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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Nov 30. 2023

소망어린이집 근무안내서

인디그라운드 큐레이션 리플레이 상영 6 : 돌이켜 생각하면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뒤로 하고 한 여성이 어린이집으로 들어선다.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한 신입 선생님 나리(임선우 분)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환해야 할 어린이집의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묘하다. 청각적으로는 분명히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만이 화면을 감싼다. 첫 만남부터 날이 서 있는 듯한 선배 교사(고유 분)의 태도는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을 한번 더 짓누른다. 아이들에게조차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그녀는 근무안내서와 비상연락망만 나리에게 던져주고 자리를 떠나버린다.


영화 <소망어린이집 근무안내서>는 보호의 의무와 책임을 망각하고 있는 일부 아동 보육 시설의 문제와 실태를 공포라는 장르로의 치환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연출한 김민지 감독은 극 중 등장하는 근무안내서와 라디오를 인물과 적극적으로 연계시키며 후반부에서 떠오를 사건의 핵심을 감추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서스펜스는 두 지점에서 획득된다. 선배 교사의 행동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는 나리의 모습과 역시 영화가 보여주는 어린이집의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여길 관객들의 불안하고 의구심 넘치는 심리다. 영화는 자신의 안팎에 놓여 있는 두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극의 뼈대를 완성시킨다.


“최근 한 어린이 집에서 아이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영화는 많은 부분을 극의 전면이 아닌 후면에, 인물 가까이가 아니라 인물로부터 떨어진 곳에 두고자 한다. 가령 라디오 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 이면에 존재하고, 통원 버스의 사고 소리는 인물의 등 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식이다. 특히 핵심이 되는 사건과 관련된 일들일수록 더욱 그런데 이는 문제를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 대신 은폐와 변명으로 일관하려는 어른들의 태도를 비춰내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이런 표현 방법은 곧이어 뒤따르는 현실이 반영된 장면, 정확한 규명을 요구하는 부모를 대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다가가 묻는다.


마무리를 부탁한다며 급하게 먼저 퇴근하는 선배 교사와 아직 하원을 하지 못한 듯한 네 명의 아이들, 이 상황을 신임 교사인 나리가 홀로 떠맡게 되면서 영화는 그간 자신이 감춰왔던 하나의 장면과 사실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첫 출근과 자세히 읽어볼 틈이 없었던 근무안내서와 흘러나오던 라디오의 내용,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교통사고. 영화는 과거와 대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시간축에 옮겨 놓음으로써 중심 사건에 미스터리한 지점을 만들고, 영화의 마지막 지점에 놓인 아이들의 손 여러 개는 모든 엇갈린 이야기를 한데 모아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다.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잘 쌓아 올려진 뼈대 위에서 모든 지점에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두게 되는 것은 역시, 이 영화 속에 그려지고 있는 일부 선생님(어른)의 모습이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부분이다.



김민지 / 한국 / 2021 / 20 Mins

임선우, 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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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리플레이 상영 ‘돌이켜 생각하면’ 중 한 작품입니다. 2023년 11월과 12월의 순차적 상영을 통해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 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www.indiegroun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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