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현실성과 합리성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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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안토니오 바요니" 감독의 영화 <더 임파서블>(2013)은 지난 2004년 동남아를 강타해 사상자만 30만 명을 남기고 간 거대한 쓰나미를 바탕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상당히 현실적인 작품입니다. 휴양지를 강타한 쓰나미로 인해 헤어진 가족이 겪게 되는 영화 자체의 스토리는 기존 재난 영화가 보여주었던 기본적인 틀에서 조금도 벗어남이 없지만, 쓰나미라는 자연 재해를 겪어보지 않은 관객들이라도 순간 숨을 멈출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죠. 반면, "윤제균" 감독의 영화 <해운대>(2009)는 앞선 영화 <더 임파서블>과 같은 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사건을 허구적으로 구현해 그 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합니다. 영화 <해운대>가 1,130만 명이 넘는 박스오피스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쓰나미'라는 사건 뒤에서 벌어지는 인물들간의 이야기가 관객들이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는 점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재난 영화는 크게 두 가지 갈래로 구분지어 볼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재난이나 재해를 각색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과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럴 수 있을 법한 사건을 인위적으로 창조하여 스크린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두 가지의 경우 모두에 공통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과연 영화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와 닿을 수 있는가?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둘 중 한 가지라도 충족시킬 수 있다면 그 작품은 괜찮은 작품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재난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관객들에게 소구하는 가장 중심적인 지점은 그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이 스크린 속의 이야기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라는 지점의 답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로 이 부분의 답은 우리가 일반적인 재난 영화와 SF(Science Fiction)영화를 구분짓는 경계점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인디펜던스 데이>(1996)나 <우주전쟁>(2005)과 같은 작품들을 재난 영화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갑자기 우주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이야기 자체가 합리적이거나 현실적인 부분에서 다소 동떨어져 있으니까요. 얼마 전 개봉한 <부산행>(2016)과 같은 작품들 역시 동일한 맥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 <판도라>는 온전히 재난 영화라고 보기에 영화 내부적인 요소들이 하나같이 모두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 전에,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국내 원전 사고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더 임파서블>과 같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보다는 <해운대>나 <샌 안드레아스>(2015)와 같은 작품의 지점에 더욱 가깝습니다. 물론 영화의 외부적인 부분에서 말이죠. 문제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영화 속으로 가져올 때는 더 높은 수준의 현실성이 요구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실 "브래드 페이튼" 감독의 영화 <샌 안드레아스>는 그 내용만 본다면 굉장히 허구스러운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주인공인 "레이"(드웨인 존슨 역)는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혹은 미국 영웅주의에 부합하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허나, 적어도 감독은 그런 부분들의 의구점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영화 전반부의 상당 부분을 영화의 소재가 되는 '샌 안드레아스 단층'이 영화 속에서 왜 끊어지는 지를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샌 안드레아스>라는 영화가 합리성과 현실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영화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 부분을 메우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 모습이 작위적이라 할 지라도.
허나, 이 영화 <판도라>는 이 두 가지 요소를 충족시킬 생각이 애초에 없어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요소가 현실적인 요소의 체감을 통한 공감이나 드라마를 이용한 감정 이입에 있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서 주된 요소로 다루어 지고 있는 소재 - 원자력 발전소 폭발 - 의 발단이 되는 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분노와 사건 자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잔혹함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실례로 이 영화는 원자력 발전소가 지진에 의해 붕괴된다는 설정을 갖고 있으면서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마을에 쥐떼가 나타나는 것 정도로 얼버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전진(前震)이나 여진(餘震)에 대한 표현 또한 전무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체육관에 갇힌 마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채 경찰들에 의해 감금되게 되지만 그 흔한 몸부림 한 번 치지 않은 채 그 사실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물들은 그 방사능 더미 안에서 보호복을 입고 있으면서 대사를 칠 때마다 마스크가 벗겨져 턱이 노출되는 모습들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죠. 믿기 어려우신 분들께서는 "재혁"(김남길 역)이 처음 쓰러지는 장면에서 구조대를 부르던 "평섭"(정진영 역)의 모습을 자세히 보시길 바랍니다.
다른 드라마적 요소들에서 등장하는 신파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한국 영화에서 신파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서 이제 식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신파적 요소가 가득한 영화를 더 열심히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영화의 신파는 그 적정선을 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기본 구조가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 이라면, 이 작품은 발단 - 전개 - 위기 - 신파 - 위기 - 신파의 반복적 구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더 나아가, 원전 사고로 인해 이 영화가 획득하는 감정적 종착점은 주인공인 "재혁"을 사지로 몰아넣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것 뿐, 다른 어떠한 것도 남지 못한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 상황에서조차 이 영화의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 되어야 할 인간의 존엄성 혹은 개인의 내면적 갈등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은 조금도 등장하지 않은 채, 자신의 운명이 그리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모습으로 의연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재혁"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라 웃음만 납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작품을 통해 얻는 슬픔의 감정과 특정 계층에 대한 불신이 긍정적 감정으로 전환되는 것이 결코 작품의 순기능으로 인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은 그렇게 획득한 긍정적 감정을 이 영화 자체의 매력으로 치환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지점에 있어서는 이 영화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정치적 포퓰리즘의 투사 역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 <판도라>가 어느 정도의 관객 수를 확보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그 어떤 작품보다 그 관객 수라는 지표에 큰 의미를 둘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이라는 사건 자체가 애초에 감독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소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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