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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May 04. 2017

001. 발자국

Moon Kyung A X Jo Young Jun Project.




발자국.


수많은 발자국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다. 걸어가는 이의 뒤로 남겨지는 발자국은 탄생과 동시에 잊혀지는 존재와 같다. 누군가는 자신의 발자국 모양새를 한 번도 궁금해 해 본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의 삶은 스스로 뒤 돌아볼 여유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역시, 잊혀지는 발자국의 마음이 그의 나아가는 삶을 축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버려진 존재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발자국은 첫 숨이 트이는 자리에서 영원히 머무르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 존재가 처음 자리한 위치가 타자의 행위에 의해 이동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자신의 삶이 언제쯤 희미해질 것인지 가늠할 수 없는 것 역시 그들의 슬픔이다. 존재가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아무런 미동조차 할 수가 없다. 가벼운 바람에 위태로운 벚꽃 잎을 보면서도 부러워한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스스로의 마음이 아니었지만, 홀로 잠이 드는 것 또한 스스로의 마음으로는 할 수가 없는 것이 발자국의 숙명 같은 것이니까.


사람들이 신발을 신고 다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 일도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의 발자국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일과도 연관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다른 사람이 남기고간 발자국에 그 위를 걷던 누군가의 맨발이 정확히 맞닿을 때 그 사람의 일생이 작은 영사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흘러 들어온다고 생각해 본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렸을지도 모르는 아마도 오래 전 누군가가 그 기묘한 일을 실제로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발자국도 다른 사람의 기억 속으로 그렇게 흘러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는 짚을 꼬아 자신의발자국을 감추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물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지만, 그저 생겨난 그 자리에 누워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발자국을 위해서는 그런 변명이라도 하나 필요 한게 아닐까 싶었다. 가까운 미래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이의 삶에도 그 나름대로 찬란한 역사의 한 구절이 기억되는 법일 테니 말이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고 달빛이 드리우기 시작하면, 하나 둘씩 떠오르는 저 먼 은하수의 발자국을 쳐다보며 자신의 삶 또한 그리 빛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당장은 누군가의 걸음 뒤에 새겨진 흔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회화 : 문경아 / 글 : 조영준
작품 : Penguin / 72.7x72.7cm / Acrylic on canvas / 2017

관련 주소 : https://www.facebook.com/MoonKyu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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