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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Feb 16. 2017

#098. 그레이트 월

무시하지 못할 중국자본의 힘, 그러나 큰 아쉬움.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01.


특정 감독이나 배우에게 일련의 동일한 기대감을 갖는 것이 항상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특정 지점에서 마음을 빼앗겨 좋아하게 된 이에게 그의 강점만을 바라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가령, "휘성"이라는 가수에게서는 '안되나요'와 같은 가슴 절절한 이별 노래를, "존 카니"라는 감독에게서는 <원스>(2006), <비긴 어게인>(2013)와 같이 가슴이 일렁이는 음악 영화를 다음 작품에서도 기대하게 되는 것이죠. 반대로,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원래 모습을 탈피하는 것에 큰 욕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늘 해 왔던 그런 모습이 아닌, 다양한 분야, 더 많은 장르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또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중국의 대표 감독으로 잘 알려진 "장예모"(장이머우, Zhang Yimou, 이하 장예모) 감독이 이번 작품 <그레이트 월>을 연출한 것은 사실 의외의 모습처럼 보이면서도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10여 년 전, "이연걸", "양조위"와 함께한 <영웅>(2002)을 통해, 또 <연인>(2004), <황후화>(2006) 등의 스케일이 큰 작품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기는 헀으나, 그래도 "장예모"라는 감독에게 기대하고 싶은 것은 <책상 서랍 속의 동화>(1999), <집으로 가는 길>(1999), <천리주단기>(2005), <산사나무 아래>(2010), <5일의 마중>(2014)으로 이어지는 서사 속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02.


이 영화 <그레이트 월>에 쏟아진 총 제작비는 현재 약 1억 5000만 달러(약 1700억)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북미 최고의 제작사 중 하나인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을 맡았고, '유니버설픽쳐스'가 배급을 담당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 스케일을 짐작할 만 하죠. 실제로 제작 단계 초기의 북미의 기사들을 살펴보면, 애초부터 이 작품은 중국 국가 주도 아래 계획적으로 제작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쏟아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의 아시아 시장 TV 시리즈 제작사로 설립되어 있던 자회사 '레전더리 이스트(Legendary East)'를 중국 굴지의 거대 그룹 '완다'가 인수하면서 이 영화 <그레이트 월>의 제작 논의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중국 영화 산업 시장이 크게 위축되고 흔들리면서, 내부적으로 기술적인 부분, 그리고 투자 촉진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고 하죠. 어쨌거나 진위 여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금액적인 부분이나, 프로젝트에 개입되어 있는 회사들의 규모, "맷 데이먼"(윌리엄 역)이라는 배우의 무게만 보더라도 "장예모" 감독이 이 작품에 뛰어든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규모 면에 있어 대단한 모습인 것은 확실하다.


03.


영화는 전체적으로 이런 장르의 작품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들을 '어느 정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이 좋아한다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허구들이 적절히 혼재하고 있고, 기승전결에 따른 드라마의 구조적인 틀도 세워져 있으며, 수 많은 등장 인물들 가운데 특징적인 인물들을 선별하여 개인의 선택과 고뇌, 한 인물의 성장, 결정적인 역할은 아니지만 작품의 윤활유 역할을 맡게 된 애틋함까지. 1,200여 명의 엑스트라가 활용되었다는 전투 신이나, 작품의 스케일은 말할 것도 없고, 병사들의 화려한 의상과 색감은 마치 <황후화>의 그것을 보는 듯 하기까지 합니다. 문제는 앞서 강조했던 네 글자. '어느 정도'에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 화려한 외형에 가려져 있을 뿐,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급하고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특히 "경첨"(린 메이 역)을 총사령관으로 만들기 위해 연출되는 대장의 죽음과 관련된 장면은 이게 정말 이 작품의 당위성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는 지 의문이 들 정도였죠. 물론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에 반(反)하지 않기 위해 의도되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이전의 작품들에서 적절한 호흡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던 "장예모" 감독이기 때문이지, 결코 작품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04.


작품 속에서 주인공인 "윌리엄"이 소비되는 형식 역시 그리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중국의 시각에서 외지인인 "윌리엄"과 "페로"(페드로 파스칼 역)는 그들의 이야기 바깥에서 신비한 동양 문화를 전달해야 하는 어떤 사명감과 같은 것을 놓지 못합니다. "메이"를 중심으로 한 중국 측 인물들이 두 사람은 물론 "발라드"(윌렘 대포 역)까지 돌려보내려고 하지 않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이는 동양의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발현자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깊숙히 파고들면, 결국 영화는 타지에서 온 인물들과 외계에서 온 괴물(타오-타이) 간의 대결로도 압축해 볼 수 있죠. 이와 같은 설정을 통해 <그레이트 월>이라는 작품이 얻고자 하는 것이, 북미를 비롯한 월드 와이드 개봉 시 동양 문화에 대한 신비감인지, 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만약 이 작품이 '미국식 영웅주의'라고도 불리는, 과거 헐리우드 전쟁물들이 보여주었던 특정 문화의 우수성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면, 구조적으로 큰 문제가 있어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역할이 조금 달라졌어야 하는 게 아닐까?


05.


개인적으로는 "메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 조금 더 필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서 괴생명체와의 전투를 통해 변화를 느끼게 되는 입체적인 인물은 역시 주인공이지만, 그를 변화시키는 존재는 바로 "메이" 총 사령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독은 "메이"라는 인물을 또 하나의 독립적인 입체적 인물로 그려내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스승이자, 전 사령관의 죽음을 통해 성장하고, 자신의 뒤에서 죽어가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며 "윌리엄"이라는 캐릭터는 보여줄 수 없었던 개인의 성장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거죠. 물론 지금의 "메이"가 보여주는 모습도 의존성을 탈피한 여성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이 두 가지 모두를 다루기에는, 앞서 이야기 했듯 이 작품 자체의 서사적인 측면이 기본적으로 너무 약했다는 것. 때문에 두 가지가 함께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키지는 못한 채, 현상만을 보여주는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과 비견해 볼 만 합니다. 단순히 괴생명체가 나온다는 측면이 아니라, 다양한 입체적 캐릭터를 잘 살려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말이죠.


06.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데이터를 살펴 보면, 한국 영화 중 제작비가 가장 높았던 작품은 약 450억 정도가 든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이 작품의 1/4 수준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작품의 스케일이나 투자비가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건 아니지만, 이번 영화 <그레이트 월>은 분명히 중국 영화 산업의 큰 강점이나 앞으로 성장에서 필요할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현재 국내 시장에 진입한 국내 배급사들의 시장 진입 형태와 비교해 보았을 때도 분명히 그 방식에 있어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에, 앞으로 중국 영화 시장의 지각 변동은 산업 자체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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