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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an 07. 2017

#095. 패신저스

아쉬움이 남을만큼 참신했던 우주 활용 방법.




01.


전통적으로 우주는 '극복의 대상'으로 활용되어져 왔습니다. 인간이 잘 알지 못하는 우주라는 대상의 속성을 영화 속에 그대로 차용해 이야기의 긴장감을 형성하고, 극 중 인물들의 위기를 초래하는 배경으로 사용되었던 것이죠. 영화 <아마겟돈>(1998)에서 "브루스 윌리스"의 마지막 모습이 극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우주 소행성과의 충돌을 극복하기 위한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우주는 인간이 맞서 싸우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지의 존재와의 조우, 극복을 위한 노력, 노력의 무산과 위기, 조력자 혹은 희생자를 통한 극복, 극복을 통한 화합과 성취감. 소재 하나만으로도 모든 이야기의 전개를 형성할 수 있고, 실제로 많은 SF 영화들은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 <패신저스>의 초반부, 중반부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느껴진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껴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주가 '극복의 대상'으로 활용된 것이 아니라, 주인공인 "짐"(크리스 프랫 역)이 처한 상황을 증폭시켜주는 역할이자, "오로라"(제니퍼 로렌스 역)가 그에게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주는 역할. 이 영화에서 우주는 그런 배경적 장치로만 활용되었습니다.


02.


이 영화 전체를 이끌고 나아가는 위기적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개척 행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우주선 아발론 호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것. 둘째, 여주인공 "오로라"가 자신의 동면 해제와 관련된 사실을 언제쯤 알게 될 것인가에 대한 것. 앞서 이야기 했듯이, 첫 번째로 언급한 부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이와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 긴장감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극이 발생시키는 위기 가운데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긴장되지는 않습니다. 이미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며 작품 속에서도 몇 번에 걸쳐 암시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후자인 "오로라"와 관련된 것은 이 작품에서만 형성할 수 있는 특징적 긴장감에 해당됩니다. 관객은 제 3자의 시각에서 모든 사실을 알고 스크린을 보고 있지만, 영화 속 "오로라"는 홀로 그 사실을 모른 채 우주선 내에서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지점에서 형성되는 미묘한 긴장감. 그리고 인간은 아니지만 극 중에서 속이려는 "짐"과 속여진 "오로라", 두 사람 사이에서 또 다른 제 3자의 입장에 있는 안드로이드 바텐더 "아서"(마이클 쉰 역)가 주는 불안정성. 이런 요소들이 이 영화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중반부를 지나 "오로라"가 자신의 동면 해제와 관련된 진실을 알게 되면서 너무도 급격히 보편적인 모습으로 방향을 비틀어 자신만의 매력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짐은 오로라를 깨운 사실을 처음에 감추어 버립니다.


03.


유일하게 동면에서 깨어난 우주선의 승무원인 "거스"(로렌스 피시번 역)의 등장과 함께 영화의 모든 이야기가 '생존'에만 집착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어쩌면 이것은 영화의 구조상 필연적인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위기를 형성하던 두 가지 중 하나가 완전히 해소되고 말았으니,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남은 하나의 위기 - 우주에서의 생존 - 에 매달릴 도리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죠. 사실 우주에서의 생존을 논하는 것만큼 극적으로 긴장감을 유발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식상하다는 것이죠. 더구나 "거스"라는 인물은 그저 그것으로 자신의 역할이 끝나고 맙니다. 극의 방향을 전환시켜주는 역할과 함께, 그 방향의 결말을 위한 키(Key)를 넘겨주기 위한 인물이었던 것이죠. 애초에 캐릭터에 대한 설명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에 흔히들 드라마에서 이야기 하는 주인공 옆의 친구1 정도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이 캐릭터가 필요했나 싶기도 하구요.


04.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를 연상케 하는 "짐"의 선택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물론 구약성서에는 아담과 이브가 동시에 창조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신이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 이브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만큼, 자유의지가 작용했다는 점만을 제외하면 "짐"이 "오로라"를 동면에서 깨어나게 하는 결정을 하는 것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이야기 한 것은 이 결정 자체에 대한 부분보다는 그 선택으로 인해 "짐"이라는 인물이 해결해야 하는 수 많은 문제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주선에 타고 있던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로라"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 이유에서부터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선택론과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론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영화는 이 많은 가치 판단에 대한 문제들을 영화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의 초반부에서 설정한 장르가 로맨스에 조금 더 가깝기 때문에 그 지점을 어렵게 풀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결국 당사자인 "오로라"가 이 상황을 알게 되고 "짐"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방향으로 극을 이끌고 나아갈 것이었다면 조금 더 세심하게 이 부분을 다루어 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05.


두 사람의 관계에 결정적인 상황을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바텐더 "아서"의 이야기는 또 다른 영화 <엑스 마키나>(2015)의 내용과도 연관지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로봇과 관련된 몇 가지 이슈 가운데 '시각 인식 패턴'과 관련된 부분은 인간과 달리 로봇에게는 어떤 장면에 관해 그것이 인간에게 피해가 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할 기술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합니다. 영화 속 "아서" 역시 결론적으로는 "짐"의 계획을 망가뜨리는 역할을 하지만 그것이 결코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아니, 반대로 그것이 비록 "짐"의 계획을 망가뜨리는 것이었다고 할 지 언정, 중립적 사고를 견지해야 할 안드로이드로서의 "아서"가 "오로라"라는 인물에게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짐"의 시선에서 더 오랫동안 설명되는 만큼 관객들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짐"이라고 여기면서 발생되는 맹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서의 행위를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짐의 시선에서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06.


저는 종종 영화 <인 타임>(2011)과 <잭 리처>(2012)를 언급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영화의 소재는 말할 것도 없이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시작부터 작품의 중반부까지는 너무도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인데 후반부에서 그 동안 쌓아 올린 노력들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마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입니다. 이 영화 <패신저스> 역시 거의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욱 크고 말이죠. 영화의 후반부에서 우주에 홀로 떨어진 "짐"을 구하기 위해 "오로라"가 우주선 밖으로 나가 그의 잘려진 연결선을 극적으로 잡아내는 모습. 그 장면에서 영화 <마션>(2015)의 마지막 귀환 장면이 떠오르고 만 것. 그것만으로도 저는 이 영화를 "오로라"가 사실을 알아차린 시점에서 끝내고 싶을 정도의 아쉬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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