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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an 15. 2017

#096. 얼라이드

계속해서 아쉬움을 남기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01.


영화를 너무도 사랑해서 어렸을 때부터 영화가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았다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고등학교 시절부터 8mm 카메라로 단편 영화를 촬영하기 시작했고,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에서는 영화학을 전공하기도 했으니 그는 평생을 영화를 위해 살아 온 셈입니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로 조금씩 유명해지기 시작했지만, 실질적으로 그의 전성기는 <포레스트 검프>(1994), <콘택트>(1997), <캐스트 어웨이>(2000)로 이어지는 1990년대 후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경로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대의 영화 산업에 디지털 필름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친분이 있었던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등의 감독들과 달리 - 그들은 디지털 필름으로의 전환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 이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물이었죠. 그의 필모그래프를 살펴 보면 <캐스트 어웨이>의 메가폰을 잡은 이후에는 직접 연출을 맡은 작품보다는 제작에 더욱 몰두하는 경향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그의 그런 성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연출에 직접적인 욕심을 내는 것은 반갑기도 합니다.


02.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연출보다 제작에 힘을 쏟기 시작했던 시기와 그의 연출작들이 큰 반향을 얻지 못했던 시기가 겹친다는 점에 있습니다. <베오울프>(2007), <크리스마스 캐롤>(2009), <플라이트>(2012), 그리고 최근에 연출을 맡았던 <하늘을 걷는 남자>(2015)까지 모든 작품들이 과거의 작품들에 비해 아쉬운 모습을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일각에서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하늘의 걷는 남자>에서 다시 한 번 기대를 해 볼만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죠. 저도 넘버링 무비의 지난 글, <하늘을 걷는 남자> 편에서 그의 작품들이 '누군가의 삶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이야기꾼'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역시 과거에 비하면 아쉬운 부분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03.


그리고 이 영화 <얼라이드> 역시 지금 감독이 갖고 있는 그런 일련의 문제에서 크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자체가 그리 나쁘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독이 자신의 과거를 뛰어넘지는 못한 듯한 그런 느낌. 사실 <얼라이드>라는 영화 단편,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저는 상당히 괜찮은 작품에 속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종류의 영화가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빠지지 않고 모두 틀을 형성하고 있고,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도 나쁘지 않습니다. 극을 이끌고 나가는 "브레드 피트", "마리옹 꼬띠아르" 두 배우의 연기는 물론 말할 것도 없죠. 그런데 무언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는 그 부분을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시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요?


04.


기본적으로 영화는 자신의 러닝타임을 이끌고 갈 주연 배우(타이틀 롤, Title-role)을 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화 뿐만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죠. 그런데 영화는 다른 장르의 작품들보다 조금 더 제한적입니다. 주연 배우를 선택하는 것에서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가 그 인물들 가운데 어떤 캐릭터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 것인지 정해야 하죠. 이 시점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영화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게 됩니다. 감독의 의도에 따라 편집된 장면은 관객들에게 조금도 노출이 되지 않는 것이 영화라는 콘텐츠이며, 적어도 러닝타임동안 관객들에게는 어떤 가치 판단을 내릴 여유도 주어지지 않기 떄문입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최근 개봉했던 <라라랜드>처럼 양 쪽 주인공 모두의 입장을 보여주고 설명해가며 극을 진행시키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이 영화 <얼라이드>처럼 하나의 캐릭터 시선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품이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시선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맥스"(브래드 피트 역)라고 할 수 있죠.


05.


사실 이 영화에서 극적인 전환을 맞이하는 캐릭터는 "맥스"가 아니라 "마리안"(마리옹 꼬띠아르 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자 주인공에게 마음을 먼저 빼앗기는 캐릭터도 그녀이며, 자신의 어떤 선택을 제 3자에 의해 종용당함에 따라 실질적으로 바뀌는 것 또한 그녀이며, 일국의 스파이에서 누군가의 피앙세로, 또 누군가의 어머니로, 지속적으로 역할이 변경되고 있는 것 또한 "마리안"이라는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철저히 극의 뒷편으로 가려놓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래야 극의 마지막에서 반전이라는 카드를 꺼내들 수 있기 때문. 실제로 영화의 엔딩에서 그녀가 자신의 딸을 향해 독백을 내뱉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마리안"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유일한 장면이며, 왜 그녀가 "맥스"를 배신할 수 밖에 없었는 지 알려줍니다. 영화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가장 입체적인 인물을 극의 마지막에서야 드러내고 말았으니 영화는 생각보다 단순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반전이라는 카드 역시 그리 큰 충격을 줄 만하지는 않았죠.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흥미롭기는 하나, 핵심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06.


이런 작품 내적인 요소들이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영화를 홍보하는 방향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내부 사정까지 전부 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아마도 이 영화의 컨셉은 두 남녀 주인공의 극적인 사랑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트레일러에서 주요 장면으로 선정된 부분들만 보아도 그렇고, 메인 포스터에 자리 잡은 "키스해줘요, 그들이 우리를 보고 있어요"만 해도 그렇죠. 문제는 이 영화의 핵심 요소가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자리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의 초반부에서 상당히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마치 꼭 지금 당장 만나지 않으면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말이죠. 작품 속에서 어떤 소재가 초반부에 급하게 이용된다는 것은 그 소재가 핵심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후반부에서 이 요소가 이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작품의 초반부에서 드러내는 것이죠. 이 영화의 핵심 소재는 '의심'과 '불신'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의심'과 '불신'이라는 핵심 요소가 두 사람의 '사랑'이라는 부차적인 요소 위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이죠.


You love me ?


07.


이렇게까지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결국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부분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아내 "마리안"에 대한 의심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맥스"가 그녀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피아노를 쳐보라고 강압적이고 고압적인 모습을 보였던 장면. 제게 그 모습은 "맥스" 자신이 독일군 장교로부터 스파이인지 아닌지 시험당할 때 그 장교로부터 느꼈던 비릿한 미소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불신의 시대. 그런 시대를 살아가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과 그 의심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저는 두 사람이 함께 무사히 그 곳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티끌만한 의심이라도 그 의심이 자라난 뒤에 해소된 것과 애초에 없었던 것의 차이가 결코 같을 수는 없을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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