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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Feb 19. 2016

#066. 데드풀

오롯이 캐릭터에 집중한 히어로 무비.




01.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지난 2000년 <엑스맨> 시리즈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거둔 일이 벌써 16년 전의 일이다. 그 사이 <아이언맨>(2008), <인크레더블 헐크>(2008)를 시작으로 어벤져스(Avangers) 팀 혹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Guardians of Galaxy) 팀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진영이 구축되었고, <다크 나이트>(2008), 그린 랜턴(2011), 맨 오브 스틸(2013) 등을 앞세운 '워너 브라더스' 진영의 'DC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다른 한 편에 구축되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 할 이 작품 <데드풀>은 그들과는 또 다른 쪽에 서 있게 될 '엑스맨' 진영, 소위 '폭스 뮤턴트 유니버스'라 불리는 한 세력의 또 다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1) '스파이더 맨'이 소니 픽쳐스에 묶여 오랫동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합류하지 못하는 등, 실제 코믹북의 내용들은 스크린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각색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 맞게 조정되기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캐릭터들은 원작 격인 코믹북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소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부분들이 필연적으로 생기는데 만약 본격적으로 이 분야를 파헤치겠다면 원작을 섭렵하기를, 그것이 아니라면 특정 진영의 시리즈물을 순서대로(이 시리즈의 순서를 Phase라고 부른다.)라도 관람하기를 권장한다.


2) 나머지 두 진영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각각의 캐릭터별 작품으로 물량공세 중..)와 "폭스 뮤턴트 유니버스"(15년이 넘게 엑스맨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음)에 비하면 'DC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기간도 짧고, 편 수도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북미 소식에 의하면, 올해 3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배트맨 VS 슈퍼맨 : 돈 오브 저스티스>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매년 2-3편의 히어로물을 개봉할 계획에 있으며, <원더우먼>, <아쿠아맨>, <샤잠>, <플래쉬> 등의 캐릭터가 구상되고 있다고 한다.


02.


처음 히어로 무비가 극장가에 개봉할 때만 해도 그 반향은 대단했지만 사실 이제 그만큼은 아닌 것 같다. 같은 히어로 무비임에도 캐릭터별 인지도와 감독 혹은 출연 배우의 이름값에 따라 관객이 보내는 기대와 호응의 급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장르와 달리 히어로 무비의 스토리 라인은 거의 대부분 동일하다. 캐릭터의 소개와 함께 어려움을 겪게 되는 히어로가 조력자의 도움 혹은 능력의 각성을 통해 '권선징악'을 해내는 해피 엔딩. 물론 이 어려움은 대부분 정인(情人)의 위기 혹은 히어로의 능력 소실로 일어나게 되고 말이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러한 절차를 따라 스토리 라인을 구성했고, 관객들 역시 더 이상 그것을 모르고 영화관을 찾지는 않는다.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수 많은 팬들을 패닉에 몰아 넣었던 '피의 결혼식'(시즌3 Ep.9) 만한 반전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히어로 무비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정해져 있다. 결과가 같을 수 밖에 없다면, 과정이라도 달라야 할 게 아닌가?


03.


위의 질문에 가장 적합한 해답을 내 놓은 작품이 바로 이 영화 <데드풀>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말 많고 개그감이 넘치는 캐릭터라는 원작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온전히 옮겨다 놓은 것은 물론, 애초에 이 캐릭터를 몰랐던 관객이라 할 지라도 단번에 머리 속에 각인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히 표현하고 있다. 기존의 히어로 무비들과의 차별화 역시 두 번 언급하면 입만 아프다. 특히 <엑스맨> 시리즈를 관심있게 지켜봐 온 관객들이라면 그 재미는 곱절이 될 텐데 '콜러서스'(스테판 카피식 역)가 수갑을 채워 끌고 가는 장면에서 '찰스 박사'가 '맥어보이'냐 '스튜어트'냐 묻는 장면이나, 이 넓은 뮤턴트 스쿨에 너희 둘 뿐인 게 제작비 때문이냐고 묻는 장면들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의 출발이 성공적으로 보이는 것은 '19금 코드'와 'B급 정서'라는 포인트를 갖고 관객들에게 어필되고 있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 이상으로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 '일관성'에 대한 부분이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영화가 끝나고 쿠키 영상까지, 그러니까 영화가 아니라 필름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이 "데드풀"(라이언 라이놀스 역)스럽다. 인지도가 낮은 캐릭터를 위해 하나의 필름을 완성하는데 이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더 이상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3) 다소 의아스러운 점이 있다면 지난 12월에 개봉한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이 작품과 같은 등급인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장면에 노골적인 블러 처리가 삽입되었는데, 거의 비슷한 수준의 장면임에도 이 영화 <데드풀>은 다른 제제가 가해지지 않았다. 간혹 이런 부분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 기준을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다.


04.


관객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적 측면 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이 작품 <데드풀>은 기존의 히어로 무비들과 다소 차이가 있다. 어떤 작품이나 하나의 새로운 캐릭터가 관객들 앞에 등장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짧은 시간 안에 관객들이 이해하고 호기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자신의 러닝타임 일정 부분을 반드시 캐릭터를 설명하고 드러내는데 소비한다. 히어로들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스파이더 맨>의 시작도, <어벤져스>의 시작도, <울버린>의 시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데드풀>의 경우에는 그 부분이 굉장히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온전히 캐릭터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러닝타임 내내 "라이언 레이놀즈"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빌런들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부분에 무게감이 실리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는 빌런인 "아약스"(에드 스크레인 역)마저 그의 탄생 신화와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조력자(?) 정도의 역할밖에 부여받지 못하는 것 같다. 뒤에서 다시 한 번 언급하겠지만, 상대적으로 저예산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감독이 영리하게 선택과 집중을 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05.


사실 영화 내내 웃느라 일정 부분의 흐름을 놓칠 뻔 하기도 했지만, 그런 흥겨움 뒤에 잠시 엿보이던 "데드풀"의 내면이 의외로 무게있게 다가왔던 점은 조금 놀랍기까지 했다. "웨이드 윌슨"이 "데드풀"이 되는 과정은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어두운 톤으로 표현되고 있는 부분인데, 그 과정 속에서도 유희와 해학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려던 그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다른 히어로들보다 오히려 더 단단하다는 느낌을 전해받을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일관된 모습으로 자신은 히어로가 아니라고 이야기 하지만,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부분과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결코 굽히지 않는 모습 등이 다른 히어로들과 결코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4) 개봉 전 코믹콘에서 "라이언 레이놀즈"가 언급한 인터뷰에 따르면, 관객과 배우 사이의 가상의 벽을 허물고 관객과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고민들에서부터 이 영화는 단단한 모습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06.


앞서 다른 히어로들과 달리 "데드풀"만이 가지는 차별성에 대해 이야기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스파이더맨"을 머릿 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우스갯소리로 두 캐릭터 모두 빨간 타이즈를 입고 뛰어다닌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두 캐릭터의 탄생과 관련된 부분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만약 히어로의 탄생에 대한 부분을 자의와 타의의 영역(x축),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의 영역(y축)의 사분면 속에 놓고 볼 수 있다면, 두 캐릭터 모두 x축에서는 타의의 영역에, y축에서는 후천적 요인의 영역 속에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타이즈를 입고 난 뒤에는 두 캐릭터 모두 의외의 경박함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점까지도 유사하다. 물론 두 캐릭터가 같은 사분면에 위치하게 되더라도 '스파이디'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비교적 어렵지 않은 과정(거미에게 물리는 것으로 완성)을 겪은 것에 비해, '데드풀'은 완전히 타의에 의한 과정과 고통을 겪었다는 차이가 있다.


07.


편당 최소 1억불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다른 작품들을 생각한다면, 5,800만 달러 정도가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는 <데드풀>은 모든 부분에 있어 평균 이상을 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일 현재까지 집계되고 있는 월드와이드 성적 역시 3억 2000불에 육박하고 있으니, 20세기 폭스사가 속편 제작을 이미 시작했다는 소문이 나는 것도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불어 이 모든 영광을 일구어 놓은 "팀 밀러" 감독은 "라이언 레이놀즈"의 화려한 비상만큼이나 관심이 가는 인물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시작한 "팀 밀러" 감독은 자신이 "잭 스나이더" 감독의 엄청난 팬임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이 정도의 시작이라면 "잭 스나이더"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심스럽게 그의 미래를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99.


영화의 쿠키 영상에서 언급되는 속편의 "케이블"이라는 캐릭터는 텔레파시 능력과 초인적인 힘을 가진 인물로 <엑스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사이클롭스"의 아들입니다. 원작 코믹북에서는 "데드풀"이 위기에 처해있던 "케이블"을 구출해 내는 스토리가 포함된 적이 있었으며, 현재 속편의 배경이 될 것이라 알려진 <데드풀 & 케이블>에서는 두 인물이 함께 위험에 빠지는 내용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라이언 레이놀즈" 본인과 "팀 밀러" 감독이 속편과 출연 캐릭터에 대해 언급한 부분들이 실제로 있는 것으로 봐서 빠른 시일 내에 <데드풀>을 한 번 더 만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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