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가 낳은 또 하나의 시리즈.
<헝거 게임>(2012), <메이즈 러너>(2014), <다이버전트>(2014)... 이 중에는 아직 시리즈가 마무리되지 않은 작품들도 있지만 2010년대 초반 헐리우드에서 시리즈물은 대단히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였습니다. 그 이전에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혹성 탈출>, <X-Men> 등의 작품들이 성적으로 보여주었듯이 대표할 만한 시리즈물을 안고 가는 것은 상당한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관객들의 기대와 시선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표면적인 효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죠. 매번 캐릭터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DC 코믹스나 마블 측의 라인업이 쉬지 않고 쏟아지는 이유도 동일합니다. 기존의 시리즈물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광역의 의미를 가진 시리즈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니까요. 지금도 헐리우드의 대형 제작, 배급사들은 차후 몇 년간 자신들의 텐트폴(Tentpole Movie) 역할을 해 줄 시리즈물들을 발굴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일본의 유명 게임 타이틀인 <몬스터 헌터>를 시리즈화한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셜록>이나 <왕좌의 게임>과 같은 매니아층이 확보된 흥행 드라마들 역시 끊임없이 소문이 흘러나오는 매력적인 작품들입니다. 최근에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로버트 패터슨"이 떠날 것이 확정된 <트와일라잇>을 '라이온스게이트' 측이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자, <스파이더 맨> 시리즈가 리부트에 리부트를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흐름에서 <해리포터> 시리즈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공식적으로 '워너 브라더스'가 북미 극장가에서 <해리포터> 시리즈 7부작 본 편(총 8편, 마지막 7편의 경우 1부와 2부로 분할 제작되었습니다.)으로만 벌어들인 금액이 자그마치 약 23억 8천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2조 8,000억 원에 달하는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이런 시리즈를 '워너 브라더스' 측에서 쉽게 놓아줄 리가 있을까요? 게다가, 원작자인 '조앤. K. 롤링' 역시, 고맙게도, 해리포터 시리즈를 놓지 않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말이죠. 최근에는 <Harry Potter and the Cursed Child>라는, 본 편에서 한 세대가 지난 시점의 이야기를 영국 웨스트엔드의 무대 위에 연극으로 초연하기도 했습니다. 본 편의 마스코트나 다름없었던 "다니엘 래드클리프",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는 너무 성장한 나머지 이제 더 이상 시리즈를 이어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지만, 제작진은 한 발짝 더 나아갑니다. "그래? 그럼 우리는 본 편에서 한 세대 이전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시리즈로 만들어 내자." 그리고 그 작품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신비한 동물사전>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기존의 <해리포터> 시리즈와는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할 뿐,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재물들을 통해 <해리포터> 시리즈 본 편의 '프리퀄' 시리즈라고 알려지고 있죠. '프리퀄' 시리즈 역시 조금 더 상세히 파고들면 두 가지로 세분화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차후에 기회가 있다면 정확히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히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이 기존에 존재했던 <혹성탈출> 시리즈의 기원을 밝히는 '프리퀄'이었던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보면, 이처럼 이번 새로운 시리즈 <신비한 동물사전>은 모든 배역의 인물과 관계가 바뀌기 때문에 기존의 <해리포터> 시리즈를 사랑했던 관객들이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해리포터>를 떠올리면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엠마 왓슨"이니까요. 제작 과정에서 이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해답은 인물의 상이함에서 오는 어색함을 세계관의 공유라는 방식으로 상쇄시킨다는 것. 특히 오프닝 크레딧 전, '워너 브라더스'의 타이틀과 함께 들려오는 익숙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메인 테마 사운드는 영화를 이제 막 감상하려는 관객들의 그 시절 그 설렘을 자극하기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이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모습은 기존의 <해리포터> 시리즈가 보여주었던 그 방식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철저한 기승전결의 구조에 기반하여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인물들의 성격과 관계를 정립하고, 중반부의 지루함은 마법 세계에서만이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요소들의 흥미로움으로 상쇄시키고, 마지막으로 엔딩에서는 어떤 메시지와 주인공의 성장된 모습을 제시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죠. 과거의 "해리포터"(다니엘 레드클리프 역)라는 인물이 "뉴트 스캐맨더"(에디 레드메인 역)로 바뀌었다는 것 외에는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더불어 <해리포터> 시리즈의 특장점 중 하나인 현실과의 밀접한 요소들을 통한 표현력 또한 이번 작품에서 일관성 있게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수사본부의 마법 위기 표시기는 언젠가 에너지 절약 표시 스티커에서 본 듯한 모습을 하고 있고, 등장하는 모든 '신비한 동물들' 역시 현실 속 동물들과 닮아 있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등장하는 '노마지'(No Magic : 영국에서의 머글과 동일한 표현, 인간을 일컬음.)들이 "제이콥"(댄 포글러 역)이 만들어 낸 신비한 동물들의 모습을 한 빵을 보고 흥미로움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모습과 동일시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 저 빵에 있는 동물 어디서 많이 본 동물인데! 어, 이 영화에 있는 것들 어디서 많이 몬 것들인데!
내 상상력은 이렇게 뛰어나질 않거든요.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기존의 시리즈와 달리 '노마지'라고 불리는 마법사가 아닌 인간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본 편의 <해리포터> 시리즈의 설정과 달리 인간과 마법사가 서로를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마법사들이 인간의 눈을 피해 숨어 살고 있다는 설정의 <신비한 동물사전>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의 이질적인 세계가 그려지는 모든 이야기에는 그 중간에서 연결자의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래 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과 인간의 연결자 역할을 했던 '프로메테우스', '헤라클레스'와 같은 이들. 영화 <E.T>(1982) 속에서 외계인과 인간의 연결자 역할을 했던 "엘리어트"(헨리 토마스 역)라는 꼬마 아이. 이 작품의 "제이콥"이라는 인물이 바로 그런 책임을 부여받은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진중한 성격을 가진 "뉴트 스캐맨더"와의 무게감을 조절하기 위해 다소 희화화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의 역할은 분명히 <러시아워>(1998) 시리즈의 "크리스 터커" 이상의 모습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뉴트" 일행과 함께 했던 기억을 잃어버리고 말지만, 이틀 동안의 모든 기억들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늘에서 내리던 비는 분명히 '나쁜 기억'을 없애는 용도의 물약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결정적으로 기억을 잃은 뒤에 자신의 빵집을 찾은 "퀴니"(앨리슨 수돌 역)와 재회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목 뒤의 상처를 긁적이던 그의 모습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기존 시리즈의 "해리포터" 이마 위 상처가 "볼드모트"와 연결되던 설정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물론 이 작품에도 안타까운 부분들은 존재합니다. 스토리 라인 위에서 "그레이브스"(콜린 파렐 역)라는 인물의 정체성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모데스티"(페이스 우드 블라크로브 역)라는 인물과 "뉴트" 사이에서 그 역할이 다소 애매해진 느낌이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시리즈가 진행되는 동안 - 최근 헐리우드 기사에 따르면 이 작품은 총 5부작이 될 예정입니다. - 그의 역할이 얼마나 더 확장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시리즈의 시작인 이번 작품은 "뉴트 스캐맨더" 측의 인물들을 설명하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부분만 제외하면 영화 자체는 그 동안 "데이빗 예이츠" 감독이 보여준 그 어떤 작품들보다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는 '제2의 세일럼 회'라는 집단을 통해 머글들과 마법사들 사이의 관계를 비유해내는 능력까지 보여줍니다. "모데스티"가 옵스큐러스라는 존재를 만들어 낸 것이 노마지 어머니의 학대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설정이 바로 그것이죠. <쇼생크 탈출>(1994)의 대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비를 맞는 "제이콥"의 행동 역시 "데이빗 예이츠" 감독이 성장했음을 알려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단순히 관객들의 미소를 짓게 만드는 오마주, 혹은 패러디로서의 기능을 넘어 "뉴트" 일행을 따라다니던 '노마지' "제이콥"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줍니다. <쇼생크 탈출>에서 자유를 만끽하던 "앤디"(팀 로빈슨 역)의 감정을 "제이콥"에게 대입시키면 그가 "뉴트" 일행"과 함께한 시간들이 다소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다소 동 떨어진 이야기입니다만..
해치지 마세요. 위험한 동물은 없어요 !
이 영화는 다시 한번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배우에 대한 감탄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첫 등장에서, 가방을 무릎에 얹고 첫 대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지난 작품 <대니쉬 걸>(2016)의 "릴리"라는 인물을 순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고운 턱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만큼 전작에서 그가 남긴 인상이 대단했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조금씩 "뉴트 스캐맨더"로 변해가는 모습이 느껴질 정도로 그는 같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 헐리우드에서는 많은 배우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기존 이미지를 벗기 위해 히어로물을 선택하고자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로운 히어로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적은 부담으로 마블이나 디씨의 인기를 끌어안기에 용이하기 때문이죠. 이와 대비해 본다면 기존의 <해리 포터> 시리즈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고, 또 매년 쉼 없이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가는 그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코엑스에 있던 메가박스에서 이 영화의 시작을 함께 했습니다. 너무나 충격을 받아 영화가 끝나고 코엑스몰 안에 있던 레코드 점에서 OST 앨범까지 샀던 그 기억이 벌써 15년 전의 일이네요. 어떤 일이든 하나의 작업을 10년 이상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그 결과를 떠나 박수를 보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대단한 결과물까지 손에 얻었죠. 물론 그 세월을 지나는 동안 몇 번의 감독이 바뀌고, 그 시절의 배우들은 더 이상 동화 속 어린이들이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또 한 번 확장해 낼 수 있는 "해리 포터"라는 브랜드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의 시리즈로서 무난한 출발을 시작한 <신비한 동물사전>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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