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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Mar 01. 2017

#101. 눈길

연출과 별개로 감정을 움직이는 소재들이 있습니다.



**이 글은 브런치 팀의 시사회 초대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01.


작품에 따라 태생적으로 비교 대상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판타스틱 4>의 경우처럼 리메이크 작품들은 원작의 작품들과 비교당하게 되고, <배트맨> 시리즈처럼 동명의 타이틀로 감독과 출연진이 바뀌어 새로운 시리즈를 이어가게 될 경우에는 전작의 뛰어난 작품과 비교당하게 되기도 하죠. 드물긴 하지만, 동명의 인물을 소재로 하게 되는 전기물의 경우에도 전작과의 비교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스티브 잡스>(2015)와 <잡스>(2013)이 바로 그런 케이스라 할 수 있죠. 이번 작품 <눈길>은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태생적인 비교 대상을 안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1년 전에 개봉했던 "조정래" 감독의 작품 <귀향>입니다.


02.


두 작품 모두 일제강점기 시기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점은 명확히 다릅니다. "조정래" 감독은 영화 <귀향>을 통해 직설적으로 그 시절의 아픔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그 장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져 버릴 것처럼 잔인하고 비극적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사실적 표현'에 접근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 영화 <눈길>의 "이나정" 감독은 악몽과도 같은 현실 앞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마음을 열어가는 두 소녀의 모습을 통해 작품 속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두 주인공인 소녀 "종분"(김향기 역)과 "영애"(김새론 역)의 어린 시절 이야기, 신분에 대한 설정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영화 외적인 이유도 존재합니다. 이 작품 <눈길>은 2년 전 KBS 지상파 방송을 통해 2부작 드라마로 제작된 영상을 스크린으로 옮겨다 놓은 작품입니다. 아실만한 분들께서는 아실테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처음 기획 단계부터 드라마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거죠. 문제는 그 '드라마적인' 부분에 아쉬움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의도와 별개로 너무 자주 개입되는 현재의 이야기가 다소 과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03.


기본적으로 두 작품은 현실 속 인물의 회상을 통해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일종의 액자식 구성, 간접적 경험의 구성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위안부와 관련된 과거 사실이 직접적으로 누군가의 현재적 아픔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무거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비중적인 면에서 <귀향>에 비해 <눈길>은 조금 더 많은 부분을 현재의 시점에 기대고 있습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현재의 "종분"(김영옥 역)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물론, 옆 집에 살고 있는 "은수"(조수향 역)라는 아이의 내러티브까지. 영화는 일제 강점기 시절의 장면에서 표현하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장면들을 현재의 시점을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들을 보여줍니다. 현재의 "종분"이 "은수"라는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과거의 경험 - 그 험한 시간들을 누군가를 통해 이겨낼 수 있었던 - 에서 발화되는 것을 이용해 "은수"라는 아이가 겪는 심리적인 불안과 아픔을 "종분"에게 전이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물론, 어린 시절의 "종분"이 "영애"의 아픔까지 감싸주어야 할 정도로 밝고 꿋꿋한 이미지로 비추어지는 점이 심리적 불안을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탓이기도 합니다.


04.


또한, 현재 시점의 이야기는 "종분"이 먼저 세상을 떠난 "영애"를 놓아주지 못하는, 그 시절의 아픔을 함께 했음에도 홀로 살아남았다는 개인적인 자책을 표현해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의 "영애"의 존재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합니다. 그 전에 먼저, 이러한 플롯에서 세상을 먼저 떠난 존재의 령이 홀로 세상에 남게된 존재의 눈에 보인다는 설정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많은 작품들에서 이용되고 있는 것처럼, 어떤 계기를 통해 그 령을 놓아줄 수 있는 심리적 상태가 갖추어지면 관객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 극의 중심이 되는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죠. 이 작품의 엔딩에서도 정확히 동일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문제는 이 "영애"라는 인물이 령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의 표현 자체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 실제로 영화의 중반부에서 현재의 "종분"과 "영애"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영애"가 거울에 비친 모습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 특정 연출 방식이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면, 그 방식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는 철두철미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만듦새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05.


현재 시점의 이야기를 떠나 일제 강점기 시절의 장면들을 표현하는 장면에서도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은 계속됩니다. 기본적으로 영화 자체가 "종분"과 "영애" 두 사람의 이야기에만 집중되다 보니, 그 이외의 지점에 있는 인물들에 대한 내러티브가 매우 약한 편에 속합니다. 특히, "영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들이 위안소를 탈출하는 데 있어 일정 부분 역할을 해 주었던 일본 헌병에 대한 이야기. 그래도 나름대로 관객들이 유추해 볼 수 있도록 아버지에 관해서는 창씨 개명을 언급하고, 일본 헌병에 대해서는 그 인물이 기본적으로 심성이 유약한 인물로 표현하고 있지만, 역시 충분하지는 못합니다. 영화의 시선 자체가 "종분"과 "영애" 두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두 사람이 탈출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어야만 했지 않나 생각됩니다.


소공녀를 함께 읽으며 서로의 시간을 다독여주는 두 소녀.


06.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소녀가 그런 시간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한 채 마음을 나누어가는 장면들은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단순히 위안부로 끌려가 상상도 하지 못할 시간들을 견뎌야만 했던 두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라는 그 시절을 견뎌냈을 모든 선조들의 삶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언제나 커다란 위기 앞에서 하나의 힘을 보여주었던 민족의 삶이 그런 모습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떻게든 서로의 안부를 전하기 위해 벽을 사이에 두고 노크를 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07.


지난 해 관람했던 <귀향> 때와 동일하게 이번에도 역시 영화를 보고 돌아서며 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만,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할 수 밖에 없는 것에는 작품이 나아가는 지점에 있어 다소 깊게 몰입하지는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민감한 소재를 다루어야 하다 보니, 감독 스스로도 모든 장면에서 너무 많은 고민을 했던 게 악수가 되었던 것 같구요.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소회와는 별도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작품들이 하나 둘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 의미 전달과 감정적인 부분의 환기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어떤 안타까움 또한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이런 일들을 겪어야만 했던 사실적 안타까움도 분명히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발적인 관심을 기다리거나, 교육을 통한 사회적 인식을 형성할만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누군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말입니다.


너무 힘들면 말도 안 나오는 법이여..


08.


많은 영화들을 접하다 보면. 영화적인 해석들을 제쳐두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 <눈길> 역시 제게 그런 작품이었구요. 어쩌면 제 아무리 영화가 잘 만들어 졌어도 그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 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라는 장르가 제 아무리 극적인 연출이 가능한 장르라고 할지라도. 어찌 그 시간들의 시림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직도 그 분들께서는 여전히 눈길 위에 계시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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