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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Aug 02. 2017

002. 광대

Moon Kyung A X Jo Young Jun Project.



광대.


뉴욕 현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은 뉴욕에 머물렀던 열흘 가운데 가장 잊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많은 작품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5층에 자리하고 있었던 어느 광대의 모습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캔버스 위에 유화로 그려져 있던 그 작품은 그 동안 책에서 봐왔던 전형적인 삐에로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지만 어딘가 눈길을 끄는 매력이 있어 한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작품의 압도적인 크기에 빠져버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금방이라도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와 눈물을 떨어뜨릴 것만 같던 그의 모습은 활짝 웃고 있던 입 모양과 함께 묘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기에 그랬던 것도 같다. 한참을 그 앞에서 떠나지 못한 나는 실제로 그 작품과의 만남이 운명적인 것이라 느꼈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그 모습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날의 만남은 광대라는 대상에 대해 이전에 갖고 있었던 보편적 정의가 무너지는 날이었던 것도 같다.

처음 광대에 대한 이미지는 그들의 눈물이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현대인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과 거의 동일했다. 무대 위에 올라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광대의 모습이 타인의 시선에 스스로를 맞추어 갈 수 밖에 없는 이들의 모습과 동일 시 되는 것. 대부분이 부정적인 느낌이었다. 타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가꾸느라 모든 여력을 소진한 뒤에 홀로 남겨진 그림자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개인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사실 그 날 만났던 캔버스의 광대를 마주하고도 나는 이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삶은 정말로 슬프기만 한 걸까? 그렇다면 광대의 눈물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그 동안 우리가 광대의 웃음 뒤에 가려진 슬픔에 대해서만 말할 줄 알았지, 그 슬픔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광대들의 내면 깊숙한 슬픔의 근원에 대해서는 물으려고 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적인 외모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감정의 방향이 ‘슬픔’이라는 한 쪽 방향으로만 쏠리고 말았다. 실제로 그가 느끼는 진짜 감정이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인지, 슬픔 뒤에 감추어진 행복인지는 아무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어쩌면 무대 위에서 광대에게 주어진 역할이 슬픔과 행복 사이의 모호함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라 그는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광대의 모습은 그저 슬픔이었다. 물론, 슬픔 뒤에 감춰진 행복보다는 미소 뒤에 가려진 슬픔이 더욱 극적인 표현으로 다가오기는 한다. 실제로 행복하면서 슬퍼하는 사람보다는 슬프지만 그 슬픔을 참아내는 이의 정서가 더욱 공감대를 형성하기 좋을 테니 말이다. 이 또한 감정의 폭력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 광대의 감정이 이용되고 있다고.

한국에 돌아와서 수개월이 지난 뒤에, 미술관에 직접 문의 메일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작품이 있었던 5층은 전체가 촬영 제한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혹 가능하다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을 이미지 파일로라도 그 작품을 소장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 미술관 측이 보내온 메일에는 그들도 정확한 정보가 없이는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그 답장을 받은 순간에 나는 작품 옆에 표기되어 있던 작가와 작품명을 메모해두지 않은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캔버스 속 광대와의 인연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그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던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전시실 안에서 나는 마치 홀로 남겨진 것 같았고, 이전에 존재했던 그 어떤 순간들도 캔버스 앞에서 혼자였던 그 시간만큼 풍요로운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감정을 알 수 없는 광대와 마음을 나눈 이후로 나는 미술관을 좋아하게 되었고, 홀로 미술관에 가는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다음 글부터는 프로젝트의 사정으로 인해 짧은 글이 수록됩니다.



회화 : 문경아 / 글 : 조영준
작품 : Flower Deer / 130 x 97cm / acrylic on canvas / 2014

관련 주소 :

https://www.facebook.com/MoonKyungA

https://www.instagram.com/moonkyunga_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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