트>(2008)의 "크리스찬 베일", <블루 발렌타인>(2010)의 "라이언 고슬링", <폭스 캐쳐>(2014) "스티브 카렐" 등 자신만의 확고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 배우들을 한 작품에서 만난다는 사실은 분명히 이 작품에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02.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브프라임' 사태에 대한 내용들, 특히 사건과 관련된 금융 관련 지식, 용어들을 러닝타임 내에서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표현해 낸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처럼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의 많은 선재물들은 이러한 용어들을 잘 모르더라도 영화를 즐기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정말 솔직히 이야기 해서 '전혀' 없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대강의 내용조차도 모르고 영화관에 들어 갔다가는 배우들의 연기는 커녕 자막을 따라가기도 바빠서 스크린 위에 설명되고 있는 활자들에 멱살이 쥐인 채로 러닝타임 내내 끌려다니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일반 관객들에게는 정말 생소할 법한 용어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 용어들과 일부 내용들이 복잡하게 다가올 수 있으나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면 '서브 프라임 사태'에 대해 이보다 더 흥미롭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부분 역시 함께 갖고 있는 작품이 바로 이 <빅쇼트>라 할 수 있겠다. 만약 여건이 된다면 '서브 프라임 사태'가 무엇인 지,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만 찾아보고 관람하더라도 몇 배는 더 즐거운 관람이 될 것임을 미리 알린다.


03.


이 영화를 관람한 후 많은 관객들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4)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들을 한다고 한다. 실제로 두 작품은 시기가 다르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월 스트리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따라서 금융권과 관계된 부분들에 대한 묘사가 잦은 작품들이다. 또한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홍보 과정에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만큼이나 이 작품 <빅쇼트>의 내용이 '사기극', '도박' 이라는 단어들과 결부되어 알려지고 있어서 더욱 그런 늬앙스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실제로 놓고 보면 두 작품은 기본적인 뼈대부터가 완전히 반대쪽에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내용이 '개인 -> 제도 -> 개인'의 과정을 통해 "조단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라는 인물 개인의 성공과 몰락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이번 작품 <빅쇼트>는 반대로 '제도 -> 개인 -> 제도'의 모습에 비추어 인간이 만든 하나의 커다란 제도가 무너져 가는 과정을 비추어 내고 있는 것이다.


04.


영화는 위에서 언급한 하나의 커다란 제도가 무너져 가는 상황 속에서(실제로 무너지는 과정은 일순간이지만..) 독립되어 있지만 평행한 세 개의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아주 치밀하게 이야기를 구성해 나간다. 그리고 이 각각의 내러티브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방법으로 '서브 프라임 사건'의 전초 증상들에 눈을 뜨게 되고,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의사 출신의 헤지펀드 투자 전문가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 역). 그는 개인적인 능력(수치 분석력)을 통해 가장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며 현상을 직접 확인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직관적인 분석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은 '월 스트리트'에 대한 분노가 가득한 펀드 매니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 역). 그는 "마이클 버리"와는 반대로 심리적인 측면(형의 죽음, 업계에 대한 불만)이 원동력이 되는 인물이다. 특히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 역)을 통해 알게 된 위기론에 대해 직접 실제를 파헤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의 존재로 인해 관객들은 실제로 '서브 프라임 사태'가 어떤 상황들 속에서 벌어지게 되었는 지 알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어느 한 스타트업 기업의 "제이미 쉬플리"(핀 위트록 역)와 "찰리 겔러"(존 마가로 역). 자신들이 갖고 있는 30만 달러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던 중 우연한 기회에 "마이클 버리"의 자료를 손에 넣게 되며, 그들의 조력자인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 역)와 함께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 인물들이다. 확실히 이 세 가지 내러티브와 인물들은 모두 같은 상황 속에 놓여 있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 결과를 맞이하지만 그 누구도 무너져가는 월 스트리트를 구하지 못했다. 이 방식은 확실히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2007-2008 세계 금융 위기' 당시의 문제들이 얼마나 광범위 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며, 결코 개인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1) 실제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케이티"(아데페로 오두예 역)를 찾아 온 "마크 바움"이 어느 정도의 손실까지는 떠 안겠다고 이야기 하지만, "케이티"는 "마크 바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금액의 손실을 고백한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05.


각각의 모습이 완전히 개별적으로 보이는 위 세 개의 독립적인 내러티브들에 유일하게 공통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나의 성공과 수익이 타인의 불행으로 직결되는 상황 속에서 개인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고민이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인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금융 위기가 터지고 난 이후 엄청난 액수의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곧 그만큼의 액수를 월 스트리트의 은행권이 부채를 지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그렇지 않아도 수 만명의 직원들이 길거리로 내 몰리는 상황에서 더욱 큰 악재가 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라스베거스에서 아무런 의심없이 공매도를 체결한 뒤 즐거워 하는 "쉬플리"와 "겔러"에게 일침을 가하는 "리커트"의 모습이다. 그들이 예상한대로 공매도가 성공할 경우, 미국 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이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성공과 수익 창출에만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환기하게 된다. 이는 "마이클 버리"가 마이너스 이하로 끝없이 떨어져만 가던 자신의 회사 수익률을 400% 이상으로 고쳐 쓰면서도 미소 짓지 못하는 장면에서 역시 표현되고 있고, 마지막에 이르러 "마크 바움"이 자신이 들고 있던 10억 달러의 처분에 대한 결정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또 한 번 드러난다.


06.


사회적 여파에 대한 도덕적 측면을 논외로 하고 개인의 영달에만 목적을 맞춘 상태에서 수익을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 경제가 붕괴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사 들인 공매도 타이밍을 기다리는 이들에게도 위기는 계속해서 다가온다. 현실 속의 여러 정황들은 분명히 이 상황에서 CDO의 가격이 폭락하고, 각종 신용 등급 평가들이 절하되기 시작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이를 인정할 수 없었던 "마크 바움"은 곧 신용평가기구인 S&P의 담당자 "조지아"(멜리사 레오 역)를 만나러 가는데, 그 곳에서 한 번 더 '월 스트리트'의 부조리함과 어두운 면을 바라보게 된다. 업계에는 관행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다른 신용평가 기관에 고객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좋은 평가를 해 줄 수 밖에 없다는 그녀의 대답 덕분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부조리함을 가리기 위해 일종의 거짓 공시를 일삼아 온 것. 물론 이미 이 때는 상황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있었더라도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시기였지만, 이 장면에는 분명히 현재의 개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존재한다. 인간은 애초에 자신의 약점이나 부조리함을 가리거나 모른 척 하려는 측면을 갖고 있는데, 그런 모습들이 결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미 '월 스트리트'의 대부분 은행권 기업들이 같은 문제를 저지르고 있었음을 상기해 본다면, 한 개인이 대중의 '군중 심리'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07.


한 가지 더, 영화에서도 잠깐 언급이 되고 있는 내용 중에 과연 무지(無知)와 무관심이 초래한 결과물과 의도적 사기로 인한 결과물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면, 무지(無知)와 무관심 역시 의도적 사기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부분 역시 깊은 잔상을 남긴다. 그런 점에서 바로 이 영화 <빅 쇼트>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내용이 동일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위에서 언급했던 것이고, 굳이 비교를 하자면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조단 벨포트"는 이 작품에서 CDO를 판매하던 '월 스트리트'의 직원들과 견주어져야만 할 것이다. 의도적 사기로 인해 호황 뒤 몰락을 맞이한 "조단 벨포트"와 무지(無知)와 무관심을 통해 같은 결과를 초래한 '월 스트리트'의 직원들이 등가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률 용어 중에 '미필적 고의'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 역시 무지(無知)와 무관심의 영역, 그리고 의도적 사기의 영역이 그리 멀지 않음을 시사하는 부분처럼 느껴진다. (결국 무지(無知)와 무관심은 '미필적 고의'를 발판 삼아 의도적 사기의 상황으로 변모하는 것 아닐까? '서브 프라임 사태' 하의 관련자들도 처음에는 몰랐겠지만 아마도 종반에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행위를 취했을 것이다.)


08.


CDO, CDS, 서브프라임론, 모기지 등 생소한 금융 관련 용어가 등장한 뒤에 "마고 로비"가 등장하여 거품 목욕을 한다거나, 세계적인 셰프 중 하나인 "안소니 브르댕"이 요리를 하는 등의 장면들을 삽입하여 이해를 도우려고 한 것을 보면 "아담 맥케이" 감독은 분명히 이 작품의 한계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굉장히 흥미로운 시도이기는 했으나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자레드 베넷"이 처음 "마크 바움"을 찾아가서 젠가(Jenga) 블록을 이용해 채권들의 신용 등급과 바운딩 되는 과정을 설명해 주는 장면이 훨씬 이해하기 쉬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로 인해 이 작품은 픽션과 논픽션의 사이에서, 또한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사이에서 아주 다양한 장르의 매력들을 잘 담아내게 된 것도 같다. 물론, 감독이 이런 부분을 신경썼다는 것 자체에서부터 이 작품을 금융 관련 용어들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쉽게 즐길 수 있다는 것에는 어폐(語弊)가 있다고 생각한다.


09.


긴 이야기도 이제 거의 막바지다. 앞에서도 여러 측면에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그 중에서도 <빅쇼트>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역사 속 중요한 사건과 그 결과를 결코 미화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이미 사건과 관련된 후속 절차 및 결과들이 다 공개된 상황에서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그보다 더 직접적으로 사건 이후의 과정들에 대해 정면으로 다루어내고 있다. 이 사태의 결론이 이랬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가정에서 시작해서,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는 부분까지 말이다.


역사학자 E.H.Carr는 그의 저자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만약 영화라는 매체 역시 대중성과 오락성의 한 이면에 역사 속의 사건을 재조명하고 현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역사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작품 <빅쇼트> 역시 단순히 유명한 배우들이 호연을 펼친 괜찮은 작품으로만 논하기엔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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