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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Feb 03. 2017

#097. 라이언

공감할 수 없어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다.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01.


어떤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까요? 이 영화 <라이언>을 보고나서 이 물음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어떤 영화가 공감이 되어서 감동적이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저 문장의 '공감'이라는 단어가 항상 동일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게 이 영화는 분명히 감정적으로 공감되는 작품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의 정서와 관련된 전체적인 분위기(Atmosphere)였지, "사루"(데브 파텔 역)라고 불리는 인물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영화에는 어떤 인물에 '공감'하게 되는 경우 또한 존재합니다. 저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원데이>(2011)의 남자 주인공이었던 "덱스터"의 상실감이라던가,  <뷰티 인사이드>의 "우진"의 설렘과 같은 것들이 그에 해당됩니다. 이 경우엔 삶의 어떤 경험이 공감에 관여하게 되는 경우라고 해야겠네요. 물론 직접적으로 동일한 경험은 존재하지 않지만 <대니쉬 걸>(2015)의 "베게너"가 겪게 되는 감정을 공감하게 되는 경우 역시 존재합니다. 또 다른 경험칙을 영화 속 인물에 투영하여 동질감을 느끼는 공감의 영역이죠. 미묘한 '공감'의 차이를 설명하다 보니 조금 복잡해져 버렸습니다만, 이 영화 <라이언>처럼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감히 추측조차 할 수 없는 공감의 영역 역시 존재합니다. 슬프게도, 세상에는 오롯이 공감하기에 그의 경험이 너무나 먼 곳에 있는 상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공감하고 싶지만 감히 공감할 수 없는 순간들.


어디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이 한 마디가 영화의 시작이다.


02.


영화는 지난 2012년 실제로 있었던 한 인도 청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을 꾸며나갑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그 동안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아보였습니다. 특히 이 작품처럼 결말의 내용 자체가 관객들의 감정을 좌우할 수 있는 실화 작품의 경우에는 크게 무리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존의 공식을 따르더라도 기본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죠. 때문에 이 영화의 초반부 연출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어린 "사루"(써니 파와르 역)가 홀로 캘거타에 떨어져 이름 모를 여자를 따라가게 되는 장면까지 약 20여분 이상을 최소한의 대화로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대단한 흡인력을 보여줍니다. 물론 여기에는 어린 "사루" 역을 맡은 써니 파와르라는 아역 배우의 대단한 연기도 한 몫을 하지만, 다른 포장 없이 이야기를 이야기로만 전달하겠다는 듯 보이는 감독의 뚝심이 큰 힘이 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도 이 영화 <라이언>은 관객의 감정을 극 중의 대사로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오롯이 "사루"의 행동을 관찰하기만 하는 듯한 장면을 몇 번 더 보여줍니다.


03.


영화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설명' 혹은 '정보'(Information)는 영화의 감정과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제한적인 것이 효과적이다라는 것이 제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 중 하나입니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개봉한 <더 킹>(2016)의 "박태수"가 읊어주는 나래이션은 과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 <라이언>에서도 구절마다 조목 조목 영화가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었거나, 인물들의 대화(Dialogue)나 지문을 통해 정보가 제공되었다면 관객들은 2시간의 러닝타임동안 인물의 행동을 따라가는 그 여정을 끝까지 즐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영화의 연출에서도 유사한 방향성을 갖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떨어지게 된 인물의 이야기 사이에 반대편에서 그를 기다리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삽입되기 마련인데, 영화는 시종일관 "사루"라는 인물의 뒤만 비춰줍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사루"가 자신의 원래 가족들의 환영을 보기 시작하면서 형과 어머니의 모습이 잠시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는 영화의 해석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루"라는 인물이 심리적으로 그 곳에 몰입하고 있다는 설정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자식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04.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 <라이언>이 "사루"라는 인물의 이야기만 보여주고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이 부분 역시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만, 영화는 "사루"라는 인물을 통해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사실적으로 표현, 전달하는데도 아쉬움을 남기지 않습니다. 형인 "구뚜"(아비쉑 바라트 역)와의 관계는 물론, 자신을 낳아준 가족과의 관계, 양부모님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주변 인물들의 감정적인 요소들을 잘 표현하고 있죠. 앞서 설명했던, "사루"라는 인물 자체에는 공감할 수 없지만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자친구인 "루시"(루니 마라 역)를 통해 "사루"가 갖고 있던 복잡한 감정들이 조금 더 표현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욕심도 있기는 합니다. 그 시기에 그의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던 인물은 "루시"가 유일했던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녀는 그의 곁에서 삶을 지탱해주던 한 축이었다.


05.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가 전환되는 시점이 너무 급하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구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사루"가 실종 어린이가 된 뒤 어른이 될 때까지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전반부와 어른이 된 "사루"가 자신의 과거를 더듬어가며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향하게 되는 후반부로 말이죠. 그런데 이 전환의 시점에서부터 "사루"가 그 과거에 집착하게 되는 과정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 나름대로는 철저한 계산에 의해, 혹은 실제의 인터뷰에 따라, 학교 모임에서 추억 속의 음식을 맛보게 된다는 설정을 전환점으로 두 구간의 전환을 이루어내고 있지만, 다소 맥락이 끊어진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전반부와 후반부 각각의 이야기는 거의 완벽하게 구성되고 있지만, 그 연결고리가 약한 느낌.


06.


이제 곧 열리는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작품은 작품상을 포함해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수상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상업 장편 영화로는 거의 첫 작품을 내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가스 데이비스" 감독의 연출력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앞으로의 행보를 조금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준비 중인 다음 작품 역시 <메리 막달렌>이라는 타이틀의 드라마 장르인 것을 보면 이쪽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 글의 처음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그와 동일한 이유로 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감정을 터뜨릴 수 없었습니다만, 엔딩크레딧에 등장하는 그의 진짜 양어머니의 실제 모습에는 조금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게 아마 제가 이 영화의 "사루"에게는 공감하지 못헀지만, 작품의 정서에는 공감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25년이 넘도록 가족을 찾지 못한 그의 마음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런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그 마음은 조금 알 것도 같기에 말입니다. 아직 누군가를 길러본 적은 없지만, 그런 사랑을 받았던 아들이었기 때문에 말이죠.


그 분이 나타난다고 해서 엄마의 의미가 변하는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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