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Sep 04. 2015

#009. 브로크백 마운틴

엇갈린 두 남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Title : Brokeback Mountain
Director : Ang Lee(이안)
Main Cast : Heath Ledger, Jake Gyllenhaal, Michelle Williams
Running Time : 134 min
Release Date : 2006.03.01 (국내)




01.

"이안" 감독은 단 10여 편의 작품만으로 헐리우드에서 자리를 잡은 대표적인 동양 출신 감독 중 한 명이다. 사실 <헐크>를 연출하고 나서 큰 실망감과 함께 잠시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지만 다음 작품들을 통해 이내 곧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감독이라고나 할까? 그 중에서도 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헐리우드 배우들과 함께 만든 작품으로 "이안" 감독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는 영화다. 물론 시간이 흐른 뒤에 "히스 레져"라는 배우와 관련된 일화로 더욱 유명해진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다.


02.

이 작품을 떠나서 모든 "이안" 감독 작품들에서는 전체적으로 고전적인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이런 느낌들이 필름의 차이에서 오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에 제작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특유의 쨍한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가을의 전설>(1994)이나 <흐르는 강물처럼>(1992)과 같은 오래된 필름의 느낌 때문인지 그의 영화들에서는 시작되는 오프닝 타이틀부터 상당히 편안한 느낌을 많이 받게 되는 것 같다.


03.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가 대학교에 막 입학한 시기였다. 그 때만 해도 성 정체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거니와 그런 개념에 대한 스펙트럼 자체가 그리 넓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는 모르지만 당시에 이 영화가 보여주는 외적인 모습들에 대해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은 동성애와 관련된 많은 작품들이 연출되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과거에 비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그 때만 해도 결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두 주인공의 정체성에 관련된 부분을 떠나서 이 영화는 보면 볼 수록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부분들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04.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는 바로 "에니스"와 "잭" 두 사람의 관계에 어떤 전환이 발생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 전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가 각자 이질적으로 구축하게 되는 브로크백 마운틴 이 외의 장소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두 사람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미래를 함께 공유 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고, 외부적인 요인들에 의해 그 문제는 기폭제가 되어 두 사람 사이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짚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과연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성 정체성에 대한 시각을 우리 관객들은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은 관객들 각자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게 되느냐에 따라 작품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지게 되고, 해석에 대한 여지 자체가 완전히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05.

나는 "에니스"와 "잭" 두 사람이 모두 선천적으로 성 정체성이 구조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만의 공간(브로크백 마운틴)을 통해 외부와 단절된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후천적인 요인을 맞이한 복합적인 상황이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어느 하나의 요인만을 제시하기에는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행위의 깊이의 편차가 너무나 크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느끼는 두 사람의 감정에 비하자면 그 시작은 너무나 충동적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지 않나.


06.

두 사람의 선천적인 성 정체성을 굳이 설명하자면, "에니스"는 이성애자를 지향하는 양성애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잭"을 두고 먼저 결혼을 하는 것 역시 그는 남성과 여성 양 쪽 모두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성애자를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기에 자신의 감정에 직선적인 "잭"과 달리 처음에는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초반부에 "에니스"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과거를 다루는 시퀀스를 보면,  "에니스"의 아버지는 굳이 "에니스"에게 동네에서 죽은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데 이는 곧 "에니스"에게는 아버지가 그것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는 이야기가 된다.(아버지는 "에니스"가 양성애자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고, 동성애를 선택하면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07.

반대로 "에니스"와 달리 "잭"은 양성애자를 지향하는 동성애자로 보여진다. 이런 시각에 "잭"과 결혼한 "로린"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영화 내내 "잭"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로린"과 결혼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극의 후반부에서 "에니스"가 찾아간 "잭"의 앞에서 사나운 얼굴로 앉아 있는 "잭" 아버지의 모습만 보더라도 "잭"의 진짜 모습이 어떤 것일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에니스"에게 거절당하고 멕시코의 사창가에 있던 다른 남자들을 찾아가는 장면도 그렇고, "로린"과 함께 참석한 파티에서 만난 그 감독관 남자와의 모습 또한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들을 뒷받침하는 장면들이 아닐까 싶다.


08.

결국 이 영화에서 지속적인 갈등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은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과 더불어 스스로의 행동을 인정하지 못하는 "에니스"와 그와 다르게 자신의 사랑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잭"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거리감일 것이다. 물론, 어쩌면 "에니스"는 자신의 성적인 성향을 제쳐 두고서라도 어릴 적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그 장면 때문에라도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09.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영화가 중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에니스"가 그의 부인인 "델마"와 이혼을 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초반부에서는 "잭"이 "에니스"에게 사랑을 적극적으로 갈구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 장면 이후에는 반대로 "에니스"가 "잭"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공유의 공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 각자가 개별적으로 갖고 있던 개인적 공간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10.

쉽게 설명하자면, "에니스"의 입장에서는 그 오랜 시간동안 "잭"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과 함께 살자고 해놓고, 이제 와서는 그럴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또한 돌아가서 편하게 쉴 곳이 있는 "잭"과 달리 하루 하루를 힘겹게 연명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반면에 "잭"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감정을 표현할 때는 그렇게 매정하게 굴더니 "왜 이제 와서?" 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지 않았을까? 이제 본인은 두 가지 모두를 병행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 그 옛날 "에니스"가 원했던 대로 여행이나 다니면서 그렇게 지낼 수 있는데 왜 굳이 자신의 안락한 삶을 버려야 하는지 "에니스"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과거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에니스"가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임이 틀림없고..


11.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이 영화에서 두 가지 정도 더 주목해 볼 만한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로린"과 함께 참석한 파티의 첫 신에서 보여주는 댄스 장면과 "델마"가 느꼈을 감정의 영역에 대한 것이리라. 먼저 감독관 내외를 처음 만났던 시퀀스의 첫 신에는 파티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짝을 지어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중에는 평범한 남녀 커플은 물론이고, 심지어 "할아버지"와 "소녀"가 짝을 지은 커플이 춤을 추는 모습도 슬쩍 지나간다. 이 짦은 장면은 작품 속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감독은 아마도 이 장면을 통해서 성적 관념에 대한 그 시대의 스펙트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소녀가 만나 춤을 추는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두 남자가 사랑을 나누고 교감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어떤 무언의 메세지. 작품 속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가 동성애에 대해 얼마나 큰 거부감을 갖고 있었는지를 이렇게 작은 모습들에서도 표현해 내고자 했던 것 같다.


12.

그리고 "에니스"와 "잭"의 관계를 알고 난 뒤에 "델마"가 느껴야 했던 감정에 대한 이야기. 영화 속에서도 표현되고 있듯이 두 사람의 모습을 목격한 "델마"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는다. 일부러 "에니스"를 피하기도 하고 혼자 고민도 해보지만 그래도 그녀는 끝까지 가정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가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두 남자의 표면적인 관계 때문이 아니라, 두 사람의 마지막 잠자리에서 "에니스"가 뱉은 말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면 함께 잘 이유가 없지 않나..." 그녀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의 배우자가 외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대한 그것의 모습이나 성적 본질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인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남자와는 잠자리를 갖는 사람이 여자인 자신에게 잠자리의 의미를 아이를 만드는 것 정도의 행위로 일단락해 버리는 "에니스"의 모습이 어떻게 받아들여 졌을까?


13.

마지막으로 "잭"은 과연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나는 "로린"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남편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도 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로 그 이야기를 듣던 "에니스"는 왜 어릴 적 그 장면을 떠올리고 말았을까? 라는 생각이 저절로 따라온다. 그리고 이 장면을 통해 "이안" 감독이 영화 전반부에 깔아놓은 복선과 플롯들을 영화 후반부에서 다시 이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감독이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14.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는 "윌리 넬슨"의 목소리를 통해 "밥 딜런"의 'He was a friend of mine.' 이 흘러나온다. 'He was a friend of mine.'이라니... "에니스"는 아마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느라 끝까지 "잭"을 지켜주지 못할 모양이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Copyright ⓒ 2015.

joyjun7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008. 아메리칸 셰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