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Nov 09. 2023

보속

인디그라운드 큐레이션 리플레이 상영 2 : 불확실한 벽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그동안의 죄를 뉘우치시고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성아(강서희 분)는 고해성사를 하고 보속을 받는다. 보속은 가톨릭에서 고해를 한 후 신부가 내려주는 속죄를 위한 실천적인 과제를 말한다. 미워하는 사람의 지갑을 주웠지만 돌려주지 않은 탓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보속은 묵주 기도와 함께 이틀 이상의 봉사와 선행을 베푸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씻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스스로의 과오를 지운다는 목적을 가진 행동과 순수한 의미의 봉사와 선행이 같은 모습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녀는 속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하지만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의 불편과 불만만 살뿐이다.


조금은 답답한 듯한 느낌의 4:3 비율의 좁은 화면, 인물들의 대화와 주변 소음만이 존재하는 건조한 분위기, 그리고 색채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흑백 화면까지. 영화 <보속>은 첫 장면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을 지그시 누른 채로 나아가는 작품이다. 직접 인물이 되어 그 심리를 오롯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장치와 설정이 성아의 마음을 투영하고 있다. 보속을 위해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재활원 공동체에 도움이 되고자 하지만 속죄도 할 수 없고 선행도 할 수 없이 표류하고 마는 한 사람의 내면이다.


극 중 성아는 안타까울 정도로 열심히다. 다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는 먼저 나서 배식을 하고,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오래된 화장실 청소도 도맡아 한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한 끼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이제 막 처음 재활원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찾아오라며 먼저 관심을 보인다. 마치 이 일이 아니면 자신의 존재가 부정이라도 당하는 듯한 태도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일까지 나서는 성아다.


문제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모두가 하나같이 불편해하고 피해를 입는다는 것. 배식을 하는 도중에는 다른 사람의 옷 위에 음식물을 쏟고, 화장실 청소는 남자 신도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만다. 밥을 사러 나간 자리에서는 카드의 한도가 부족해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제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타인을 배려하고자 했던 마음은 원하지 않는 관심이 되어 부담만 준다. 모두가 그녀의 잘못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 시작점에 성아가 묘하게 놓여 있는 것도 사실. 하나 둘 사람들의 눈밖에 나기 시작한 뒤로는 모든 행동이 죄가 되는 듯한 굴레에 빠져버린 것처럼도 보인다.


“왜 우릴 계속 나쁜 사람을 만들어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불편하지는 않을 텐데. 괜히 나서서 일을 벌이고 그때마다 실수를 하고 마지막에는 항상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성아의 모습이 다른 신도들은 불편하기만 하다. 이제 영화는 묻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보속을 행하기 위해 선행을 하려는 사람과 다소 허술한 선행 앞에서 이를 힐난하고 나쁜 것으로 몰아가는 사람 중에서 더 악한 쪽은 어느 쪽인가.라고.


영화는 말미에 이르러 재활원을 나가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한 성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신도들이 자신의 보속을 불편해한다는 이야기와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불만을 알게 된 후다. 보통의 경우에 주인공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잔인한 표현의 생략을 위함이지만, 어쩐지 이 영화에서는 의미를 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제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녀의 죽음이 오히려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된다는 듯한. 심지어 사무장(김수란 분)은 그녀의 죽음에 대해 어쩌겠냐는 미지근한 태도를 보인다.


다시 돌아가보자.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빚을 안고 자신의 생에 위태롭게 매달려 살고 있었다. 재활원에서 소개받는 일자리도 계속해서 그만둘 정도로 타인을 대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보속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정말로 속죄를 위한 그녀의 행동 모두는 비난받고 배척되어야 할 정도로 악한 것이었을까. 이 순간에도 죄를 쌓으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속죄를 하려는 이의 간절하고도 연약한 마음은 발아래에 두어도 좋은 것일까. 영화의 죄와 속죄, 그 양단을 오가며 끊임없이 물음을 쏟아낸다.


더럽고 냄새나는 화장실 한편에 나연(박세재 분)이 서 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던 청소, 성아의 자리다. 그리고 여기에는 하나의 보속이 더 있다.



양재준 / 한국 / 2021 / 36 Mins

강서희, 박세재, 여민구

-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리플레이 상영 ‘시원한 바람, 선선한 마음’ 중 한 작품입니다. 2023년 11월과 12월의 순차적 상영을 통해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 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www.indieground.kr

매거진의 이전글 E:/말똥가리/사용불가 좌석이라도 앉고 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