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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ul 11. 2023

[BIFAN 23] 심판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 단편




**이 글은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나연(최하영 분)의 고발로 같은 반 학생인 건우(양범수 분)에 대한 학생자치재판이 열린다. 다른 학생들을 상대로 교내에서 담배를 판매하고 흡연까지 한 사실에 대한 처벌 논의가 그 안건. 심지어 그는 학생이 쉽게 구할 수 없는 부분을 이용해 두 배가 넘는 값을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분명 학생의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며 교내에서 금지된 행동에 대한 처벌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것은 건우를 고발한 나연이 이 자치재판의 검사로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아이들이 학교를 망친다고 생각한다며 정의로 가득 찬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믿고 있는 그의 잘못에 대한 처벌을 확정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몰래 가방을 뒤지기도 하고, 은밀히 뒤를 쫓아다니는 등 스스로가 정의롭지 못한 이중적 태도를 갖고 있는 점만 제외하면.


영화 <심판>은 동급생의 불법적인 행위를 자치재판에 올려 직접 심판하고자 하는 한 학생의 그릇된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절차로서의 정의와 수단, 목적으로서의 선의와 탐욕 사이에서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휩쓸리고 마는 인간의 모습은 이 작품이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간의 유약함이다. 어딘가 기시감이 들면서도 익숙해지지는 않는 종류의 위선적인 태도. 그 중심에 있는 나연이라는 인물이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학생의 신분이라는 점이 이야기의 서슬을 더욱 날카롭게 세운다.


02.

초반부에서 그려지는 나연의 모습은 모범생의 표상과도 같다. 그 때문에 자치재판의 검사 역을 맡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건우의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그런 그녀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것은 판사 역할을 하게 되는 선생님(강선아 분)이 나연에 의해 심판대 위에 올라온 건우의 처분을 초범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벌점으로 매듭지으면서부터다. 자신이 원했던 결과인 유기 정학을 이끌어내지 못한 나연은 이내 곧 격분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의도다. 나연이 보이는 행동의 변화를 친구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적절한 처분을 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하기엔 다소 과한 경향이 있다. 그보다는 이 재판을 통해 자신이 얻을 수 있었던 무엇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 더 적합하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선생님을 모함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목격했던 장면까지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왜곡해 거짓 공표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연이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그녀가 쌓아 올린 모범생의 이미지와 내신 성적은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닐까?



03.

“너 선생님이랑 건우랑 그런 사이 아닌 거 알잖아.”


거짓된 진술의 진실이 드러나고 모두가 등을 돌리고 난 뒤에도 나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타인의 잘못을 심판하려던 자의 욕망이 스스로의 오만을 심판한 모양새다. 영화의 타이틀이 가진 의미 역시 후자의 쪽에 더욱 가까우리라. 훗날 자신이 어떤 심판을 받게 될지는 알지도 못한 채 정확하지도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타인을 심판하고자 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 무겁게 남게 될 결과에 대한 책임을 그녀가 과연 질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의문을 남긴 채 영화는 그 모습을 비춘다.


이 작품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큰 메시지를 던진다. 인터넷을 통해 하루에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되는 타인의 잘못과 실수에 대한 소식들. 정말 잘못된 일이라면 엄격한 절차와 조사를 통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맞다. 다만 아직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확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빠르게 끓어올랐다가 다시 빠르게 가라앉는 대중이 모습에는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이 영화 <심판> 속 나연의 모습처럼 말이다. 의도를 막론하고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일에는 그보다 더 큰 책임감이 따른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남윤희 / 한국 / 2022 / 17 min

World Premier / 12+

코리안 판타스틱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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