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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Apr 05. 2016

#072. 글로리데이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청춘이 달콤할 리 없다.




01.


모든 일이 의도한대로만 흘러간다면 그만큼 더 좋은 일이 어디있겠냐만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일들이 더 많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을 통하여 그 결과물이 의도한 것보다 더욱 나은 퀄리티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그 반대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기대하고 있었던 작품의 개봉일이 미뤄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던가, 혹은 크랭크업이 끝난 지 오랜 시간이 되었음에도 상영관을 찾지 못하고 창고 속에 몇 년씩이나 저장되는 운명을 맞이하는 작품들이 바로 그런 예이다. 그런데 이 작품 <글로리데이>는 다소 행운이 따른 케이스였다. 이 작품은 장편 영화에 처음 도전하는 "최정열" 감독이 자신의 시나리오 하나만으로 젊은 배우들을 설득하여 촬영을 시작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만 해도 배우들은 모두 무명에 가까운 이들이었다고. 그런데 개봉을 앞두고 <응답하라 1988>의 "류준열"을 시작으로, <치즈인더트랩>의 "김희찬", <페이지 터너>의 "지수"가 속된 말로 하나하나 터지기 시작했다. 물론 지난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영화의 작품성만으로도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다양성 영화가 출연 배우의 이름값에 기대지 않고 대중에게 어필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 영화의 개봉 시기와 맞물린 출연 배우들의 상승세가 반갑지 않을 리 없었다.


1) "김준면"(그룹 EXO의 수호)의 경우는 예외로 해야겠다. 그의 인기는 이미 국내의 범위를 벗어난 위치에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곧 그의 연기력 때문은 아니었음을 명확히 밝힌다. 솔직하게 작품을 보는 내내 그의 연기에서 아이돌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 <카트>에 출연했던 "도경수"와 함께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아이돌 출신의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작품 개봉 시기와 함께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이다.


02.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좋은 영화들은 감독의 안정적인 연출력, 주연 배우의 인상적인 연기력, 그리고 흥미로운 시나리오, 이 세 가지를 함께 갖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이야기 한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작품 중에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1997)이 바로 그런 작품에 속한다. 하지만 모든 영화들이 이 조건들 모두를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한 부분이라도 일정 기대 이상에 미치는 경우 그 작품에 박수를 보내곤 한다. 이 작품 <글로리데이> 역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작품은 분명히 아니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인상적이기는 하나 확실히 무게감이 떨어지는 부분들이 있고, 시나리오 역시 이전에 우리가 보지 못한 특별한 부분들을 갖고 있지는 않다. 또한 헤짚어 보면 영화는 굉장히 단순한 구조를 차용하고 있어 후반부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다소 늘어지는 부분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 작품이 괜찮은 작품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히 "최정열" 감독의 단단한 연출력 때문이다.


2)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작품으로 동명의 선박과 관련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개봉 당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11개 부문 수상은 물론, 22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거둔 최고의 작품으로 남았다.


03.


일반적으로 "청춘"이라는 소재가 사용되는 로드 무비, 성장 영화들은 작품의 드라마적인 구조 상의 문제 때문에 위기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 위기가 엔딩까지 지속된다거나 주인공들의 미래가 어둡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성장 영화라는 카테고리가 갖고 있는 일종의 메커니즘 탓이기도 한데, 이와 관련된 대부분의 작품들은 밝은 미래를 제시함으로써 현실과 대비되는 지점에서 관객들의 가슴 속에 묻힌 꿈과 희망을 재생시키는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작년에 개봉했던 "이병헌" 감독의 <스물>(2015)이라는 작품이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이 작품 <글로리 데이>는 같은 주제를 놓고 전혀 다른 방향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영화 속에 그대로 투영시키면서도 그 문제들을 성인이 아닌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내딛은 청춘들이 겪게 함으로써 관련 문제들에 대한 무게감을 더욱 진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타이틀이 작품 속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역설적인 방향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센 척 하지마. 너도 무섭잖아 !


04.


영화에 등장하는 네 주인공, "용비"(지수 역), "상우"(김준면 역), "지공"(류준열 역), "두만"(김희찬 역)은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뿐, 사회의 시선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 없는 학생들일 뿐이다. 그나마 "상우"가 자신의 할머니를 도와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보려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나머지 캐릭터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가정적인 문제로 인해 친구들이 아닌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용비",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마지못해 재수를 선택하게 된 "지공", 그리고 아버지의 영향력으로 인해 마음에도 없는 대학 야구부에 진학하게 된 "두만"까지.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청춘들일 뿐이다. 이 영화의 다른 모든 문제들의 근원이 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자신의 삶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던 이들이 갑자기 세상에 홀로 던져졌을 때 과연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들처럼 그려지던 이들이 여러가지 상황들을 맞이하면서 변해가는 모습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위에서 언급한 청춘들의 주체적인 삶과 관련된 소재의 작품이 궁금한 경우, "론 쉐르픽" 감독의 <언 에듀케이션>(2009), "개빈 위센" 감독의 <아트 오브 게팅 바이>(2011)을 추천한다.


05.


앞서 이 작품이 현실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영화 속에 그대로 투영시킨다고 언급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는 부분은 집약적 성장의 그늘 속에서 자라난 '왜곡된 개인주의'에 대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이 부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표현되고 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박은혜"(이지연 역)라는 인물이 자신을 도와준 아이들을 외면하는 순간이 한 부분, 자신의 아이만큼은 사건에서 분리시키기 위해 어떤 편법도 망설이지 않는 부모들의 모습이 또 하나, 그리고 생각보다 커져버린 사건 앞에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모든 죄를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것이 심리적인 부분과 맞물려 '개인주의'라는 사회적 방향성을 건드리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은 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세대를 거치면서 점점 더 무너져 내리고 있는 공동체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에 이르러, 사고로 인해 의식을 잃은 "상우"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는 장면들은 타인의 아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현실 속 사회의 모습과 평행한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과연 그들에게 진정한 우정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06.


이와 더불어 아직도 존재하는 상명하복(上命下服) 식의 경직된 조직의 모습과,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많은 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사회적 계급의 표현은 작품의 전면에서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려지고 있다. 특히 아이들이 구치소로 호송되는 장면에서 "용비"의 형(김동완 역)이 화면에서 가장 먼 지점에 위치하도록 표현된 것은 어쩌면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향해 있을 수 있었던 "지공"의 어머니(문희경 역)와 "두만"의 아버지(유하복 역)에 비해 낮을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사회적 위치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07.


작품의 표면적인 부분들을 통해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감독이 처음에 자신이 이야기 하고자 했던 바를 잃어버리지 않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사실 이 작품처럼 영화의 오프닝에서 사건의 클라이막스를 먼저 터뜨리고 그 이야기를 거슬러가는 구조를 취하는 경우, 영화의 흐름은 지나치게 늘어지는 경우들이 많다. 앞서 미리 보여준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두 풀어내는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 <글로리데이>는 그런 구조를 갖고 있고, 내러티브들 역시 특별히 계층화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의 많은 설명들을 대사가 아닌 회상 장면으로 처리하면서 특정 기점의 환기를 적절하게 시켜주는 감독의 연출이 새삼 놀라운 이유다.


그의 유일한 미소가 그들에게 남겨진 미래가 그리 궁금하지 않은 까닭이다.


08.


이 영화는 오프닝의 첫 장면과 엔딩의 마지막 장면이 동일한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가(詩歌)에서 이야기 하는 '수미상관식 구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 세상을 떠난 "상우"의 마지막 모습과 함께 엮이게 된다. 결국 그들 모두의 잘못은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는, 어쩌면 영화 속에서 가장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한 이의 몫으로 남고 말았다.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그 동안 그들이 부르짖은 '청춘', 그리고 '우정'이라는 이름의 마지막이 그러한 모습이 되고 만 것은 씁쓸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네 사람이 바다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뛰쳐 나가는 모습은 오프닝의 그것과 동일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처음과 결코 같을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남기도록 만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네 인물 중 그 누구도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옛 추억, "글로리데이"의 한 장면을 씁쓸하게 추억하도록 만드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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