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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04. 2015

#008. 아메리칸 셰프

눈으로 맛 보는 즐거움을 만나게 해 드립니다.

Title : Chef
Director : Jon Favreau
Main Cast : Jon Favreau, Emjay Anthony
Running Time : 114 min
Release Date : 2015.01.07 (국내)




01.

<아이언 맨> 시리즈로 그래픽 노블 원작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감독이 있다. 그는 <이별 후에>, <딥 임팩트>,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등 벌써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어벤져스> 시리즈를 포함 20편에 가까운 영화들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의 손길이 닿은 수 많은 작품들을 보며 스크린 앞에서 울고 웃었지만 정작 그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바로 "존 파브로" 감독이다. 그가 이번에는 최근에 보여줬던 커다란 스케일의 영화들을 뒤로 하고 자신이 영화를 처음 시작했던 때와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영화 <아메리칸 쉐프>로 돌아왔다.


02.

이번 영화 <아메리칸 쉐프>는 한 마디로 "맛있는 영화"이다. 알려진 대로 영화 내내 식욕을 자극하는 장면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어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재미와 감동 그리고 감독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까지 잘 요리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모든 연출작을 통틀어서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최근에 관람한 그 어떤 영화들보다 잘 짜여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종종 다재다능한 감독들에게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작품의 전체적인 볼륨이 변하는 경우에는 같은 시간 내에 풀어낼 수 있는 소스(Source)의 다양성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기에 그 무엇보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끌어 낼 콘텐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03.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감독의 매끄러운 연출과 함께 오감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내용들로 잘 짜여져 있다. 특히 이 영화의 가장 '맛있는 소스'는 라틴 계열의 신나는 음악과 요리를 만들어내는 주방에서의 리듬감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이 작품만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러닝타임 전체를 관통하는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흥겨움은 관객들로 하여금 잠시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하는 요소다. 더 나아가, "존 파브르" 감독은 그 흥겨움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는 시퀀스 진행과 속도감 있는 편집으로 영화가 가진 일련의 통일성을 위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04.

이 작품에서 스스로 주연을 맡은 "존 파브르" 감독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물론, <모던 패밀리>로 잘 알려진 "소피아 베르가라"의 하이톤 목소리, "존 레귀자모"의 능청스러운 연기 또한 이 작품의 매력으로 모자람이 없다. 잘 짜여진 내러티브 속에서 능청스러운 배우들의 연기까지 더해지니 작품은 한결 풍성한 느낌을 준다. "더스틴 호프만"의 감초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거기에 덤으로 "스칼렛 요한슨"과 "로버트 다우닝 주니어"까지 만나볼 수 있으니 이 영화가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특별 출연으로 등장하는 아주 짧은 장면들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두 배우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느껴 볼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건 "존 파브르" 감독이 <아이언 맨>을 통해 그들과 연결고리가 되어 준 결과물이라 해야겠지.


05.

영화의 외부적인 매력들은 이 쯤에서 그만 이야기하고, 위에서 언급한 흥겨움과 별개로 이 영화가 마음에 와 닿았던 건 사실 영화 속에 심어져 있는 세 가지 커다란 내러티브들 때문이었다. "칼"이 레스토랑 사장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상황 속에서 갈등하던 부분들과 자신의 직업에 대해 확고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인 "퍼시"와의 관계를 설정해 나가면서 드러나는 부자간의 모습. 크게 이 세 가지 이야기들이 영화의 외면적인 매력을 떠나 이 작품 속에서 많은 부분들을 생각하게 만들어 줬던 것 같다.


06.

그 중 첫 번째는 바로 주인공 "칼"이 갖고 있던 내면적인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바로 순간적인 대중성과 인기에 기댈 것이냐 아니면 스스로의 가치관을 지켜낼 것이냐의 문제다. 어쩌면 이 갈림길에 대한 고민은 '판매업'이라는 단어로 분류되는 직종에 종사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일 것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 역시 수 년전 나름 인기있는 블로그를 운영했던 사람의 하나로 자극적이고 인스턴트적인 소식들을 생각없이 빠르게 뱉어내는 행동만 반복한다면 지속성(Stickiness)는 떨어지더라도 인터넷 상의 수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또한 그런 관심을 받는 블로거는 다양한 기업들의 후원이나 제휴를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블로그를 완전히 삭제해 버린 것에는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른 어떤 생각과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모습이 유의미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조금 더 원론적으로 파고 든다면 '개인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07.

두 번째로는 자신의 음식을 혹평하는 비평가 "미쳴"을 향해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칼"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자신의 직업 혹은 작품들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가 보여주고 있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갖는 행동은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독려하고 있는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행동으로 옮기기가 결코 쉽지 않다. 특히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무언가 잘못 흘러가고 있어서 "돈"이라는 물질이 개인의 자부심과 열정을 무시하기도 하고, 때론 감출 수 밖에 없도록 만들기도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 앞에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사회 전반에 걸친 대부분의 모습들 때문에 그의 모습이 더욱 진하게 남았던 게 아닐까.


08.

위의 이야기와 더불어 흥분한 상태로 "미쳴"에게 쏟아내는 "칼"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 내가 "미쳴"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경험을 했던 것도 이 장면이 가슴 깊이 새겨진 이유 중 하나다. 사실 나는 지금 "비평"이라는 미명 하에 다른 사람들이 힘들게 만들어 놓은 작품들을 영화관에 편한게 앉아 관람하고 컴퓨터 앞에 더 편하게 앉아 손가락만 놀려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건 잘못 되었고 저건 잘 되었다고 이야기 하면서 말이다. 물론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소비한 문화를 내 방식대로 해석해서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건 지금 내 글이 세상에 영향력도 끼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뱉는 작은 이야기 하나까지도 모든 것들이 '힘'을 갖게 된다면 나는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미첼"이 처음 보여주었던 그런 모습으로 남게 되지는 않을까?


09.

마지막으로 "칼"과 "퍼시" 두 사람의 부자 관계에 대한 이야기.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부분을 놓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어 나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늘 이야기하고 있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부모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넌센스일 뿐이다. 아이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처음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터놓고 나누지 못할 뿐더러 어른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가 아이에게 그런 모습을 바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부분에서 "칼"은 "퍼시"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또 이해시키려고 노력했고 먼저 관계를 개선해 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런 플롯을 볼 때마다 고개를 돌리고 싶다가도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고 만다. 나는 아들에게 그런 아버지가 되어 줄 수 있을까?


10.

또한, 푸드 트럭을 함께 가꾸어 나가는 과정에서 "칼"이 "퍼시"에게 주방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려고 하는 모습 속에도 역시나 현실적인 고민들이 숨어 있었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어떤 직업에 대해 막연히 동경심을 갖고 그 일을 하고 싶다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그들이 보는 건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밝은 일면일 뿐이다. 그래서 어쩌면 "칼"은 썩은 음식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는 아들을 그 어떤 때보다 더 엄격하게 질책했는지 모르겠다. "퍼시"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 했기에 말이다. 그리고 "칼"은 그런 요리사가 감내해 내야 하는 무거움들을 모두 겪어봤기 때문에 말이다.


11.

영화의 내용을 떠나서 이 작품의 특징적인 면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SNS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과 종반부에 이르러 동영상을 이용해 영화 전체를 다시 한 번 반추하게끔 하는 기법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이 두 가지는 최근 2-3년 사이에 다양한 헐리우드발 영화들이 이용하고 있는 방법들이다. <안녕, 헤이즐>이나 <러브, 로지> 등 SNS를 이용했던 작품들은 셀 수 조차 없었고, 과거를 회상하거나 반추하게끔 만드는 장면들 역시 다양한 작품들에서 이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이거나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도록 보여진 것은 "존 파브로" 감독의 트렌디함과 영리함을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


12.

물론 이 영화에도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칼"과 "미쳴" 두 사람의 커다란 갈등이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버려서 영화 내내 두 사람이 이끌어 온 내러티브의 마지막 마무리가 약해 보이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트위터라는 특정 SNS 서비스의 영향력이 작품 속에서 꽤나 비중있게 다루어진 탓에 이 서비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13.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단순히 한 요리사와 관련된 음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벼울지언정 결코 비어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을 이 글을 통해 밝혀두고 싶다. 또 가볍지만 그 속에는 나름대로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잘 스며들어 있다. 이 영화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속된 말로 작품의 퀄리티가 후져서(?)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딱 한 가지, 공복인 채로 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완전히 후회할 수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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