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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16. 2015

#029. 위플래시

단순해 보이지만 그 광기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작품.

Title : Whiplash
Director : Damien Chazelle
Main Cast : Miles Teller, J.K. Simmons
Running Time : 107 min
Release Date : 2015.03.12. (국내)




0.

이 영화는 3 쇼트만으로 이루어진 단편 영화가 2013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되어 단편 수상을 한 바 있었으며, 이후 투자를 받아 현재의 모습으로 2014년 선댄스에 재출품,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타이틀인 <위플래쉬>는 영화 속 "카라반"과 함께 오리지널 재즈 명곡 중 하나로 알려진 작품들이며, 영화 속에서 유의미하게 이용되고 있는 타이틀 트랙들이다. 작품 외적으로 주목할만한 점은 두 주연 배우인 "마일즈 텔러"와 "J.K. 시몬스"가 영화 속 모든 장면들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해 냈다는 것이다. 특히 "마일즈 텔러"의 경우에는 난이도 있는 드럼 신을 모두 해 냈다고.


1.

이 영화를 기다리기 시작했던 게 벌써 2년. 2013년 선댄스 영화제 이후였으니 벌써 26개월이나 지났다. 정말 오랜만에(?) 참석하지 못했었던 작년 19회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도 직접 볼 수 없어 가장 애태웠던 작품이 바로 이 영화 <위플래쉬>였다. 이 영화가 궁금했던 것에는 다른 많은 이유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이 작품이 선댄스의 수상작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자칭 선댄스성애자인 내겐 충분했다고나 할까? 물론 그만큼 작품 자체의 퀄리티가 뛰어나고 압도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다.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 : 미국 유타 주 파크시티에서 매년 1월 하순 열리는 독립영화제의 하나. 매년 참가하는 작품들의 수준이 뛰어나 수상작들은 대부분 확대 개봉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2.

사실 영화 자체는 굉장히 단순하다.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증명하고자 하는 학생과 그런 그를 극한까지 몰아 부쳐 단기간에 숨겨진 재능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스승 사이의 이야기.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 역시 그리 넓지 않다. 쇼트 상으로도 적게는 5개, 많게는 10개를 넘지 않아 보이는 연출 또한 그 단순함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 단순한 영화 속에서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왠지 그냥 두들기기만 하면 나도 괜찮은 드러머가 될 것 같지만, 막상 드럼 스틱을 들고 드럼 세트 앞에 앉으면 멘붕이 오는 느낌이랄까?


3.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함께 공감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확신이 필요하다. 과연 극 중 "플레쳐"가 주인공인 "앤드류"를 어떠한 시각에서 대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객들 각각의 개인적인 확신. 사실 영화 중후반부까지는 그 문제가 그리 혼란스럽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마지막 신에 등장하는 "플레쳐"의 대사 하나에 있는데, "앤드류"를 대하는 "플레쳐"의 이 두 가지 모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남게 된다.


4.

"플레쳐"는 해석에 따라 그의 모습은 단지 완벽함에 대한 광기만을 가진 한 음악가의 모습과 재능을 가진 제자의 포텐을 터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스승의 모습으로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위에서 말한 확신이란 이 두 가지의 갈래에서 어떤 모습으로 바라볼 것이냐에 대한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플레쳐"가 후자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방법이 일반적인 시각에서 볼 때 너무 극단적이기에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5.

외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플레쳐" 교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 사람이다. 다만 그 대상이 그의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자리를 버텨내려는 근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결과의 다름을 만들어 내는 것일 뿐인 것. 그런 점에서 "플레쳐" 교수는 영화의 오프닝에서 "앤드류"를 처음 만나는 순간 그의 그런 속성을 파악했을지도 모른다. "앤드류"의 첫 연습 때 쫓겨나던 색소폰 연주자를 떠올려 보면, "앤드류"와 그 연주자 사이에 존재하는 태도라는 부분의 다른 점을 알 수 있을 것이고 "플레쳐" 교수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6.

또한 "플레쳐" 교수가 학교의 학생들을 데리고 대회에 참가할 때와, 영화 후반부에서 숙련된 연주자들을 데리고 페스티벌 오프닝 무대를 오를 때 공연 직전 라커룸에서 보이는 모습에서도 "플레쳐"라는 사람의 속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결코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인물들은 다그치지 않았다. 그가 학교에서 가르치던 스튜디오 밴드에서 왜 그렇게 유별나게 굴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7.

그의 사적인 모습을 보더라도 역시 그는 그리 괴팍하기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떠난 뒤 한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그의 부드러운 면모, 자신이 과거에 가르치던 제자 "션"이 죽은 뒤 그를 추모하고자 하던 모습, 공연 직전 찾아 온 지인의 딸을 대하던 모습들이 결코 그가 "광기"에만 사로잡혔던 인물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가 비록 초침 하나에, 박자 반 박에 야박하게 굴기는 했지만 마음까지 차가웠던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8.

그렇다면 그는 왜 마지막 장면의 무대에서 "앤드류"에게만 알려주지 않았던 음악을 지휘하고, 숨겨왔던 진실을 밝히면서 그를 미치도록 만들었던 것일까? 나는 이 또한 "플레쳐"가 "앤드류"를 자극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방법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비상식적인 문제? 우리는 영화 내내 그의 모습들을 통해 그가 집착하는 부분들을 표현하는 방법들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은 이미 다 봐 왔지 않았나. "플레쳐"에게 방법이 어떠한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학교를 제적당하면서 음악을 그만 둔 "앤드류"에게 다시 한 번  "Whiplash"를 가했을 뿐. 그리고 "플레쳐"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결코 "앤드류"가 자신의 가혹한 시험 앞에 등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9.

위에서 설명했던 것과 반대로, 만약 "플레쳐"라는 인물을 단순히 음악적 광기에만 휩싸인 인물로 해석하게 된다면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무대를 망쳐가면서까지 "앤드류"를 망가뜨리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앤드류"의 멘탈과 의지가 부서지는 순간 자신이 지휘하는 무대 자체가 엉망이 되는 순간에서 음악적 광기에 휩싸인 인물이 과연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앤드류"에게 악보를 보여주지도 않고 자신의 무대에 올린 건 오히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10.

흔히들 이 영화를 단순히 두 인물의 광기로 표현하고 있는데, 사실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이 영화를 단순히 "광기"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이 영화는 "앤드류"가 갈망하는 욕구의 변화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앤드류"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고 싶어 하던 초반부, 자신의 자리를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중반부, 그리고 항상 자신을 내려다보며 채찍질하던 인물과 맞서며 진정한 음악 속 광기에 빠져드는 후반부로 말이다.


11.

"앤드류"에게 있어 누군가에게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는 것은 성공이라는 가치를 갈망하게끔 만드는 첫 번째 이유임과 동시에 그가 어떤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그가 가진 욕구들은 항상 자신을 업신 여기던 가정적 환경에서부터 비롯되는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장면은 그가 갖고 있는 심리적 기저를 설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장면이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장면을 통해 "앤드류"가 갖고 있는 가정의 구성원들과 "플레쳐" 교수 사이에는 한 가지 대척점이 만들어지게 된다. 두 그룹 모두 이 분야에서 성공하기가 결코 어렵지 않다는 데는 그 뜻을 함께 하지만, 가족들은 그 부분을 무시와  말뿐인 우려스러움으로 드러내지만, "플레쳐" 교수는 "앤드류"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12.

그의 여자친구로 등장하는 "니콜"이라는 인물 역시 그의 "인정"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강력한 심인적 요소인지 알려주는 장치이다. 영화에서 그는 딱 2번 "니콜"에게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는데, 두 번 모두 "플레쳐" 교수로부터 음악적 재능에 대한 인정과 함께 어떤 제안을 받은 뒤에 나타나는 행동이다. 물론 그가 갖고 있는 이 "인정"에 대한 욕구가 단순히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플레쳐"라는 인물로부터의 인정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13.

"앤드류"가 "플레쳐"의 밴드에 들어가고 난 다음부터는 그가 갖고 있던 "인정"에 대한 욕구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그에게 기회를 준 "플레쳐"라는 교수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곧, 스튜디오 밴드 속에서 메인 드러머 자리를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이제 단순한 "인정"은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10번에서 언급한 인정이 목적으로서의 욕구라면, 여기에서의 인정은 수단으로써의 욕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경쟁자 "라이언"과 이전의 메인 드러머 "태너", "앤드류" 세 사람이 "플레쳐"가 요구하는 템포를 맞추기 위해 경쟁하는 장면을 단순히 메인 드러머만을 향한 경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14.

영화 속에서 "더블 타임 스윙"을 통해 "앤드류"가 "플레쳐"를 만족시키는 장면은 두 번 등장한다.  그중 첫 번째가 12번의 마지막에서 언급했던 메인 드러머 경쟁의 가장 마지막 차례에서인데, 그는 탈진하여 드럼 세트 위에 널브러진 채로 어떤 희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메인 드러머 자리를 따냈다는 것에서도 느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온 힘을 짜내 연주를 했던 그 과정에서의 어떤 희열감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때 그가 느끼는 희열감은 자연스럽게 후반부의 광기로 연결된다. 엔딩의 연주 장면에서 마치 "플레쳐"를 박살 내 버리고 말겠다는 전투적이던 그의 모습은 어느새 "플레쳐"의 지휘를 따르고 있고, 두 사람이 함께 음악적 광기에 휩싸여 무아일체의 합일을 만나게 되는 순간부터 두 사람에게 현실 속의 얽혀있는 다른 이야기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차원의 문제가 된다.


15.

마지막의 "앤드류"와 "플레쳐", 이 두 사람이  주고받는 감정들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그 상황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극대화로 인한 부분들도 있지만,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은 결코 알지 못할 두 사람의 스토리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는 데서도 일면 기인하는 바가 크다. 만약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 "앤드류"의 연주 장면만을 보여준다면 그저 대단한 연주 실력을 갖고 있구나. 정도의 반응밖에 이끌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2시간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지켜봐 왔기에 우리는 응집력 있게 폭발하는 엔딩의 카타르시스를  함께할 수 있는 것이다.


16.

사실 "J.K. 시몬스", "마일즈 텔러" 모두 이런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배우들이었다. "J.K. 시몬스"는 영화판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중견배우이기는 하지만, 사실 <스파이더맨>의 편집장 정도만 제외하면 딱히 기억에 남는 조연급 연기도 없었고, "마일즈 텔러" 역시 헐리우드의 떠오르는 신성이라고 불리고 있기는 하지만, <트와일라잇>으로 반짝하고 만 "테일러 로트너"의 느낌이 더욱 강했달까. 마치 스릴러를 보는 듯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해 내던 두 사람의 연기 덕분에 영화는 완성될 수 있었다.


17.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버드맨> 속 드럼 비트가 인물들과 관객들의 감정을 끌고 다녔다면, 이 영화 <위플래쉬>의 드럼 비트는 영화의 플롯 전체를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 역시 흥미롭게 대조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18.

이 영화는 드럼으로 시작해서 드럼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단순한 악기 하나로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몰아세울 수 있는 감독의 뛰어난 상상력(물론 이 시나리오가 감독의 고교 시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나)과 연출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영화라는 장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들이 잘 다듬어져야 하겠지만, 이런 작품을 볼 때마다 스토리의 힘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단순한 소재만으로, 그 좁은 공간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스토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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