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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Nov 09. 2023

거리두기

인디그라운드 큐레이션 리플레이 상영 2 : 불확실한 벽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진(정은선 분)은 공무원 면접시험을 준비하던 중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다. 운이 좋지 않게도 밀접접촉자에 의한 감염. 격리는 면접 바로 전날에야 해제가 된다.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는 열과 시험을 앞둔 조급한 마음. 시험에 집중하기 위해 집까지 따로 얻어 나왔으니 결과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옆집에서 들려오는 성인 남성의 반복적인 욕설과 고성이다. 현관문을 열자 복도 끝에 어린아이 하나가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서 있다. 초췌한 얼굴이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복도식 구축 아파트의 모습과 함께 등장했던 차가운 복도 위 애처롭던 모습의 그 아이가 맞다.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거리 두기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행동이었다. 바이러스의 전파로 인해 감염자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방법.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고 난 이후에는 정해진 공간에 격리되어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했다. 이른바 자가격리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사회로부터 떨어진 채로 홀로 지내야 하는 일은 사실 쉽지 않았다.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를 걱정하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사회 속에는 여전히 그때의 거리 두기가 필요해 보이는 상황들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지나간 시간 속의 ‘거리두기’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현재에 놓인 문제와 연결하고자 한다.


이 영화에서 ‘거리두기’는 중의적 표현을 가진다. 코로나에 감염되어 타인과의 접촉을 피해야 하는 유진에게 주어지는 의무적인 행동이 하나. 남자의 폭력적인 언어 이후 복도로 내쫓기듯 나와야 했던 아이 서영(백송희 분)에게 필요한 일이 또 하나다. 다만 전자가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후자는 당사자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영화는 같지만 다른 두 ‘거리두기’를 한 장면에 함께 놓으며 원래대로라면 서로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야 할 두 사람을 연결시킨다. 물론 이를 위해 유진은 자신에게 부여된 ‘거리두기’의 틀을 스스로 깨트리고 나와야 한다.


서영의 ‘거리두기’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거리두기’를 위반하고자 하는 유진의 행동은 용감하다. 지금 이 선택이 자신이 목표로 하는 공무원이라는 꿈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이를 집 안으로 들인 뒤에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하면 서영을 도울 수 있을지 하는 것뿐이다. 격리된 유진을 위해 엄마가 현관문 앞에 두고 간 반찬통을 정신없이 뒤지던 아이. 코로나가 뭔지도 모르고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어야 한다며 감기약을 가져다주던 아이. 무기력한 표정으로 아빠를 신고해도 소용없다고 말하던 아이.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수많은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 그 선택 가운데는 일부는 몰라도 전체를 책임지기엔 어려운 일도 있고, 자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또 어떤 선택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오랜 후회를 하게 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 역시 그런 선택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전부를 책임질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고, 언젠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타인의 현실을 제 삶 속에 들이기 위해 문을 여는 행동도 그런 선택 위에 있다.


“저 다시 집에 가야 해요? 안 가면 안 돼요? 신경 안 쓰이게 조용히 있을게요.”


자신을 어딘가로 다시 보낼듯한 유진의 질문 몇 가지에 다급한 서영의 말이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일까.



이유정 / 한국 / 2021 / 19 Mins

정은선, 백송희, 김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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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리플레이 상영 ‘불확실한 벽’ 중 한 작품입니다. 2023년 11월과 12월의 순차적 상영을 통해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 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www.indiegroun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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