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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Mar 02. 2017

#102. 해빙

얼음이 녹아도 해소되지 않는 많은 것들.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01.


작년 이 맘 때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소개한 2016년 라인업 중에 눈길을 끌었던 한국 작품이 3편 있었습니다. "박흥식" 감독의 작품으로 1940년대 경성 최고의 정가 명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해어화>,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더 화제를 끌었던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 옹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덕혜 옹주>, 그리고 바로 이 작품 <해빙>. 비록 <해어화>는 50만 명이 채 넘지 못했지만 지난 해 가장 좋았던 한국 영화로 기억될 만큼 좋은 작품이었고, <덕혜 옹주>는 560만 명이나 되는 관객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해빙>만큼은 이상하게 계속해서 개봉이 밀리는 모습이었고, 결국 지난해를 넘겨 올해 3월에야 스크린에 걸릴 수 있었죠. 개봉이 지연되는 이유에는 내부적으로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계획된 개봉 시기가 지연된 작품이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얻는 경우는 그리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 <해빙>이 앞으로 어떤 성적을 보여줄 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지만요.


[넘버링무비 #073. 해어화]


02.


이 영화는 작품 속 러닝타임의 길이와 상관없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A, B, C로 명칭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것은 영화 속 주인공인 "승훈"(조진웅 역)의 시점을 통해 극을 이끌어 가는 A 파트입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고, 그 다음에 등장하는 B, C 파트의 근거가 되어줄 이야기를 담고 있죠. 토막 살인이라는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한 남자의 불안한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갑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사건이 모두 끝나고 나면, 감독은 곧바로 파트 A를 분석하기 위한 부분, 파트 B를 준비합니다. 1시간이 넘는 시간을 통해 관객들이 이해했을 파트 A에 대한 설명을 첨가하는 것. B 파트에서는 주인공인 "승훈"의 시점이 아니라 그 동안 관찰되기만 했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승훈"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파트 A의 시점에서 보면 파트 B의 내용 또한 하나의 전복, 반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감독이 진짜 의도했던 반전의 내용은 마지막 파트 C에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파트 C의 내용까지 모두 보고 나면, 이 영화의 대부분의 시간이 이 파트 C 내용을 위해 전개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 느낌은 아마 두 가지로 나뉘게 될 겁니다. 역시 그랬군. 혹은 아 허무하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그래서 어땠다는 것인가요?


03.


이 영화의 마지막에 준비된 반전 혹은 스토리의 전복에 대해 관객들이 '와 놀라워.' 라고 느낄 법한 감정을 배제해 둔 것은 이 작품이 긴장감 유발을 위해 설정해 둔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작품의 엔딩까지 제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물론 저의 해석과 달리 이 작품의 마지막 요소가 큰 오락성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 작품 <해빙>이 표방하고 있는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를 위해 극의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형식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인 "승훈"과 "성근"(김대명 역) 사이의 의심과 의혹으로 인한 알력(軋轢)에서 발생되는 심리적 긴장감이 첫 번째, 원초적인 시각적/청각적 자극이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감각적 긴장감이 두 번째. -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나체로 걸려 있는 여성 인체 부분만 생각해 보더라도 이 작품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되어야 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주된 요소로 이용하고 있는 토막 살인이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무의식적 긴장감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두 번째와 세 번째에서 언급한 감각적 긴장감과 무의식적 긴장감은 기존의 스릴러에 비해 너무 빈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것이 술에 취한 "승훈"이 냉동 창고에서 머리를 발견하던 순간 봉투와 "승훈"이 스위칭되며 클로즈업 되던 부분인데, 그마저도 상당히 올드한 감이 있죠.


04.


가장 큰 문제는 그나마 파트 A에서 제 역할을 하던 두 사람의 알력에 의한 심리적 긴장감조차 파트 B로 넘어가 "승훈"의 시점에서 느껴졌던 그 긴장감들이 그의 일방적인 오해였다는 해명이 진행되면서 힘이 빠져버리고 맙니다. 스토리 역시 비슷합니다. 애초에 작품의 후반부에서 이야기를 두 번이나 뒤집을 연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보니, 극의 기본이 되는 스토리의 구조 자체가 헐거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 시점마다 하나의 장면이 제대로 마무리 되지 못하고 화면이 전환된다거나, "승훈"이라는 인물이 애초에 갖고 있던 성격이나 심리가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기가 애매해지는 것이죠. 저는 이 작품에서 감독이 '스릴러'라는 장르의 카타르시스가 관객을 속이는 반전과 그것을 해석하는 것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그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내고 있으니까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스릴러(Thriller)'라는 것은 그 단어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과정에서의 긴장감만으로도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 과정보다 결과에만 몰두하다보니 이야기는 갈수록 맥이 빠지고 허무해져 버리고 맙니다.


이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 또한 쉬이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05.


그나마 이 작품을 끝까지 이끌고 가는 것은 "조진웅" 배우의 연기력입니다. 그 동안 수 많은 한국 영화에서 빈약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주연 배우의 연기력으로 그 틈을 메우는 장면들을 봐 왔지만, 이번 작품은 "조진웅"이라는 배우가 거의 처음으로 다른 배우의 도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인상적입니다. 전작인 <사냥>(2016)의 아쉬움을 만회하는 것은 물론, 최근 단독 주연을 통해 존재감을 보여주고자 했던 <럭키>의 배우 "유해진" 씨나 <대배우>의 "오달수" 씨보다도 더 확실히 홀로서기에 성공한 느낌이 듭니다.


나는 함정에 빠졌어..


06.


용두사미. 결국 결말에서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적어도 "수정"(윤세아 역)의 죽음에 있어서만큼은 "승훈"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인데, 이 작품을 그렇게만 해석하고 넘어가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일단 그 모든 주변 인물들이 사전 공모도 없이 그 알리바이들을 모두 완벽하게 진술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고, "성근"의 첫 번째 아내인 필리핀 부인이 살아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 - 그렇다면 "정노인"(신구 역)과 "성근"의 잔혹한 모습이 이해되려면 일단 첫 번째 부인이 먼저 살해당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 이혼한 뒤에서 그 좋은 아파트와 차를 갖고 있던 집안의 남편 "승훈"이 겨우 사채 2억에 그렇게 몰락해 버렸다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07.


어떤 합의에 의해 명시해 놓은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만, 특히 한국 영화의 경우에는 각 배급사가 그 해의 사활을 걸고 시장에 내 놓는 자신있는 작품들은 특정 시기에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2014년, <군도> - <명량> -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 <해무> 가 서로 눈치를 보며 개봉일을 저울질 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죠.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 <해빙>이 지금 이 시점에 개봉을 맞이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됩니다. 한 방 제대로 터져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의 수 역시 이미 계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극의 과정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극의 마지막에 터뜨릴 무엇에만 몰입하는 것이 어떤 '한국형 스릴러'의 상징 혹은 특징처럼 남겨지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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