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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Aug 28. 2015

#001. One Day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




00.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이 영화 <원데이>의 밑도 끝도 없는 팬 중의 하나임을 밝힌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로맨스 작품보다 이 영화를 좋아하고, 누군가의 로맨스 추천 요구에 잠시의 고민도 없이 이 영화를 소개하여 줄 정도로 말이다. 물론 과거의 개인적 경험에 의한 감정적 연결이 그만큼 강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부분을 제쳐둔다고 해도 이 영화는 꽤 괜찮은 로맨스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추천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만족했던 것만 보아도 말이다.


01.


이 영화는 영국의 정통 로맨스 계보를 이어가는 영화가 아니다.  그런데 배경이 영국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영화 <원데이>를 생각하면 왠지 나도 모르게 동이 막 터 올 무렵의 영국을 떠올리게 된다. 왜 귀가 반쯤 덮이는 털모자를 쓰고, 그 모자와 같은 무늬의 장갑에 목까지 올라오는 집업 셔츠. 오래된 고딕체 건물들 사이로 옅은 안개를 헤치며 달리다가 투박하게 생긴 노란 신호등의 빨간 신호에 잠시 멈춰 하얀 김을 내뿜는 그런 아침의 영국. 글쎄 살아 본 적도 없고, 여행 한 번 다녀온 적이 없는 그런 곳이지만, 이 영화에는 막연한 그런 아침의 두근거림과 서늘함, 우울한 감정이 모두 담겨 있는 것만 같다.


02.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장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여겨 볼만한 것은 '심플함'이다. 친구와 연인 사이라는 어쩌면 통속적이고도 질척거릴법한 주제를 러닝타임 내내 끌고 가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장면들만을 충분히 뽑아내어 보여준다. 심지어 다른 멜로 영화에서는 한 번쯤은 보여줄 법했던 베드신조차도 과감하게 잘라가면서 이야기에 속도감을 주는데, 이 속도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03.


또 한 가지, 이 영화가 위에서 언급한 심플함을 유지할 수 있는 데는 영화가 전체적으로 매우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있다. 물론 영화 중반 부에 나오는 "덱스터"의 직업과 관련된 스토리는 다소 그렇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 장면 역시 영화의 전체 분위기에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들이 서로의 관계에서 뱉는 이야기나 행동들, 심지어 조크까지도 매우 차분하면서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이 모든 것이 BGM으로 등장하는 "Rachel Portman"의 "One Day"라는 음악의 정서와 매우 일치한다.


04.


영화는 두 메인 캐릭터인 "몰리"와 "덱스터" 사이에서 크게 세 가지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두 남녀 사이에 필요한 것과 스탠스에 대한 이야기", "자신이 원하는 삶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금을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것".


05.


후반부에 이르러 결혼을 하게 되기까지 두 사람은 서로를 끊임없이 끌어당김과 동시에 밀어내며 오랜 시간을 흘려보낸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서로라는 것을 두 사람 모두가 너무나 잘 알면서도 막상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한 발짝 물러나버리고 만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쿨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는 것. 한 쪽이 진심을 고할 때, 상대방이 입으론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몸은 한 발짝 뒤로 빼버리니 두 마음이 붙을 수가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06.


잠시 두 사람의 연애에서 벗어나, "몰리"와 "덱스터" 각각의 인생을 보면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목적에 따라 원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방법적으로 두 사람은 상대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고자 했던 게 바로 "덱스터"라는 인물이었다면, "몰리"는 자신의 앞에 놓인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쌓아가고자 했던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 두 부분이 가장 크게  대비되는 장면은 "몰리"와 "덱스터"의 통화 이후 교차되면 등장하는 "몰리"가 다니던 학교의 연극 신과, "덱스터"가 출연하는 쇼 프로그램 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두 사람이 삶에 대해 보이는 이질적인 태도는 서로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의 차이로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07.


그리고 엔딩과 관련해서(중요한 부분이기에 언급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의미를 되짚어 보자면, 결국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라는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은 과거 어느 시점에 할 수 없었던 것을 미래에 이루어 내기는 하지만, 너무나 결과론적인 시점에 제한된 결론일 뿐 그 과정 속에서 미래를 장담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비극적인 결과는 바꿀 수 없었을지언정, 첫 타이밍에 서로가 시작할 수 있었다면 그 오랜 시간을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었을 것을 그 망설임이 행복을 요절내고 만 것이다.


08.


뿐만 아니라,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 이야기는 "몰리"가 떠나고 난 뒤에 "덱스터"의 아버지가 말한 대로 어떤 대상과의 이별한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행동에 의해 그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고나 할까? 4번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언급하고 있는 모든 내용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영화가 결코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그치는 단순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09.


영화는 전체적으로 "몰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일종의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영화들이 차용하고 있는 일반적인 액자식 구성과는 조금 다르다. 기존의 액자식 구성의 경우 엔딩에서 느끼는 감정이 오프닝으로 연결되어 상동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과 반대로 이 작품은 전혀 반대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소리마저 지르게 되겠지. 지난 해 개봉했던 "데이빗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와 비슷한 구조라고 볼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감독이 관객들에게 "거 봐, 당신들 2시간 뒤 미래에 느낄 감정도 결코 알 수 없었지?"라며 충격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10.


사실 이 이야기는 9번에서 이야기 한대로 액자식 구성이 오프닝-엔딩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액자가 닫히고 난 다음에도 10여분의 스토리가 더 남아 있기 때문. 개인적으로는 이 액자식 구성이 끝나는 부분에서 영화가 닫히고 바로 두 사람이 언덕을 오르는 장면으로 넘어가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내가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물론, 지금 버전의 뒷 스토리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 장면들의 구구절절한 설명들 때문에 그 충격적인 장면에서 느낀 소름 돋던 감정을 급하게 정리해야만 했던 것 같다.


11.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 영화  중간중간에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뜨던 날짜는 결코 장식을 위해 서거나 시간적 흐름을 위해서 장치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사건들이 어떤 해의 "15th July"에 일어났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인데.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타이틀인 <One Day>의 의미가 "언젠가"라기 보다는 "어떤 날"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12.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이 내게 영화를 추천해 달라 부탁한다. 그리고 어떤 영화를 추천 하고 나면 누군가는 좋았다며 손가락을 치켜들고, 또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영화를 또 추천해달라고  이야기한다. 글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가 이 세상에 있을까? 그 어떤 음식도. 그 어떤 음악도. 심지어 많은 사람들에게 위인으로 추앙받던 인물들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영화 역시 그렇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했고, 또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겠지만. 이것은 단지 나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며 추억과 기억의 연결고리일 뿐이다. 당신도 나와 같이 이 영화를 좋아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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