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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10. 2015

#020. 셀마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Title : Selma
Director : Ava DuVernay
Main Cast : David Oyelowo
Running Time : 128 min
Release Date : 2015.07.23. (국내)


01.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많은 영화들은 반드시 한 가지 이슈에 직면하게 된다.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조금 비틀어내어 픽션의 영역에서 관객들의 즐거움을 만족시키는 방법이 하나. 있는 사실 그대로를 고증하듯이 표현해 내어 시대의 정신을 드러내는 방법이 또 하나. 이 두 가지 중 어떤 방향으로 극을 이끌어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작품의 정체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물론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픽션의 영역이기에 논픽션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 <셀마>는 분명히 후자의 영역에 놓여있는 작품이다.


02.

사실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과 관련된 주제는 다양한 작품에서 자주 다루어진 이야기 소재였다. 불과 50-60년 전의 이야기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아니 실제로 인종 차별 문제는 현재에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으며, <오스카 그랜의 어떤 하루>(2013)와 같은 작품에서는 가까운 시대의 흑인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 물론 그 중에서도 "마틴 루터 킹"이라는 인물에 대한 소재는 인종 차별을 논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 작품이 바로 그러한 연장선 상에 놓여 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앨런 파커" 감독의 <미시시피 버닝>이나 최근에 개봉했던 "리 다니엘스" 감독의 <버틀러>,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 등을 찾아 보기를 권한다.


03.

이 작품이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마틴 루터 킹"이라는 인물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역사적 인물에 대해 매몰되지 않는 거리에서 그 역시 역사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람이라는 것을 조명함과 동시에 평등 운동의 지도자적 위치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정치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신선한 느낌을 준다.


04.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의 타이틀이 <셀마>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포커스는 "마틴 루터 킹"이라는 인물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다. 이 영화를 "애쉬튼 커쳐"의 <잡스>처럼 어설픈 전기 형식으로 표현하지 않은 감독의 연출이 빛을 발하는 이유다. 그녀의 작품에서 "마틴 루터 킹"이란 단지 "셀마-몽고메리 행진"이라는 역사적 사실 속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의 인물일 뿐인 것이다. 감독은 이런 타이트한 시선을 통해 역사 속에 존재했던 하나의 영웅을 조명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함께 몸부림쳤던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05.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 <셀마>는 확실히 무게감이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다. 결코 자극적이지 않고 시종일관 차분한 가운데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통해 "에바 두버네이" 감독은 영화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논점을 단 한 번도 흐리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간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물론 이 기교없는 연출이 일부 관객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유발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의 이런 연출이 '더디게 보이더라도 역사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슬로건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06.

올해 오스카 주제곡 상을 거머쥔 "존 레전드"의 Glory를 배경으로 삼은, 고의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영화의 엔딩은 그 의도대로 어떤 가슴 뜨거움을 느끼게 한다. 보통의 경우에는 응축된 이야기가 터지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지만, 이 작품 <셀마>에서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러닝타임 속 이야기들을 반추하게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는 영화 초반부에서 한 여인의 투표권 등록이 기각당하는 장면이 너무나 인상깊었다. 혹시나 했던 부분이 역시나로 바뀌는 순간의 그 절망감이 온몸 그대로 쏟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07.

사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영화 외적으로 참 많이 생각했던 점이 하나 있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작품성과 오락성 중에 골라야 한다면 과연 영화는 어떤 부분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부분. 이 작품이 만약 <암살> 정도의 오락성을 갖고 있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이런 종류의 작품에 오락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스스로의 가치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드는 이 괜찮은 영화가 이렇게 또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아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08.

이 작품 <셀마>를 만들기 전에 "에바 두버네이" 감독은 이런 스케일의 영화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다루어 본 적도 없었거니와 이처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는 것. 하지만 그녀는 꽤 잘해 냈다. 엔딩을 통해 몽고메리까지의 행진을 끝낸 흑인들의 환호성 뒤로 중지를 펴들며 끝까지 자신들의 신념을 꺾지 못하는 백인들의 모습도 놓치지 않았으니 더욱 박수를 쳐주고 싶고 말이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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