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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un 07. 2021

어려운 단어, 관계와 거리.

#212. 단편영화 <밤 사이>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00.


은서(김성령 분)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대신 낮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독서실에 들러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학교에 일찍 들어가고 싶어서 검정고시는 이미 끝낸 상태다. 그러다 보니 또래를 만날 기회는 자연히 줄었다. 아니, 일부러 그런 환경을 만들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은서는 일부러 집에서 멀리 있는 독서실을 다니고,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는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실 옆자리에서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지원(이주영 분)을 만나게 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영화 <밤 사이>는 독서실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사람, 은서와 지원의 관계를 통해 관계를 맺는 법을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시절의 모습과 하나의 설익은 관계가 맺고 떨어지는 동안의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감독의 의도는 영화의 타이틀을 통해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밤 사이’라고 명명되어 있는 것과 달리 영문으로는 ‘Between Us’라고 표기되어 있는 점이 바로 그렇다. 굳이 하자면, ‘우리 사이’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영문 타이틀은, 국문 타이틀과 함께 ‘사이’를 공유함과 동시에 ‘우리’와 ‘밤’의 의미를 달리 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화 속 인물인 은서와 지원을 의미하며, ‘밤’은 극의 주요 사건이 발생하는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두 표기가 영화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관계였던 두 사람은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하며 관계의 두께를 키워나간다. 처음부터 가까워질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원이 자신을 처음 알아본 다음 날, 은서는 바로 독서실 총무에게 달려가 남은 날이 얼만지, 환불이 가능한지를 물어본다. 학교에서도 자신을 만났다고 말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는데, 아무래도 은서는 자신이 보통의 다른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사실에 대해 어떤 낮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자신이 쌓아둔 벽에도 불구하고 은서가 지원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아무래도 스스럼 없던 지원의 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은서가 허락한 사람은 지원 하나라는 사실이다.


지원도 마냥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사람은 아니다. 걸핏하면 자신에 대한 주변의 시선을 오해하기 (주로 나쁜 방향으로) 일쑤고,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에서 허용하지 않는 것들과 규칙에서 벗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런 지점의 성향들이 어쩌면, 처음에 은서의 벽을 허무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는 실패하게 되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은서와 지원이 관계를 시작하게 된 지점의 제약과 한계는 두 사람이 다시 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어떤 사건으로 두 사람이 다투게 되고 난 후에, 지원은 독서실의 남은 기간을 은서에게 양도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린다. 총무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은서는 지원의 집 앞에서 기다리면서까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하지만, 이제는 지원이 세워버린 벽 앞에서 그 마음이 접히고 만다. 먼저 다가갈 용기는 있었지만 제대로 머무르는 법을 알지 못했던 지원과 곁을 내어 주기는 했지만 평평한 마음을 내어주지는 못했던 은서. 두 사람은 이제 다시 멀어지고 말았지만, 다시 혼자가 된 은서는 지원이 남긴 독서실의 남은 기간을 양도받으며 그 마음을 품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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