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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10. 2015

#019. 함정

손가락을 깨물어 아프지 않은 영화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타이틀 : 함정
감독 : 권형진
출연 : 마동석, 조한선, 김민경, 지안
러닝타임 : 96분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날짜 : 2015.09.10.




01.

세상 어디에 고생을 하지 않고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있을 것이며, 관객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지 않은 영화가 있을까? 오랫동안 많은 영화를 만나 온 입장에서 이런 작품들을 볼 때마다 큰 아쉬움과 함께 애처로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영화가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지, 혹은 좋은 영화로 평가될 수 있는 지(물론 좋은 영화라는 것에 대한 평가는 기준에 따라 다를 것이다.)의 여부를 떠나 러닝 타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뭘 보여주고 싶어 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알 수가 없을 땐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영화관에 상영되는 작품을 거의 대부분 수용하고 있는 입장에서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런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결코 하고 싶지가 않다. 이 작품이 평가를 할 가치가 없다는  관점이라기보다는, 이런 기분으로는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02.

모든 영화가 일제히 개봉을 하는(요즘은 수요일에 개봉을 하는 작품들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목요일의 첫 작품으로 이 영화 <함정>을 고른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지난주 <앤트맨>과 다음 주 <사도> 사이에서 협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2주간 흥미로운 작품이 거의 없었다.  그중에서도 이번 주 개봉작 중에는 <영도>, <사랑이 이긴다>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전국에 이 영화가 걸린 스크린이 10개도 채 안 되었기 때문에.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이 두 영화를 제치고 대형 멀티플렉스의 한 관을 전세내고 있는 <함정>이라는 작품이 도대체 어떻길래 프로그래머들의 눈에 띄었을 지 말이다.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대형 멀티플렉스 관의 상영작들이 모두 공정한 절차를 거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영화가 제작되는 순간부터 홍보가 되는 모든 순간에서 한국 영화의 아픈 부분들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03.

먼저 이 영화는 홍보 과정에 있어 그 방향성을 잘못 설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부적으로 어떤 회의 결과가 도출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가 홍보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밀고 있는 두 단어는 'SNS'와 '실화'다. 실제로 이 두 단어는 지난 2-3년 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자주 쓰이기 시작한 용어이다. 특히 'SNS'의 경우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작품의 실제 영상에서도 이용되었으니 <러브, 로지>, <안녕 헤이즐>, <아메리칸 쉐프> 등의 영화 홍보 과정에서 이용된 바 있다. 그런데 이 작품 <함정>에서 도대체 'SNS'가 어떤 요소로 사용되고 있는 지 의문스럽다. 영화 초반 "소연"(김민경 역)이 "성철"(마동석 역)과 처음 연락하게 되는 계기가 네이버의 쪽지이기는 하나, 그 이후에는 핸드폰 한 번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데.. 단순히 요즘 관객들이 관심이 있어 보일 법한 용어에 편승하려는 느낌 밖에 받질 못하겠다.


04.

이 영화에 '실화'라는 용어를 가져다 쓰는 건 어떨까? 대부분의 언론 기사들을 통해 이 영화는 실제로 존재했던 범죄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라고 홍보되고 있다. 바로 문제는 여기, '모티브를 따 왔다는' 표현에 있다. 관객들은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야길 들으면 실제로 존재했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겨다 놓은 <살인의 추억>(2003), <아이들>(2011), <도가니>(2011)와 같은 작품들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작품 <함정>은 실제 사건에서부터 모티브(Motive), 그러니까 동기만을 가져왔을 뿐이지 위의 작품들과는 달리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사건을 특정할 수가 없는 작품이다. 이 부분 역시 앞서 설명한 'SNS'라는 단어와 함께 관객들의 기대감만을 단순히 호도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닐까?

 

05.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면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가장 봐줄만한 했던 장면은 영화의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전체에서 '이야기(Story)'가 살아 있는 장면은 그  곳뿐이었다. 나머지 장면들은 극을 절정으로 치닫게 하기 위한 장치로서 역할을 하거나, 관객들이 표면적인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 보여지는 자극적인 장면일 뿐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문성근', '추자현'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실종>(2008)이 잠시 떠 오른다. 그런데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이 작품은 <실종>의 아류작으로 밖에 보이지가 않는다. 두 영화 모두 작품의 무기로 자극적인 요소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존재하지만,  <실종>에서는 '문성근'의 연기력이 사이코패스라는 핵심을 그나마 잘 표현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두 작품을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06.

영화 <실종>과 비교하여 한 가지 더 짚어보자면, <실종>에서는 사이코패스를 연기했던 '문성근'에 비해 피해자였던 "현정"(추자현 역)과 "현아"(전세홍 역)는 평범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그녀들이 겪게 되는 극한적인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관객들이 전달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 <함정>은 너무나 노골적이고 비이성적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성철"(마동석 역)이 있는 섬으로 찾아 온 "소연"(김민경 역)은 모든 것을 알고 스와핑을 시도했던 여성일 뿐이다. 바로 옆 방에 아내가 있는데 "민희"(지안 역)와 몸을 섞는 "준식"(조한선 역)도 이해하기 힘들고, 그런 그를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대로 받아 들이는 "민희" 역시 상식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07.

백 번 양보해서 위의 상황들이 이해가 된다고 하자. 문제는 바로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상황이 끝나고 난 뒤 사이코패스임이 드러나는 "성철"과 달리, "소연"과 "준식"은 피해자로 돌변하기 시작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장면들만을 봐서는 두 사람이 피해자가 틀림없다. 그런데 "성철"에게 폭력적인 성관계를 당하고도 멀쩡히 돌아다니는 "소연"과 "성철"의 뒤만 따라다니는 "준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간극을 얼버무리기 위해 "소연"과 "준식"이 2년 전 겪었던 유산에 대한 트라우마를 시종일관 들이밀고 있지만 그저 우습기만 하다.


08.

만약 감독이 이 작품을 그나마 조금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면 "성철"과 "소연"이 처음 쪽지를 통해 어떤 약속(거래)을 했는 지에 대한 이야기로 사건의 당위성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둘이서 계속  이야기할 게 있다는 데 눈치로 밖에 알 수가 없다.) "민희"라는 인물에 대한 내러티브를 살렸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09.

그리고 베드신. 만약에 감독이 정말 자극적인 작품으로 관객들의 말초신경을 건드리고 싶었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네 사람이 벌이는 스와핑이라는 소재가 국내에서 생소할 뿐이지 영상적으로 표현되는 수준은 그저 평범할 뿐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님포마니악>(2014)이 국내에서는 제한 상영가를 받을 정도로 강도 높은 노출신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왜 작품으로서 인정을 받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이름값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님포마니악>이라는 작품은 외설을 논하기 전에 그 속에 너무나도 많은 가치관과 사상들이 이야기로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제한 상영가 :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위의 등급으로, 제한 상영가 전용 극장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현재 국내에는 제한 상영가 전용 극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10.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어떤 작품이든 그 속에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으면 관객들은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화려한 액션으로 이름 나 있는 유명 작품들 <본 시리즈>(2002), <킬 빌>(2003), 올해 초에 개봉했던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2015)만 해도 화려한 액션 뒤로 깊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 나마 이 작품 <함정>에서 꺼내 볼 수 있는 이야기는 마지막 "소연"의 회한을 바탕으로 현재의 위기나 어려움을 과거에서 찾는 것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11.

마지막으로 배우 "마동석"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할까 한다. 그가 영화를 시작하고 거쳐 온 작품도 벌써 40여 편이 훌쩍 넘었다. 어느 순간 그는 신 스틸러 중 한 명으로 괜찮은 조연 배우들 틈에 서 있었고, <노리개>(2013), <더 파이브>(2013)를 시작으로 주연으로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단독 주연을 맡은 작품들의 성적을 보아도 그렇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타이틀 롤을 맡아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가기엔 조금 아쉬운 배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그동안 주연을 맡아 온 작품들을 보면 모두 이번 작품 <함정>과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고, 비슷한 배역들이기에 "마동석"이라는 배우에게 주어지는 선택권이 그리 넓지는 않다는 것도 알겠지만 여러 가지로 아쉬운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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