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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Mar 03. 2016

#068. 스포트라이트

기자들의 직업적 소명감, 그 이상을 조명(Spotlight)하는 수작.



01.


나는 그의 첫 모습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 <아버지의 깃발>(2007)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활약하다 전사했던 이오지마 전투를 인터뷰하기 위해 당시 "존 닥 브래들리"(라이언 필립 역)와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전우들을 찾아다니던 "제임스 브래들리"라는 캐릭터로 말이다. 배우로써 "토마스 맥카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25년간 쉬지 않고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수 많은 작품에 등장했으나, 올해 4전 5기 끝에 오스카를 거머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만큼은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 아카데미의 시상이 끝난 뒤에는 흥미로운 그림이 하나 남게 되었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어렵게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은 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옆에서 감독 "토마스 맥카시"가 같은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던 것. 비록 배우의 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배우 시절의 "토마스 맥카시" 감독 모습. 영화


02.


최근 10년 사이에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많은 배우들이 감독으로의 전향을 시도 중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자본이 여유로운 헐리우드에서 많이 시도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배우들이 성공적으로 감독 데뷔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타운>(2010), <아르고>(2012)의 "벤 에플렉"과 <피와 꿀의 땅에서>(2011), <언브로큰>(2014)의 "안젤리나 졸리" 정도가 눈에 띈다. 작년에 개봉했던 <코블러>(2015)에 관심이 갔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담 샌들러"의 연기도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였으나, 또 하나의 배우 출신 감독이 탄생할 수 있을 지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코블러>의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무난하지만 아쉬움이 크게 남는 작품이었다. 특히 후반부의 떨어지는 디테일들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과 함께 조금의 찝찝함을 남겼다. 당시의 글을 보면 나는 이 작품에서는 "토마스 맥카시" 감독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고 있지 않은데, 그 이유가 바로 그 찝찝함에 있었을 것이다.


03.


지난 작품 <코블러>와 이번 작품 <스포트라이트>의 분위기가 크게 다른 점과 그의 감독 경력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은 감독으로써 그가 갖고 있는 장점이 어떤 것인지 특정하기 쉽지 않게 만든다. 다만 메가폰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작품의 완급조절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는 점과,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들을 동등한 무게로 빠짐없이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 <스포트라이트>가 오스카 수상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한 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보스턴 글로브'라는 한 신문사의 '포스트라이트' 팀이 지역 사회의 숨겨진 비리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그리 간단한 내용을 그려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구성원들의 감정과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태도, 피해자들이 절망을 느끼는 포인트와 가해자들이 왜 멈출 수 없었는지에 이르기까지, 실제 사건 그 시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을 아우르고 있다.


그들은 이 작품 속에서 각자의 매력보다는 하나의 팀으로 완벽하게 스며들었다.


04.


때문에 이 작품에는 "마이클 키튼", "레이첼 맥아담스", "마크 러팔로"와 같은 자신의 색이 뚜렷한 배우들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크게 부각되는 것 처럼은 느껴지지 않는다. "마이클 패스벤더", "카메론 디아즈", "브래드 피트" 등의 화려한 라인업을 세우고도 호불호 속에 아쉬움을 남겼던 <카운슬러>와 같은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스포트라이트' 팀을 구성하고 있는 네 명의 캐릭터 모두가 숨겨져 있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부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튼 역)과 "마이크 레젠데스"(마크 러팔로 역)는 그 본인 스스로가, "샤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 역)는 자신의 할머니가, "매트 캐롤"(브라이언 다아시 제임스 역)은 자신의 아이들이 모두 이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결국엔 모두가 이 사건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아 갈 때 이 작품에는 캐릭터 그 이상의 것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05.


이 작품이 과거의 사건(교단의 성추문 스캔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물음은 과연 우리에게는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인가? 에 대한 것. 물론 위의 질문과 가장 맞닿아 있는 기자라는 직업이 영화 속 인물들의 위치를 대변하고 있기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이야기를 쌓아가면서 그 부분을 지역 사회 전체와 이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특히 '스포트라이트' 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월터 로빈슨"이라는 인물은 사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자신 역시 이 사건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달아 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두고 '기자들만의 직업적 소명감'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것은 다소 지엽적인 시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06.


이 영화가 던지는 두 번째 물음은 한 개인(집단)의 잘못을 그에 상응하는 선행으로 선처하는 것은 어떠한가? 라는 것이다. 과거 혐의가 있는 성직자들을 변호해주었던 바 있는 "짐 설리반"(제이미 쉐리던 역)이 묻는다. 종교가 이렇게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안정을 찾는 줄 아느냐고. 그는 자신이 그들을 변호했던 것에 대해 변호인으로써 자신이 해야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것은 이 문제에 비하자면 그리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자본이 가진 힘의 자유로운 발전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 모든 해결책을 맡겨버리는 극단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맹목적 믿음이 바로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07.


이 두 가지 물음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여 번갈아가며 매우 균형있게 그 논리를 펼쳐내고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영화 <스포트라이트>로 하여금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기반이 된다. 이와 더불어 한 가지 더 주목할만한 부분은 다른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스포트라이트' 팀의 대척점에 위치한 이들의 행동이 적극적으로 그려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조금 쉽게 이야기하면 단 한 번도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포커스를 '스포트라이트' 팀에게서 떼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의 시선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와 이를 탐색해가는 과정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가해자의 범주에서 '스포트라이트' 팀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사건의 본질을 알아가게 되면서 점점 더 커다란 의구심을 갖게 된다.


08.


실제로 영화 속에서는 '스포트라이트' 팀의 팀장인 "윌터 로빈슨"이 과거에 자신에게 이 사건을 지속시키지 않을 수 있었던 기회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또한 9.11 사건이 벌어지며 이 사건을 잠시 미루어 둘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을 향해 의구심을 표현하는 "필 사비아노"(닐 허프 역)의 모습을 통해서도 그 동안 '스포트라이트' 팀을 포함한 보스턴의 지역 언론들이 그들의 문제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 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보스턴 글로브" 바로 옆 도로 하나를 건너편에 두고 있는 고등학교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부정을 저지르는 교단의 곁에서 그들의 악행을 도왔던 "에릭 맥클리쉬"(빌리 크루덥 역)가 자신을 몰아부치는 "윌터"와 "샤샤"를 향해 왜 5년 전에는 덮어버렸냐고 되묻는 장면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09.


이 외에도 이 사건의 시작이 '보스턴 글로브'로 새롭게 전입 온 사장,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 역)이라는 것 역시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고여있던 물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들어온 셈인데, 이는 "강우석" 감독의 <이끼>(2010)라는 작품에서도 한 번 본 적 있었던 모습이다. 이들을 도와 사건을 진행해 나가는 변호사 "미첼 개러비디언"(스탠리 투치 역)과 함께 두 사람은 함께 이 지역 출신이 아니었으며, 고로 종교의 심리적 족쇄에서도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그들의 시선에서부터 사건이 시작될 수 있었다는 점은 한 사회(집단) 속에 소속된 개인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기에 이 작품에서 또 다른 흥미를 느끼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들의 행동은 신체적인 학대를 넘어 영적인 학대입니다

10.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져 갈수록 '스포트라이트' 팀의 구성원들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고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믿고 있었던 어떤 것에 대한 실망과 함께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의 감정들이야말로 시민들로 하여금 이 잔혹한 사건을 외면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들이 이 사건의 규모에 대해 놀랐던 것처럼 이것은 누구도 '몰랐던 일'이 아니라 '모른척 할 수 밖에 없었던 일'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들 역시 가해자들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결국 자신들 역시 충분히 같은 처지일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며 단지 그들에 비해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임을 이해하게 된다.


11.


사건의 본말을 확인한 "마이크"는 더 확실한 증거를 포착할 때까지 기사화를 미루자는 "월터"의 말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동안 참아왔던 감정들을 여과없이 표현해 내고 만다. 물론 이는 "월터"에게 향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목도한 잔인한 현실과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마이크"를 비롯한 '스포트라이트' 팀의 멤버들 모두는 자신들이 단순한 기자라는 직업적 굴레를 벗어나,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잡아 온 지성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위에서 설명한 자신의 무력감과 무지에 대한 분노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 <래빗 홀>(2011), <스틸 앨리스>(2015), <버드맨>(2015) 등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비슷한 장면들과 거의 동일한 감정적 울림을 전달할 정도로 뜨거움이 느껴진다.


12.


오늘 언급한 영화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쩌면 대부분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그 때 있었던 사건에 더 가까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영화는 그 당시의 상황을 오롯이 전달하는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토마스 맥카시" 감독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집으로 이야기를 전달했지만, '스포트라이트' 팀을 조명하기 위해 각각의 캐릭터들이 희생당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 힘든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이 작품의 목적이 "스포트라이트" 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있지만,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 "짐"을 찾아가기 전에 캐롤을 부르던 아이들의 모습에서 "윌터"가 느꼈을 감정 등의 요소들을 조금 더 표현해 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욕심이 남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


13.


영화를 떠나서 나는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이야기가 지금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른 것을 하면 체벌을 받는 교육을 받아 왔다. 그리고 마음 속이 뜨거워지는 일보다는 오늘 밤 다리를 조금 더 편히 뻗을 수 있는 일을 선택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어떤 것이 더 옳은 일이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피라미드의 꼭대기는 하나일 수 있어도, 그런 피라미드가 이 사막 위에 꼭 하나만 있으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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