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Sep 26. 2023

뭐해

인디그라운드 16번째 큐레이션 : 나를 앓게 하는 영화들 2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미(임유빈 분)는 외출 직전 갑자기 약속을 취소당한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하루를 보낼 생각으로 준비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이리저리 연락을 돌려보지만 여의치가 않다. SNS 속의 친구들은 다들 약속도 많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데, 자신만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다. 예상하지 못한 약속이 생기지만 정작 또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려니 생각만큼 몸이 움직여지지는 않는다. 역시 조금 전에 나가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나갔어야만 했다.


영화 <뭐해>는 현실 세계의 모습만큼이나 SNS 상의 모습이 중요해진 현세대의 모습과 세태를 잘 투영해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세대가 관계를 맺고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무거운 의중을 담고 있는 모노드라마에 가깝다. 오래된 사진을 마치 오늘의 일상이었던 것처럼 업데이트를 하고 집안 소파 위에 앉아 TV를 보며 식은 식빵 조각을 뜯어먹는 유미의 모습은 현실적이기만 하다. 너무 멀리 있어서가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보통 누군가의 먹방은 허기를 대신하거나 순간의 배고픔을 참기 위해 시청하곤 한다. 목적 자체가 욕구의 해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속이는 것에 있다는 뜻이다. 유미가 작은 식빵 조각을 뜯어먹으며 치즈가 흘러내리는 두터운 햄버거 먹방을 부러운 듯이 지켜보는 장면 속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허상과 거짓된 욕망의 해소에 관한 모습이 모두 담겨있는 셈이다. 모두가 SNS 속 타인의 만들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의 모습을 똑같이 생성해 내고, 가까스로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이 드라마의 가장 서늘한 장면은 유미가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그날 밤, 혼자 집안에 있던 그녀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같은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을 말하는 마지막 순간이다.



신지수 / 한국 / 2021 / 12 Mins

임유빈

-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열여섯 번째 큐레이션 ‘나를 앓게 하는 영화들’ 중 한 작품입니다. 오는 2023년 9월 30일까지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 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www.indieground.kr

매거진의 이전글 고백할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