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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Feb 25. 2017

#100. 싱글 라이더

그가 찾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01.


우리는 타인을 이미지로 기억해 둔다고 합니다. 그 이미지가 단기적으로는 개인에 대한 호감도를 결정하고, 장기적으로는 애착심을 형성한다고 하죠. 대부분의 경우 한 번 형성된 이미지는 크게 바뀌기 어렵다고 합니다.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는 것을 경험하고 그 대상으로부터 자신이 처음 형성해 둔 이미지와 유사한 방향의 가치관을 이야기 듣게 되면, 그 이미지는 강화의 과정을 통해 굳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강화된 이미지를 토대로 그 사람의 다른 부분까지 모두 잘 알고 있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발생합니다. A라는 과거 시점에 어떤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B 시점인 지금까지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C라는 지점에서의 행동 양식이 특정했기 때문에 D라는 다른 지점의 행동마저도 동일할 것이라고 추측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이에 대한 특정한 정보를 더 수집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금 더 편한 방법으로 자의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일 뿐이죠. 영화 <싱글라이더>는 삶의 가장 힘든 시기에 내몰린 “강재훈”(이병헌 역)이라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독선적이고 유약한지, 또 일방적인 추측에 의한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단, 이 글에서는 영화의 종반에 등장하는 결말과 관련된 부분을 최대한 배제한 채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02.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위기는 주인공이 다니던 증권회사의 부도로 인한 개인의 몰락입니다. 회사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지점장 자리에 있던 “강재훈”은 이전에 누리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큰 자책감과 수치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공고할 때는 자신감에 넘치다가 위기 앞에 한없이 유약해지는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물론 위에서 설명한 사건과 그의 성향이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등장하는 어떤 사실의 근거로 작용하기는 합니다만, 실질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점이 되는 위기는 “재훈”이 가부장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가정을 아내인 “수진”(공효진 역)에게만 미루어두고 괄시했던 부분입니다. 실제로는 그는 아내와 아들을 호주로 보내고 난 뒤에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의 삶에 대해 조금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고, 처음에 “수진”이 호주로 가기 싫은 내색을 하자 아들뿐만 아니라 너도 영어를 조금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툭 하고 던집니다. 결국 두 사람이 호주로 이민을 가게 된 것은 겉으로 아들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라고 포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마치 자신의 뜻대로만 따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 – 혹은 강요 – 했던 “재훈”의 독단적인 결정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모든 일의 시작은 그의 몰락이지만, 실제로는 더 큰 문제가 있다.


03.


만약 회사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재훈” 역시 떳떳한 아버지로서, 외국에서 편하게 지내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통칭 ‘기러기 아빠’라는 타이틀을 견뎌내는 상황이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졌을 겁니다. 두 사람이 호주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 동안 그래왔듯이 별 참견 없이, 또한 별 문제 없이 각자의 삶을 살아갔겠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진”에게도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주일 늦게 한국에 오겠다는 문자를 받은 “재훈”의 반응을 미루어 보면, 그 동안 일상 생활에 문제가 없었기에 그가 특별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뿐, 마음 속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불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의 발단은 “재훈”과 “수진” 두 사람 사이의 단절된 대화와 불확실한 추측들로 점철된 시간이었던 것이죠. 미국과 호주 가운데 조금이라도 시차가 적은 호주를 선택했던 “재훈”의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작품 속에 강하게 묻어 있는 이러한 설정들은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꼭 부부 사이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 속에는 직접 물어보기 민망해서, 혹은 그 정도 예측하는 건 예의라서, 이런 걸 물어봐도 될 지 판단하기 어려워서 등의 온갖 이유들로 타인의 행동을 추측하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04.


그런 “재훈”이 한국을 떠나 가족이 살고 있는 호주로 향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삶의 코너에 몰려 있던 “재훈”이 그런 불안한 상태에서 어떤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향했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동안 홀로 살면서 누구도 채워줄 수 없었던 일종의 외로움이 그를 움직이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그가 아내와 아들이 살고 있는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목격하게 된 것이 옆 집 남자 “크리스”(잭 캠벨 역)와 함께 마리화나를 나눠 피우며 해맑게 웃고 있던 “수진”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가벼운 의문 정도로 남았던 아내의 문자 메시지 – 일주일 늦게 귀국하겠다던 내용 – 가 확실한 의심으로 변질되면서 그는 지난 2년 동안 호주에서 있었을 아내의 삶에 대한 모든 부분을 다시 한 번 추측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집안을 살펴 본 뒤, “지나”(안소희 역)와의 대화에서 오케스트라 단원 지원과 이민에 대한 관계성에 대해 확신을 가진 뒤에는 그 의심이 더욱 커지게 됩니다.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의심만 가진 채 계속해서 주위를 맴도는 이유는 자신의 의심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만약 그 심증이 현실이 된다고 해도 이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05.


때문에 “크리스”의 아내가 6년 째 입원해 있는 병실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은 그의 복잡한 심리를 어느 정도 정리하도록 도와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녀를 만나러 병실로 뛰어 들어갔을 때, 그는 아마도 그녀가 “크리스”와 “수진”이 관계를 모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려서 이 부정한 행위를 막은 뒤, “수진”을 되찾아 와야겠다는 생각. 하지만 그녀는 의외의 대답을 그에게 들려줍니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그녀와 달리 팔다리가 멀쩡한 그이지만, 어쩌면 그 이야기는 “재훈”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과도 다르지가 않아 보입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지난 2년 동안 가족을 방치해 둔 것이나 다름없었던 그가 6년 동안 병상 위에만 있었던 그녀와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요? 영화의 마지막에서 처음에 아들이 보내 주었던 동영상 속 장소로 홀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바로 그런 지점의 아쉬움과 회한 같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나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조금 더 입체적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06.


이 작품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인물은 분명히 “재훈”입니다. 그래서 작품의 방향이 뚜렷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지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단순히 결말의 어떤 변형을 위해서만 이용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모든 인물의 이야기를 켜켜이 쌓아 올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나”라는 캐릭터가 조금 더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면 더 풍부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영화의 마지막 반전과 관련된 이야기는 함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먼저 알게 되는 순간 이 영화의 호흡은 눈에 띄게 흐려질 것이고,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그 결론에만 맞춘 해석을 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까지는 아닐 지 모르지만 그래도 동류의 작품들이 많았던 최근 한국 영화들 속에서 의외의 신선함을 줄 수 있었던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07.


사람이 사람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회를 이루며 그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이유는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모두 받아들인 현자와 같은 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겠죠.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도 짜증이 날 것만 같아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는 마치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인자한 표정만 지을 테니까 말이죠.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분명히 불편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랜 세월을 이렇게 함께 부딪히며 살아가는 건, 결국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가치를 이해하고 양보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무형의 의미들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삶의 마지막 장면에, “재훈”이라는 인물이 결국엔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기억하는 장소로 찾아가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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