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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un 06. 2021

서로를 함께 어루만지기까지.

#211. 단편영화 <가까이>


00.


주원(이주영 분)은 시각장애인 경민(최유송 분)의 활동보조인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그녀를 따라다니며 생활을 돕는다. 경민이 수영을 하는 동안은 레인의 끝이 어디인지 알려주기 위해 물 밖에 서서 테니스 공이 달리 막대로 머리를 쳐주는 식이다. 어두운 길을 함께 걸으며 길 위의 위험한 상황을 대신 알려주기도 하고, 뜨거운 물을 대신 부어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주원은 어디까지나 보조하는 사람인 셈이다. 경민이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일들이 조금 더 편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싹싹한 편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돕는 마음을 가진 주원이 경민은 마음에 드는 눈치다.


사실 주원이 누군가의 활동보조인을 자처하고 있는 건 경민이 생각하는 것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세상을 들여다 보기엔 지금 주원이 놓여있는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자친구 민규(김판겸 분)는 밤이 지나도록 끝이 나지 않는 아르바이트로 빚을 갚고 있고, 그녀에게도 그 빚을 대신해 갚을 만한 능력은 없다. 현실의 무게로 인해 현실 속의 또 다른 감정인 사랑이 짓눌리고 비켜서게 되는 상황. 주원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다. 사랑이 비켜난 자리에 피기 시작하는 외로움에 잡아 먹히지 않도록 민규와 자신 두 사람 모두를 구해내고 싶다.


배경헌 감독의 영화 <가까이>는 결핍을 가진 두 사람 주원과 경민의 세상을 연결시키며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대해 환기하는 작품이다. 경민이 안고 있는 시각 장애가 영화의 주요 모티브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가진 각각의 결핍이다. 경민의 시각 장애와 주원의 심리적 불안은 반대지점에서 서로의 결핍이자 어루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 존재한다. 다만, 영화의 처음에서부터 (그것이 행위에 어떤 마음이 존재했는지는 차치하고서) 경민의 장애를 돕는 주원과 달리 경민은 주원의 결핍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의 불균형이 이 영화의 불안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그 영화의 불안은 주원이 심리적 불안이 뒤틀린 행동으로 형상화 되며 직접적인 문제가 된다. 주원의 건강한 시력이 경민의 결핍을 채우고 있는 것과 달리 경민의 안정적인 (그렇게 보이는) 현실, 재정적인 상황이 주원의 결핍은 채우지 못했으니 말이다. 주원은 실제로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불균형이 자신에게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부정한 방법으로 그 균형을 찾고자 한다. 결국 주원의 그런 속내를 알아채게 된 경민은 그녀와의 관계를 포기하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의미적 결핍’을 잠깐 동안 경험하게 된다. 눈 앞의 이익을 위해 눈이 멀어버리게 된 주원과 의지하던 이에게 배신당한 경민의 심리적 불안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화해는 그래서 감동적이다. 안마사인 경민의 손을 통해 전달되는 용서의 마음은 어둡게 그을려 있던 주원의 눈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영화의 처음과 반대로, 이제는 경민이 주원의 활동보조인이 된 셈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람 인(人)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을 따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지막 두 사람의 모습처럼, 경민의 손은 주원의 마음을 오랫동안 어루만질 것이고, 눈물로 정화된 주원의 두 눈은 경민의 생활을 다시 돌볼 것이다.


‘그건 마치 너무 짧은 담요 같은 것이다. 발을 덮으려고 하면 머리가 드러나고, 머리를 덮으면 발이 삐져 나오고.’


영화의 처음에서 주원이 경민에게 읽어주던 책의 내용이다. 혼자서는 짧은 담요였지만, 두 사람의 담요를 이어 붙이고 나면 발도 머리도 춥지 않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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