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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an 27. 2016

#063. 오빠생각

각자의 상실을 이겨내기 위한 단 하나의 화음.




01.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쟁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블랙 호크 다운>(2001),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등 전쟁 그 자체를 소재로 활용하여 잔혹함과 처절함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인생은 아름다워>(1997), <님은 먼 곳에>(2008)와 같이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되지는 않지만 그 시대의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절의 아픔을 들여다 보거나.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연 이어 경험하고, 여전히 분단된 국가로써 그 시대의 역사를 계속 경험하고 있기에 이 부분들에 대한 소구가 강한 편이며, 대부분의 작품에서 두 가지 요소가 긴밀하게 결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영화 <오빠생각>은 후자의 위치에 놓여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쟁 이면의 상처(전쟁 고아 및 개인적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첫 번째 요소에 대한 부분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음으로써  최소한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02.


최근 개봉하는 작품들에서 오프닝 타이틀(Opening Title)이 등장하기 전에 삽입되는 영상의 길이가 길어지고 있다. 이번 영화 <오빠생각> 역시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의외로 효과적이라 생각된다. 본 편에서 다루었을 때 늘어질 수 있을 법 했던 내용들(한상렬 소위의 과거에 대한 부분, 영화의 배경적인 부분 등)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해 내었다고 생각한다. <완득이>(2011), <우아한 거짓말>(2014) 등의 작품들을 과거에 본 적이 있는 관객들이라면 잘 알고 있겠지만 "이한" 감독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드라마적인 부분에 강점을 보이는 감독이다. 그리고 자칫하면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캐릭터들을 과하지 않으면서도 입체감 있게 잘 살려낸다. 이 짧은 영상을 통해 이번 작품에서 역시 다양한 캐릭터들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03.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영화의 트렌드는 드라마를 기반으로 하여 후반부의 클라이막스에서 관객들에게 감정적 동요를 느낄 수 있게끔 확실히 터뜨리는 포인트를 마련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감정적 강요가 다소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 작품에도 충분히 그럴만한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실제로 의도적으로 구성된 장면들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의 내러티브가 의외로 단단하다. 겉으로 보기엔 아주 평면적인 이야기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작품 속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내면에는 긴밀한 연결 고리가 있다. 이에 대해선 뒤에서 다시 한 번 언급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소재가 주는 면죄부가 있다. 어른들이 만들어 내는 신파에 비해 아이들의 이야기가 만들어 내는 신파에는 어떤 순수함 같은 것들이 내재되어 있어 거부감이 덜하다. 작품 속에서 세 번 정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감정을 스크린 밖으로 전이시키는 감독의 작전 역시 한 몫 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04.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작품 속 캐릭터들의 연결 고리, 그 중심에는 '심리적 결핍'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상황에 따른 어떤 결핍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동구"(정준원 역)와 "순이"(이레 역)를 비롯한 아이들에게는 전쟁으로 인해 너무 일찍 떠나 보내야만 했던 부모와 가정에 대한 결핍이 있고, "한상렬 소위"(임시완 역)에게 역시 북한군에 의해 눈 앞에서 가족의 죽음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과거가 존재한다. 조연이기는 하나 "조 상사"(이준혁 역)에게 역시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다리로 인한 아픔이 있다. 심지어는 작품 속의 유일한 악역 "갈고리"(이희준 역)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박주미"(고아성 역)라는 인물은 유일하게 결핍이 없는 존재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 상황 속에 자의적으로 뛰어든 인물임과 동시에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이전에 상실에 대한 아픔을 가지지 않았던 인물이다.(그녀는 이후 "동구"의 죽음으로 그 상실에 대한 아픔을 처음 경험하게 된다.) 물론, 그녀가 현재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점을 결핍으로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영구적인 다른 인물들의 결핍과는 달리 일시적인 결핍이기에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각자의 결핍을 갖고 있는 이 모든 인물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이 작품에 온기를 불어넣는 원동력이 된다.


05.


처음에 언급했던 오프닝 크레딧 이전의 영상에서 밀려드는 북한군을 상대로 분대를 이끌던 "한상렬 소위"는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망설임 없이 적의 허벅지를 찔러 넣는다. 그렇게 치열했던 전투가 끝날 무렵,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북한군이 소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소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모든 의지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 소년이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합창 연습을 하던 도중 서로를 향해 적의를 보이는 "동구"와 "춘식"(탕준상 역)에게 단상 앞으로 나와 싸우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두 아이가 머뭇거리자 노래 대결을 시킨다. 마지막으로, "박 대령"(박수영 역)에 의해 전투 지역은 철원 쪽 위문 공연이 결정나자 합창단을 없애겠다고 단호하게 이야기 했던 그가 잠시 뒤 아이들의 만류에 투표로 결정하겠다고 번복한다. 이런 모든 장면들이 시사하는 것은 "한상렬"이라는 인물이 전쟁에 뛰어들게 된 것이 결코 자의에 의해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선택한 군인 "한 소위"로서의 모습(엄격함, 폭력적) 이면에는 그 이전에 동생과 함께 피아노를 치고 가족을 위해 살아가던 "한상렬"이라는 사람으로서의 인격(유순함, 평화적)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것. "박주미"라는 인물을 처음 만나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설교하며 까다롭게 굴었던 것 역시,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울분과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한상렬"의 모습을 그렇게나마 지우고 싶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06.


"동구"와 "순이", 두 오누이의 관계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처절한 구석이 있다. 부모를 모두 떠나 보냈지만 동생인 "순이"만큼은 제 손으로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빠 "동구". 그리고 역시 그런 "오빠"만큼은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생 "순이". 두 아이 모두 여전히 어린 녀석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동생을 위해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동구"에 비해 "순이"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순이"는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결심한다. 오빠를 위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자신이 노래를 부르지 않음으로서 아버지의 죽음과 같은 상황을 두 번 다시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이 두 가지 모습이 "동구"와 "순이"가 그들의 결핍에서 서로를 지켜내는 방식이다. 물론 어른들의 세상에서 버텨내야만 하는 그들이 그 판단을 할 수 있을 리도 없었겠지만, 만약 가능하다고 할 지라도 그 방식이 사회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그 다음의 일이 될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두 사람만의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르는 "동구"와 "순이"에게 있어 합창단의 존재는 크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한 소위"의 선언에 즉각적으로 반발하던 "동구"의 모습에도 볼 수 있듯이 말이다.


07.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갈고리"가 아니었나 싶다. 영화의 중후반을 지나면서 갑자기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지만 그 역시도 "갈고리"라는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꼽기는 했겠지만, 자신의 태도를 나무라고 그런 생활에 일침을 놓는 "한 소위"의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군인이었던 시절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을 것이다. 나는 "갈고리" 역시 과거에는 "한 소위" 못지 않게 군인으로서의 긍지와 높은 프라이드를 가졌던 인물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상이 군인이 되어 명예롭지 못하게 제대하게 되고, 그런 자신을 향하는 이상한 시선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지금의 모습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모멸감 속에 과거에 갖고 있던 프라이드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버렸고, 그런 세상에서 도태되다 보니 이상한 자존감만이 가득하게 되어 상대적으로 유약한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프라이드를 되찾으려고 한 것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이 영화 속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로 보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갈고리"라는 인물에 대한 이 확신은 부잣집 아들이 "순이"에게 립스틱을 바르게 하고 희롱할 때 보이던 행동(소극적이기는 했으나)에서 가질 수 있었다.


08.


"동구"가 죽음을 맞이하는 계기가 되는 장면(총격전)은 이 영화의 갈무리를 위해서는 필요하였을 지 모르겠으나, 그의 동생인 "순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잔혹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순이"는 자신을 홀로 두고 별이 되어버린 오빠를 위해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노래를 불러도 누군가(아버지)를 잃어버리고 부르지 않아도 누군가(오빠)를 잃었던 그 삶을 그녀가 앞으로 쉬이 짊어지고 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무대 위에서 빛나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진다.


09.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적어도 꼭 한 번의 상실과 아픔은 반드시 겪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이야기 하는 불가항력적인 영역의 일인데, 그 점을 인정하더라도 혼자서는 이 상처와 아픔을 오롯이 견뎌낼 방법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영화 <오빠생각>은 그런 부분들을 꼬집어 내어 함께 살아가는 일의 중요함과 사람만이 전해 줄 수 있는 따뜻한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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