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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Dec 06. 2016

#093. 라라랜드

허구스럽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단 하나의 완벽한 동화 이야기.




**이 글은 브런치 팀의 시사회 초대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01.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 매년 200편 이상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동안 이렇게 만나기 힘들었던 영화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작품이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대학 시절 수강 신청 하나 제대로 못해냈던 제가 예매를 할 수 있었을 리 없었죠. 그리고 지난 주에 있었던 기자 시사회 역시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이번 주 주말 CGV에서 열리는 스페셜패키지 역시 구매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새해얗게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만의 만남. 예상대로 황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틀만 더 기다리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영화관에서 편하게 앉아 관람할 수 있지만, 이렇게까지라도 보고 싶었던 것은 이 작품 <라라랜드>를 기다린 것이 벌써 1년하고도 6개월이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시사회가 있었던 잠실 롯데월드타워는 일산에 사는 제가 일 년에 채 3번도 가지 않는 곳이죠. 롯데 Ent.에 잠시 다녔던 시절 질리도록 오고 갔던 곳이기도 해서.


02.


이 영화 <라라랜드>가 크랭크 인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린 게 벌써 지난 해 여름(2015년 여름)이니 국내에서는 감독의 전작이었던 <위플래쉬>(2015)가 개봉하자마자 거의 바로 촬영에 들어간 상태였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위플래쉬>의 경우에는 감독이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했던 동명의 단편 작품과 동일선 상에 있는 작품이니 "다미엔 차젤레" 감독 개인적으로 본다면 두 작품의 연출 기간이 실질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담이지만, 원래 이 작품의 타이틀 롤은 "엠마 왓슨"과 "마일즈 텔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일즈 텔러"의 경우에는 "라이언 고슬링"이 이 작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체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엠마 왓슨"은 또 다른 뮤지컬 영화 <미녀와 야수>에 참여하면서 이 작품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작품 직전에 "라이언 고슬링"이 "엠마 왓슨"이 이 작품을 떠나며 선택한 <미녀와 야수>의 "야수" 역에 캐스팅 될 뻔 했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라이언 고슬링"과 또 다른 Emma인 "엠마 스톤"이 이 작품에 함께 하게 된 점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이는 이 글을 통해 차차 이야기 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03.


이 영화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면, <라라랜드>가 "다미엔 차젤레" 감독이 만든 세 번째 연출작이라는 사실과 외형적으로 뮤지컬 형식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감독이 전작인 <위플래쉬>를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실질적인 데뷔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의 첫 연출작부터 그리 좋은 평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2008년 처음으로 연출한 장편 작품 <Guy and Madeline on a Park Bench>(2008)는 당시에 드라마가 약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물들 사이의 연결 고리가 약하다는 평을 '뉴욕 타임즈'로부터 받은 기록도 있습니다. 대신, 영화 속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는 Jam Session이 쿨하다는 평은 인상적입니다. 그로부터 5년 뒤에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선댄스 영화제에 영화 <위플래쉬>를 출품하게 되는데, 어쩌면 그는 애초에 영화 속에서 음악을 다루어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작품과 이번 작품, 두 작품만 보더라도 확실히 영화를 통해 음악을 이야기 하는 또 하나의 특별한 감독이라고 이야기하기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죠. <비긴 어게인>(2014)과 <싱 스트리트>(2016)를 연출한 "존 카니" 감독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에서의 특별함입니다. "존 카니"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서 음악을 통해 눈과 귀를 간지럽히는 쪽이라면,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심장을 뛰게 만듭니다.


04.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보여집니다. 꿈과 성공이라는 지점에 있어 개인의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하나와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인의 선택과 가치관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에 대한 것이 또 다른 하나. 이 중, 처음 언급한 꿈과 성공이라는 지점에 대한 부분은 감독의 전작인 <위플래쉬>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개인의 성공과 영욕을 얻기 위해 끝을 향해 치달리던 인물(앤드류, 마일즈 텔러 역)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고민하는 인물(세바스찬과 미아)들로 하나의 벡터가 더해지는 변화를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줍니다. 사실 두 번째 부분이 조금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감미로운 트랙들과 아름다운 영상미로 이 영화가 한 편의 꿈과 같이 그려지는 것과 별개로 어느 지점에서는 상당히 서늘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아름답다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두 남녀가 사랑을 꽃 피웠던 "여름(Summer)"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던 까닭이지요.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흥겨운 오프닝 넘버.


05.


영화는 시작과 함께 오프닝 넘버인 '트래픽, Traffic'이 시작됩니다.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LA를 배경으로 고속도로 위에서 군무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장면은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두 주인공,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역)과 "미아"(엠마 스톤 역)가 중심에 존재하지 않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LA라는 도시를 향해 가는 젊은이들의 속성을 작품의 가장 처음에서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 동부에는 뉴욕이 있고, 미 서부에는 LA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중 하나인 장소이자 헐리우드 입성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기회의 도시로 여겨지는 장소. 오프닝 넘버는 그런 도시를 향하는, 혹은 그 곳에서 꿈을 이루어가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지점입니다. 동시에 그런 장소에서 남다른 목표를 갖고 살아가고자 하는 두 사람, "세바스찬"과 "미아"를 더욱 입체적으로 부각시켜주는 요소가 되기도 하죠.


06.


영화 속에서 LA라는 도시가 "세바스찬"과 "미아"를 더욱 입체적인 인물들로 바꾸어 놓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미아"가 첫 오디션을 망치고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친구들로부터 파티에 가자고 제안 받던 그 장면. 그 장면에서 "미아"의 동료들은 파티에 가는 목적으로 자신의 어깨에 커다란 날개를 붙여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그런 사람, 그런 기회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에둘러 이야기 하는 것이죠. 실제로 파티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성과들을 이루어 왔는지 서로 자랑하기 바빠 보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은 차치하고서 말이죠. 함께 파티장을 찾은 "미아"에게 그런 모습들은 하찮고 피곤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녀가 말하죠. 내가 제대로 설 수 있는 곳을 찾고 싶다고. 이 때의 "미아"는 단순히 성공에 대해 몰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같은 성공을 하더라도 그 곳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하고 싶은 것이죠. 어쩌면 대학까지 중퇴하고 나와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꾼 지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아"는 당당합니다. 오디션을 보는 장소에서 연기하는 자신을 두고 딴 짓을 하는 멍청한 디렉터들이 눈 앞에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파티 도중에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그녀는 이름 모를 재즈바 앞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피아노 재즈 선율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운명을 만나게 되죠.


피아노 선율을 따라 온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


07.


반면, "세바스찬"은 그런 "미아"보다 조금 더 절박한 상황입니다. 이미 한 번의 실패를 맛 본 뒤에 작은 일이라도 당장 하지 않으면 당장의 생활이 어려울 정도라고 할까요? 미래에 자신만의 정통 재즈바를 차리고 진짜 재즈의 매력을 이 LA라는 도시에 알리겠다는 큰 꿈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은 "빌"(J.K.시몬스)의 가게에서 그가 선곡해 준 리스트대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는 "Let it Snow"와 같은 시덥잖은 노래들을 연주해야 할 처지입니다. 물론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죠. 자신이 추구하는 정통 재즈와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이는 1970년대 후반, 영국 그룹 "The Buggles"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 "Video killed the radio star"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 또한 후반부에서 다시 한 번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빌"이 건네 준 리스트를 참다 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세바스찬"은 "빌"과의 약속을 어기고 자신만의 프리 재즈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집으로 돌아가던 "미아"가 이름 모를 재즈바 앞에서 매료된 피아노 소리는 이 음악이었구요. 하지만 "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 메마른 도시에서 "세바스찬"의 피아노 선율에 유일하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미아"와는 달리 그는 약속을 어긴 "세바스찬"에게 해고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선사하고 맙니다.


08.


그리고 다시 만난 두 사람. "미아"의 입장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세바스찬"은 조금 더 그래보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연주는 커녕,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재능을 썩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우연을 가장한 만남들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은 석양이 지는 LA 도시를 내려다보며 사랑의 감정을 나눕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전작인 <위플래쉬>도 그랬지만 사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연출 방법은 이런 로맨스물과 그리 잘 어울린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위플래쉬>의 경우에는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 자체가 심이 강하고, 힘 있는 장면들이 많았기 때문에 감독의 거친 표현 방법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느낌이었지만, 이 작품 <라라랜드>에서는, 같은 방식의 연출을 보여주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거칠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런 거친 연출들 사이에 너무도 섬세한 지점들이 조금도 새어 나가지 않고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추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조금도 오차가 나지 않는 스텝 연출은 기본적인 섬세함이며, 함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그녀를 차에 태워 보낸 뒤에 남은 여운을 어쩔 줄 몰라 다시 한 번 스텝을 밟는 "세바스찬"의 뒷모습은 누군가를 사랑해 본 남자라면 모두가 한 번씩 꼭 느껴보았을 지점의 감정이기에 화면 속 그 작은 부분이 그대로 가슴을 때리고 맙니다. 아, 이 남자 저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구나. 하는 그런 마음. 대사 한 마디 없이 이런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니. 역시 대사 한 번 없었던 이 영화의 예고편에 마음을 흔들렸던 건 분명 이런 섬세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떠나는 "미아"를 바라보며 웃지만, 그녀가 떠난 뒤에 한숨을 내쉬던 "세바스찬"의 엔딩 역시 동일합니다.


이 장면에선 온 몸을 두둘썩거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09.


영화 개봉 전부터 선공개되며 큰 인기를 얻었던 메인 타이틀 곡 "City of Stars"가 이 영화에 크게 다섯 번 등장합니다. 그리고 영화에 이 음악이 등장할 때마다 이 곡의 길이가, 화성이, 연주 방법이 조금씩 다 다르죠. 저는 이 음악이 "세바스찬"과 "미아", 두 사람의 관계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멜론을 비롯한 국내 음원 사이트에 수록되어 있는 버전은 두 사람이 가장 행복했을 때 함께 불렀던 버전, 이 영화에서 세 번째로 등장했던 부분입니다. 가장 달달하면서도, 유일하게 두 사람의 화음이 잘 어우러져 있는 버전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두 번째로 흘러나올 때는 방파제에서 노부부와 함께 춤을 추던 장면이었고, 이 부분에서는 전체 음악의 절반 정도만 나오면서 "세바스찬"의 마음을 대변했고, 네 번째 음악은 가장 드라이하게 나오면서 두 사람의 이별을 암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인 다섯 번째는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 두 사람이 함께 했으면 어땠을 지를 보여주었던 상상 장면에 활용되며 여운을 남겼죠. 영화의 전체 내용은 Winter - Spring - Summer - Autumn - Winter 로 이어지는 계절감을 이용한 두 사람의 관계 변화와 함께 이 곡, "City of Stars"의 모습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전작에서 "더블 타임 스윙" 주법을 통해서 영화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했던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의도가 이 작품에서도 유사하게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0.


앞서 언급했던 "미아" 주변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근원적인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을 가져오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어머니와 나누던 통화 - 남자는 뭐하는 사람인 지. 저축해 둔 돈은 좀 있는 사람인 지. 등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 - 를 "세바스찬"이 들으면서부터 입니다. 그 전에 이미 동문인 "키이스"(존 레전드 역)로부터 큰 돈을 얻는 대신 자신이 추구하던 음악을 버려야 하는 제안을 받은 "세바스찬"은 처음엔 거절했다가, 그녀의 전화를 우연히 듣게 된 이후 자신의 꿈보다 돈을 얻기로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 첫 번째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모든 것들을 지켜내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두 번째가 어차피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할 수 없다면 당장은 돈이라도 벌자는 생각이 컸을 것입니다. 실제로 두 사람이 처음으로 큰 싸움을 벌이던 순간에 "세바스찬"은 자신을 변했다고 몰아부치는 "미아"에게 이게 네가 원했던 게 아니냐는 말로 상처를 주고 맙니다. 다른 로맨스 영화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장면입니다. 여자의 의중을 직접 물어보지는 않은 채 자신이 내키지 않는 방향으로 스스로 향했던 남자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과를 집어들고는 이게 모두 너를 지키기 위함이었노라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장면.


키이스와의 달갑지 않은 조우. 그러나 어떤 기회이기도.


11.


하지만 두 사람이 "세바스찬"의 변화로 인해 싸우게 되기 전에 같은 곳을 바라보던 두 사람이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들은 두어번 더 등장합니다. "미아"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세바스찬"이 그녀를 데리고 갔던 극장이 폐업하며 과거의 유산이 사라지기 시작했음이 암시되고, 자신의 꿈을 접고 "키이스"와 함께 팝재즈 밴드를 결성해 큰 인기를 얻던 "세바스찬"의 공연장에서 그가 신디사이즈 키보드를 연주하는 순간 뒤로 밀려나던 "미아"의 모습들 모두 말입니다. 여기에서 앞서 설명했던 "The Buggles"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 "Video killed the radio star"의 내용들이 수면 위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세바스찬"은 자신이 변했다고 힐난하는 "미아"에게 더 이상 사람들이 듣지 않는 정통 재즈가 무슨 소용이냐고 소리치고 말죠. 영화의 처음에서 "미아"의 룸메이트들이 이야기 했던 어깨 위의 날개가 "세바스찬"에게 달린 셈이고, 그 날개를 단 "세바스찬"이 자신의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잡지 화보 촬영을 하다가 사진사의 요구에 정통 재즈 음악을 연주하려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 전까지, 한 마디로 원래의 자신을 되찾기 전까지 적어도 그의 행동은 그러했습니다. 속마음은 어땠을 지 모르지만 말이죠.


12.


문제는 이 순간까지도 "미아"는 자신의 꿈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디션에서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지만, 함께 마음을 나누었던 "세바스찬"의 응원에 힘입어 자신이 연출하고 자신이 대본을 쓴 1인극까지도 준비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사실 "미아"의 1인극 연극은 그녀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 자신의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어깨 위의 날개를 이야기 할 때 홀로 고고이 간직했던 자신이 꼭 있어야 할 곳에 대한 갈망을 넘어 지금 사라지고 있는 모든 것, 어쩌면 앞으로 사라지고 말지도 모르는 추억들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1인극이 선보이게 될 무대가 이제 폐업하고 만 영화관이라는 것도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세바스찬"이 변해버린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깨 위의 날개를 이야기 하더라도 "세바스찬"만큼은 자신이 이야기했던 가치를 영원히 함께 지켜줄 줄 알았는데 말이죠. 게다가 그는 그 모든 변화의 원인이 자신이라 다그칩니다. 어쩌면 LA라는 이 도시에서 그녀의 유이한 동력이었던, '1인극'과 '세바스찬'. 이 두 가지가 모두 무너지고 말자, 그녀 역시 자신의 꿈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녀만큼은 자신의 처음 꿈을 포기하지 않았었으니까.


13.


이 부분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뒤늦게 그녀에게 뛰어가 자신을 포기하려고 하는 "미아"에게 자신이 더 잘하겠다며, 모든 것을 되돌려 놓겠다며 울부짖는 "라이언 고슬링"의 모습이었습니다. 영화 속 인물의 이름인 "세바스찬"이 아닌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배우의 본명을 이야기 한 것은, 실제로 이 장면에서만큼은 "세바스찬"이 아닌 "라이언 고슬링"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의 필모 중 가장 현실적인 내용을 담아내고 있었던 영화, <블루 발렌타인>(2010)을 보신 분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실 지도 모르겠네요. 그 작품에서 "딘"이라는 인물을 연기했던 그가 매정하게 등을 돌려버린 "신디"(미쉘 윌리엄스 역) 앞에서 무력하게 "Tell me what to do, tell me how i should be, just tell me, I'll do it.. I'll do it"을 외치던 모습과 너무나도 유사하게 다가왔습니다. 두 영화가 동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렇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미아"를 잃은 그는 원래의 현실로 돌아와 결혼식장을 전전하며 다시금 자신의 꿈을 위해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14.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인생이란 참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이번에는 "미아"의 어깨 위에 날개가 달리게 됩니다. 물론 그녀의 어깨 위에 달리게 될 날개는 그녀의 1인극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세바스찬"을 포함한 그 동안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이 이야기했던 '날개'들의 성격과는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어쩌면 "세바스찬"도 그 부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아"가 앞으로 이루어 갈 성공이라는 이름의 모습이 그 동안 자신이 취해왔던 성공의 모습과는 다소 다를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 같냐는 "미아"의 물음에 그가 대답합니다. 그저 그렇게 두자고. 그렇게 하다보면 무엇인가 되지 않겠느냐고. 그게 그의 진심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훌쩍.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아무도 미래에 대해 단언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5.


5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지 아마 두 사람은 그 전에 알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미아"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자신을 닮은 딸까지 낳은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되었고, "세바스찬"은 처음의 꿈대로 자신이 원했던 자리에 자신이 원하던 공간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죠. 다만 한 가지, "세바스찬"은 자신의 주변 모든 곳에서 이제 스타가 되어버린 "미아"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지, 이번엔 어떤 작품을 하게 되었는 지 알 수 있었지만, "미아"는 그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지 전혀 몰랐던 것 같습니다. 마치 자신의 과거는 모두 잊은 듯이 지금 자신이 이룩해 놓은 모든 것들 안에서 자신의 삶만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그녀 역시 자신의 어깨 위에 달려있던 날개를 어찌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원했던 방향대로 가기는 했지만, 그 이후의 삶은 어쩌면 그녀 역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지만, 이 말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반면, "세바스찬"은 그녀가 만들어 준 재즈바의 이름 'Seb's'를 그대로 이용하며 "미아"가 다시 한 번 그의 곁으로 되돌아 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미아"의 물음에 그저 그렇게 두자던 그의 대답은 진심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과거 자신이 변해버린 이유가 "미아"라고 변명하던 비겁한 그가 이제 막 꿈을 이루려고 하는 그녀를 붙잡을 용기 따위는 없었을테니까요. 다른 이야기는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가 자신의 꿈에 그녀가 만들어 준 이름을 붙였다는 것만으로도 지난 5년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냈는 지는 충분히 설명이 되니까요.


16.


영화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 부분이야 말로 이 영화의 정수(精髓)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설명을 더하자면,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과 <카페 소사이어티>(2016)의 핵심이 이 영화의 엔딩에 섞여 있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내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을. 나중에. 시간이 더 흐르고 난 다음에. 이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맞이하게 된다면. 정말 그런 상상을 한 번쯤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을. 정말 제대로 표현해 준 장면. 더 이상 어떤 말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자신들이 함께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하는 동안에 실제 모습이 아닌, 그림자극과 비슷한 모양의 실루엣으로 표현되는 장면이 두 어번 있습니다. 저는 그 부분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후회하고 있는, 자신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친 부분을 안타까워 하는 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함께 오디션을 보러 가서 "미아"의 오디션이 끝난 뒤 서로 부등켜 안는 장면이 실루엣으로 보여지는 부분은, 실제로 "미아"의 대화에 그대로 두자며 한 발 물러섰던 "세바스찬"의 후회가 그대로 반영된 모습이라고 받아들여집니다.


A Voice that says, I'll be here, and you'll be alright.


17.


사실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만족감도 컸었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영화에서 내게 던져 주는 감정들이 너무나 많아서, 러닝타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초반부에 느꼈던 감정들, 중반부에 느꼈던 감정들이, 후반부에 다시 등장하는 새로운 감정들에 밀려 조금씩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충만한 감정으로 영화관을 빠져 나왔지만, 손에 쥐고 있는 것들보다 손에서 빠져나가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 같은 것 말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분명히 어떤 감정을 섬세하게 세공해서 관객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는 종류의 감독은 분명히 아닌 듯 보입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원석 그대로 던져두고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집어가도록 만드는 감독이랄까요? 그렇기 때문에 그 감정들이 많이 보이면 많이 보일수록 매달리게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감독 뿐만 아니라 <크레이지, 스튜피드, 러브>(2011), <갱스터 스쿼드>(2013)에 이어 세 번째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두 배우의 호흡도 상당히 좋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구요.


18.


단 한 번의 관람으로 이 글을 통해 이 영화의 모든 부분들을 캐치하고 언급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다음 관람 뒤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이 글에 덧붙일 수 있을까요? 지난 새벽 내내 되뇌이고 되뇌이면서도, 아직까지 벌렁거리는 가슴이 멈추질 않아서 아마 또 다시 한 번, 어쩌면 여러 번, 그의 관객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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