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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Jul 17. 2023

[BIFAN 23] 68.415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엑스라지 5


**이 글은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줄리아는 지금 ‘지글 클리닉’이라는 이름의 의료원의 입소를 앞두고 있다. 어떤 이유로 내린 결정인지에 대해서 영화는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지만, 이 클리닉의 입소를 위해서는 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듯 보인다. 검사 결과가 괜찮다고 하더라도 일련의 수술 과정과 4주간의 재활 및 적응 기간을 보낸 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줄리아 본인이 입소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입소와 정해진 수술 절차가 끝나고 클리닉이 시작된 첫날, 줄리아를 포함한 입소자들은 마르코라는 이름의 또 다른 입소자 한 명을 만나게 된다. 그는 먼저 입소해 일련의 과정을 모두 수료한 사람으로 내일이면 퇴소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클리닉 관계자의 소개에 따라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모두 행복했다고 말하는 남자. 하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위화감을 감출 수가 없다. 이제 입소자들이 4주의 기간 동안 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클리닉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는 일뿐이다. 배부르고 맛있게 먹는 사람들 속에서 어쩐지 홀로 망설이는 줄리아. 자신 앞에 놓인 머핀이 너무 진짜 같아서 먹을 수가 없다는 이상한 말만 남기고 삼키지 못한다.


다큐멘터리 감독과 작가로서 오랜 경력을 쌓아온 이탈리아의 두 감독 안토넬라 사바티노와 스테파노 블라시의 영화 <68.415>는 전 지구가 플라스틱으로 인해 오염된 미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바다와 해변은 물론, 숲과 도시까지도 모두 지난 세대부터 축적되어 온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시대를 배경으로 정체가 감춰진 클리닉과 그곳에 입소한 줄리아의 모습을 따른다. 현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환경오염과 플라스틱 과용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위함이다. 영화의 타이틀이기도 한 숫자 68.415가 의미하는 바는 현 세대가 한평생 음식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먹게 되는 미세플라스틱의 양이라고 한다. 두 감독은 ‘에든버러 헤리엇와트 대학’의 논문에 실린 이 사실을 바탕으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02.

사실 이들에게 주어진 음식은 진짜 음식이 아니라 재가공된 페트로 만들어진 음식이다.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고기와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파스타, 소스는 폴리염화비닐로 만들고 빵과 디저트는 폴리스티렌이라는 플라스틱 물질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이 클리닉에 입소해 절차에 따라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오래된 페트를 가공한 이 음식들을 먹을 수가 있게 된다는 설정이다. 물론 이들 재료는 모두 원래 인체에는 치명적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봐서는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일반적인 음식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입소하게 되는 것이므로 극 중 줄리아의 모습처럼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게 된다. 하지만 곧 줄리아도 마음을 바꿔 음식을 먹게 된다. 처음 삼킨 플라스틱 머핀의 맛이 그 모양처럼 더할 나위 없이 맛있기 때문이다.


흐름에 필요하지 않은 장면들을 과감하게 쳐내고 메시지를 향해 직선적으로 나아가는 영화의 속도가 이 작품이 무엇을 위해 완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만든다. 입소자들이 겪게 될 과정이나 음식이 제조되는 장면, 반복되는 4주의 시간 등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깔끔한 느낌을 받는다. 아무 의식 없이 그 과정에 동화되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홀로 망설이는 모습의 주인공 역시 도드라지는 부분이 있다. 충격적인 사실을 건조하게 설명하는 영화의 톤까지 이 작품이 보여주는 모든 장면은 후반부의 충격적인 장면과 메시지를 위해 존재한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선택된 자들이라고 이제 막 수술을 받고 나온 입소자들에게 클리닉의 관계자가 말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 말이 의미하는 진짜 의미가 그려진다. 기괴하면서도 섬뜩한 모습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들이 반복해서 외치던 구호가 어떤 뜻이었는지 조금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 이보다 더 강한 경고가 있을 수 있을까.


“우리가 다 먹으면 세상이 깨끗해진다.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은 사람으로 돌아간다.”



안토넬라 사바티노, 스테파노 블라시 / 이탈리아 / 2022 / 20 min

Korean Premier / 12+

엑스라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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