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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DAY 01] 개막작 기자 회견

[기자 회견] 영화제 개막작 기자 회견 내용

by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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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인터뷰 내용 가운데 중요한 부분만 선별한 것으로 일부 작성자의 주관적 요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대한 현장의 질문과 답변을 살리고자 하였음을 밝힙니다.


장소 : 센텀시티 영화의 전당 중극장

일시 : 10월 5일 15:20

참석자 : 허문영 집행위원장, 하디 모하게흐 감독





Q1. 허문영 집행위원장 : 이 영화를 찍은 장소. 이 영화가 촬영된 지역은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이 장소는 그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속에 어떤 슬픔과 같은 감정이 담겨 있다고 느꼈습니다. 혹시 촬영을 하는 동안 장소에 담긴, 이 지역의 풍경에 담긴 특별한 감정 같은 것을 느끼셨는지요. 그렇다면 그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A1. 하디 모하게흐 감독 : 장소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장소는 신이 만든 아름다움 중 시각적으로 가장 잘 표현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는 그 풍경을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죠. 저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찍은 장소의 경치를 보면 역사적 아픔이 느껴지고 인간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그 지역에 가면 그런 슬픔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데요. 이는 표상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느껴지는 것입니다. 자연의 고통, 사람들의 느낌. 그런 것들이죠. 그렇다고 부정적인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실제로 그 지역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슬픔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면에서 어떤 밝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Q2. 허문영 집행위원장 : 지난 2015년에 <아야즈의 통곡>이라는 작품으로 이곳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습니다. 7년 뒤인 올해, 2022년에 또 방문하게 된 것인데요. 지난 방문 때 남아있는 인상적인 기억과 2022년 다시 방문하신 느낌/소회는 어떨까요?


A2. 하디 모하게흐 감독 :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기억과 추억은 중요한 것입니다. 과거에 머물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하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추억이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라는 의미를 깨닫고 나면 사람에게 추억이 굉장히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한국에 다시 와서 처음 느낀 것은 집에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당시 기억나는 첫 장면은 미스터 김(故김지석 선생님)과의 기억이고, 이제 2022년은 미스터 허(허문영 집행위원장)와의 만남으로 기억이 될 것 같은데요. 이 영화제가 단순한 페스티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깨끗한 영혼을 보여줄 수 있는 페스티벌이라는 것에 굉장히 기쁩니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따뜻한 느낌을 받았고, 아름다운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Q3. 허문영 집행위원장 : 영화 <바람의 향기>가 개막작으로 상영된 소감은 어떻습니까? 또 이란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은가요?


A3. 하디 모하게흐 감독 :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내 영화가 선정되었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아직도 작은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허문영 위원장님께 꼭 물어보고 싶은데요. (허문영 위원장의 대답 : 그냥 영화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정말 이란 시네마의 발전을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이란 영화 제작자들, 감독들에게 이 영화제의 존재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이 영화제가 예술 영화가 자유롭게 숨쉴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춰 주었거든요. 스토리텔링 영화만이 아니라 여러 측면의 작품들로 말이죠. 항상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란 영화 산업의 모든 사람들은 부산영화제를 좋아하고 존중하며, 언제나 참여하고 싶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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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허문영 집행위원장 : 이 영화를 구상하시게 된 계기와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A4. 하디 모하게흐 감독 : 이 영화의 제목은 영화의 정체성과도 같습니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나면 알 수 있게 될텐데요. 이 영화의 제목(원제 : Scent of wind)은 '아무것도 없는 땅'을 의미합니다. 아주 마른 땅을 의미하죠. 살아가는 일의 중요성은 그저 계속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주위의 어떤 사람이 굉장히 지쳐서 숨을 쉬지 않게 되더라도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나아가야만 합니다. 개인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말이죠. 아무 것도 없는,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서도 우리는 무엇이든 계속해 나가야 하죠. 때때로 우리는 멈추었다고도 생각하지만 실제로 삶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의 이름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저는 제가 이 영화를 창조했다기보다는 이 영화 옆에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화를 만드는 동안 굉장히 행복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신을 찬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기 보다는 그냥 이 영화를 제가 지나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5. 허문영 집행위원장 : 영화를 연출하는 동안 계획하지 않았는데 우연으로, 좋은 장면이 나왔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있을까요?


A5. 하디 모하게흐 감독 : 제가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그저 이 영화에 살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역시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도 그저 제 삶을 살아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촬영을 위해 계획도 하고 고민도 하며 다른 감독들이 하는 것들 전부를 저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는 평소에도 제가 좋은 사람으로 있으면 제게 오는 것들도 모두 좋은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이기적이고 저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제게 오는 아름다움들을 깨닫지 못하겠지요. 그래서 저는 항상 열려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 뿐이고, 제 운명이 그 세워진 계획 위에서 정해진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아마도 이슬람적인 사상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운명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 사는 것, 이런 것들을 말하는데요.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주 늙은 여인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그 여성 인물에 대해서 어떤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극중에서 잠깐 등장하는 인물이다.) 현장에서 이 인물에 대해 갑작스럽게 결정을 내려야만 했는데, 저는 그때 이 여성 분을 계속 살게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의 흐름과 극중 인물이 놓인 상황 때문이었죠. 제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저의 각본이 원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6. 현장 기자 : 극중에서 처음에 등장하는 전력부 직원이 수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장면을 보고 직원치고는 너무 열심히 일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몫을 넘어 선행까지 하는 것에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문화에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란에도 그런 것들이 있을까요?


A6. 하디 모하게흐 감독 : 네. 저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죠. 어떤 사람이라도 인간성이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할 것입니다. 영화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 대한 이야기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영화가 가진 보편성이 아닐까요?



Q7. 현장 기자 : 이 작품이 깃든 장소가 특별한 곳이라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민들은 직접 캐스팅했는지도 궁금합니다.


A7. 하디 모하게흐 감독 : 극중에 나오는 장소의 이름은 데흐다시트, 이란의 남서부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경제적 문제 때문에 이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많이 떠나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기도 하죠. 저 역시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장소도 저를 이해하고, 저도 그 지역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이야기에 대한 저만의 해석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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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8. 현장 기자 : 왜 직접 연기를 하기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감독은 극중에서 중요 인물로 직접 출연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애가 있는 주인공을 위해서는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한 물자가 빠르게 공급이 되기도 해야 하는데요. 그런 제도적인 문제를 제기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부분들도 고민을 하셨을까요?


Q8. 하디 모하게흐 감독 : 사회 문제와 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저는 많이 표현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회적, 정신적 장애와 같은 여러 장애에 대한 반응이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저와 이 영화의 주제였죠. 제가 주인공을 연기한 이유는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과 제가 직접하는 것 사이에 두 가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특수한 상황에 놓인 인물에 대한 제가 가진 이미지를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연기 하기 어려울 수 있고, 또 이런 유형의 연기는 오히려 전문 배우가 하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극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전하는 일이 어렵고, 특히 외면이 아닌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것을 디렉팅하는 것은 모두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화 속에는 침묵의 순간들이 많고, 관객들은 배우의 몸짓이나 행동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저만이 그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Q9. 현장 기자 : 영화의 첫 장면에서 할아버지가 바늘을 가져다 주지 않고 주인공이 가지러 올 때까지 기다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지역이 감독님의 고향이라고도 하시고 직접 연기하실 수 밖에 없다고도 하셨으니 영화 속에는 혹시 자전적 이야기도 들어있는 걸까요?


A9. 하디 모하게흐 감독 : 저는 인생이 한 순간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을 계속해서 추억하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불러낸 모든 기억들이 미래의 어떤 순간에 전달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하셨던 그 장면, 바늘을 꿰는 순간은 저에게는 사랑의 장면처럼 여겨집니다.

사랑은 늙지 않고 항상 프레쉬하게 유지됩니다. 사랑은 특히 나이가 든 사람들의 사랑이 더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것이 육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신으로부터만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노인이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장면입니다. 기억하시나요? 노인은 오직 바늘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바늘을 가져다 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되려 그 남자가 곁에 다가올 때까지 쳐다보지도 않죠. 오직 바늘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목표는 그저 바늘에 실을 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기 때문에 쳐다볼 수 없었던 거죠. 저는 하나에만 집중되는 온전한 사랑의 속성을 이 장면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장면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 관통하는 모든 이야기 속 용서나 다른 감정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는 느낌과 같은 형상화할 수 없는 것들이 제 기억으로부터 많이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전 언급했던 영화에서 죽은 늙은 여인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 앞에서 살고 존재했지만 갑자기 세상을 떠났던 존재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불려와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10. 하디 모하게흐 감독 : 마지막으로, 저는 제 인생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을 봤습니다. 받을 것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고, 많은 것을 나누어 주려는 사람들을 말이죠. 일반적으로 돌려 받지 못할 것을 가정하고 그럼에도 행동하는 일은 조금도 논리적이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그렇게 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더 많은 마음을 되돌려주고도 싶고요. 사람도 언젠가는 시들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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